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4
나의 모교는 졸업용 토익점수 커트라인이 800점이다. 900점 이상이면 논문을 안 써도 졸업할 수 있다. 허나 나는 내 영어 실력을 잘 알기 때문에 일찌감치 논문을 썼다(쑻) 다행히도 나는 졸업 전 마지막 토익 시험에서 기적적으로 805점을 기록하며 졸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후에도 KBS 때문에 4년간 열심히 토익 시험을 봤으나 다시는 800점을 넘지 못했다. 까딱하면 평생 졸업 못 했겠다는 생각에 오싹해진다.
이런 내가 글로벌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다니. 의외로 면접 때 회사는 내 영어 실력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들어와 보니 사무실에는 외국인들이 많았고 당연히 Official Language는 영어였다. 함께 들어온 동기와 경영지원은 토익 900점대에 빛나는 영어 능력자였고 중국팀 멤버들은 기본적으로 다 영어를 잘했다. 나만 독보적으로 못했다. 업무 중에 영어를 쓸 일은 많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각국의 마케팅팀이 모여 영어 회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무리가 왔다. 게다가 회사에는 금요일마다 랜덤으로 조를 뽑아 함께 식사하는 '프런치'라는 제도가 있었다. 나는 외국인 멤버들과 한 조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불행히도 나의 첫 프런치는 다수의 개발자들(한국어를 쓰는데도 말이 안 통함)과 미국팀 여성 멤버 한 명으로 짜여졌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한국인처럼 생긴 그녀를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혹시 몰라 "Can you speak Korean?" 이라고 묻는 내게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나는 영어도 중국어도 못하는데 후후후.
야속하게도 식사 내내 남성 개발자은 자기들끼리 공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바람에 유일하게 여자였던 내가 자연스레 그녀와의 수다를 맡았다. 다정하고 상냥한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내게 "What do you like ~"로 시작하는 기초 질문만 스무 개쯤 던졌다. 나는 냉면을 좋아한다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나의 손짓 발짓에도 냉면에 대해 잘 몰랐다. 결국 포기하고 적당히 칼국수를 좋아한다며 넘어갔다. 문제는 좋아하는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용감한 형제의 작곡 스타일이 잘 맞았다. 심장을 빠운스 빠운스하게 만드는 한국형 뽕끼를 즐기는 타입이라 할 수 있다. 냉면은 포기했지만 뽕짝만큼은 그녀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Do you know 뽕?"
알앤비랑 비슷한 거라면서 쿵짝 쿵짝 어깨춤을 보여줬다. 한국에는 어떤 장르든지 약간의 뽕끼가 가미되어 있어야 히트할 수 있다는 궤변도 늘어놓았다. 가게에 마침 장윤정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바로 이거라고 열변을 토하는 내게 그녀는 잘 모르겠지만 알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나의 난해한 영어를 인내해주는 이 천사 같은 친구와 언어의 장벽 없이 교감하고 싶어.'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감하게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영어 울렁증에 시달리던 귀요미 인턴과 디자이너도 나의 영업에 넘어가 함께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회사에 영어 선생님이 이렇게 많은데 뭐하러 돈 주고 학원에 가느냐고 했지만 회사의 영어 선생님들은 우리의 콩글리시를 너무도 잘 알아들었기 때문에 완벽한 교정을 위해선 학원이 필요했다. 점심시간마다 회사 옆 건물에 있는 영어 회화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우리에게 미국팀 멤버들의 관심이 쏠렸다.
"I'm stressed out (정말 스트레스 받아)"
학원에 다녀오면 미국팀 멤버들이 다가와 초롱초롱한 눈으로 너희 오늘은 뭘 배웠냐고 물어봤다. 나는 매번 착실히 외워온 문장을 말했지만 쓸만한 건 저 문장뿐이었다. 그 외에 배운 시계를 읽는 법이나 너의 형제가 몇 명인지 묻는 문장들은 주로 증조할머니나 쓰는 표현이라고 했다. 우리가 잘못된 영어를 배워오면 미국팀 리더가 수정해주며 말했다.
"오천 원"
하나씩 고쳐줄 때마다 덧붙였다.
"Another 오천 원"
뎀잇. 한 달도 되지 않아 나는 영어학원을 그만두었다.
오히려 나와 첫 프런치를 같이 한 중국계 미국인 친구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그녀는 내게 책에서 외운 한국어를 야심 차게 선보였다.
"세월 참 빠르쿤요. 당신 마음속 내 자리 있어요?"
귀...귀여워......내가 학원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던 미국팀 멤버들의 마음도 이런 것이었을까.(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와 달리 꾸준히 공부한 그녀는 일 년쯤 지나자 꽤 한국말을 잘 알아듣게 되었다. 외국인 멤버들의 한국어 능력이 점점 향상되면서 나는 갈수록 영어와 멀어진 채로 글로벌 스타트업에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