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프로베이션의 공포 "난 너무 떠들어서 짤릴거야"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3

by 지금을

왜인지 모르겠지만 둘째 날부터 기분이 몹시 상큼해졌다. 인터넷에 글 쓰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나는 신기하리치만큼 금세 모바일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매료되었다. PD가 되어 풀고 싶었던 갈증 대부분이 이곳에서의 업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회사가 좋아지면서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싶었다.


- OO님은 개발자이신가요?

- 네, 그렇죠.

- 프러덕트팀인줄 알았어요.

- (말을 잇지 못한다)


프러덕트팀 안에 개발자가 속해 있다는 기본적인 구조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나에게 이곳의 용어는 별천지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위협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다. '프로베이션'


연봉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HR 담당자는 한국 마케팅팀 리딩까지 맡고 있느라 너무도 바빠서 2주는 지나고서야 동기와 나를 불렀다. 먼저 나를 회의실로 불러 계약서 조항을 설명한 뒤 서명을 시켰고, 다음은 동기 차례였다. 그런데 회의실을 나온 동기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 끝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HR 담당자가 깜빡 하고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잡았다는 것이다. 회사에 프로베이션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앞으로 3개월간 모든 팀원이 우리를 평가하고 계속 일할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했단다. 물론 내 차례에선 말하는 걸 까맣게 잊었던 그는 이 중요한 사실을 끝내 내게 알리지 않았다.

'3개월 수습은 어느 회사나 흔히 있는 거고 웬만해선 통과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나한테는 말 안 했으니까 난 몰라'

처음에 나는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마음의 평화를 찾은 동기와 달리 나는 뒤늦게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2주 간 천지분간 못하고 막 다니진 않았을텐데(오열)


돌이켜보면 그 2주 사이 일본팀의 한 남자가 그만뒀다. 그 전날까지 말짱하게 밥을 같이 먹었던 것 같은데 다음날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스타트업은 워낙 사람들이 그만두는 일이 많아서 같이 잘 떠들다가도 다음 주에 그만두겠다고 안 나온다더니 진짜인가 봐요"

그가 그만뒀다는 말에 HR 담당자에게 내가 한 말이다. 그때는 몰랐다. HR 담당자가 왜 내 말에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말을 얼버무렸는지. 일본팀의 그 남자는 프로베이션에 통과하지 못한 거였다. 그리고 그건 내 미래가 될 수도 있었다.


미리 알았으면 좀 더 조신하게 사는 건데. 후회가 몰려왔다. 처음 이 회사에 왔을 때 사무실이 꼭 신촌의 스터디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구적인 분위기에 조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동기와 나, 중국팀과 경영지원팀이 대거 뽑히면서 회사가 시끄러워졌다. 여고생 감성을 그대로 가진 또래가 여럿 모이자 수다를 멈출 수 없었다. 목소리도 크고 웃음소리도 컸다. 주방에서 신나게 떠들다 보면 차가운 기운을 뿜는 HR 담당자의 머리가 쓱 등장했다.

"조용히 해야죠"

그 말이 무서웠기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엄청나게 눈치를 봤다. 하지만 10번 조용하다가 1번 방심하고 하하 호호하고 있다 보면 어김없이 저승사자 같은 HR 담당자에게 걸렸다. 시끄럽다는 프러덕트팀의 항의도 이어졌다.

'끝났어...난 너무 떠들어서 짤릴거야'

이십 대의 끝자락에 할 고민은 아니었는데 그 때의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망나니 초딩 같았다.


그래도 일은 열심히 해서 꽤 칭찬을 받았다. 본부장님은 동기와 나를 불러 비밀병기로서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며 맛있는 걸 사주마 하셨다. 언제나 시청률을 생각하며 콘텐츠들을 공부한 내게 모바일 공간의 CTR(클릭률)을 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3일간의 교육이 끝나고 나서는 계속 일이 몰려왔다. 데드라인이 촉박해 항상 쫓기듯이 일했던 것 같다. 그때쯤 회사는 3주간 거금을 들여 미국에서 유명한 컨설턴트를 데려왔다. 우리는 매일같이 그의 알토란 같은 의를 들었다. 하루는 급하게 할 일이 있어 노트북을 가져와서 일하며 듣고 있었는데 강의가 끝나고 대표님이 내게 따로 말씀하셨다.

"너무 바쁘면 안 들어도 돼. 내용 정리해서 메일로 다 보내주거든"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어조였지만 프로베이션 기간이었던 나는 행간의 의미를 찾아 망상의 나라로 떠났다.

'망했어. 비싼 선생님 앞에서 들어온 지 한 달도 안된 게 무슨 거국적인 일을 하겠다고 딴 짓을 하다니. 대표님은 돌려서 경고하신 거야'

프로베이션의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분명한 건 기존 멤버들은 내가 프로베이션 기간 동안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신경 써줬다는 것이다. 따로 식사 시간을 마련해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재밌게 수다에 동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과 상관없이 프로베이션이란 제도는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그 동안 70프로는 프로베이션에 통과하지 못했다더라는 흉흉한 소문이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직원들 사이에서 돌았다. 실제로 내 프로베이션 기간에만 4명의 직원이 프로베이션을 통과하지 못 회사를 떠났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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