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무서운 놀이기구도 타게 만드는 스타트업의 사회생활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8

by 지금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회사 사람들과는 결코 근무 시간 이후에 사적으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는다'가 철칙이었던 사람이다. 특히 황금 같은 주말에 회사 사람을 만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나의 동기는 적극적이고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었다. 해서 무려 토요일이자 화이트데이에 회사 사람들과 에버랜드 한복판에 서 있게 된 것이다.


우리 회사에는 플레이데이란 복지 제도가 있었다. 놀 계획을 짜고 10명 이상의 인원을 모으면 1인당 2만 원씩 회사에서 비용을 지원해준다. 한 달에 한 번만 쓸 수 있어서 사람들은 웬만하면 매달 놓치지 않고 함께 놀러 갈 궁리를 했다. 이번에는 에버랜드였다. 조인할 사람은 답장하라는 메일이 왔다. 당연히 갈 생각 없었던 나는 그냥 지나쳤지만 동기는 이미 나와 함께 에버랜드에서 무엇을 할 지 하루 플랜이 다 짜여 있었다. 그녀의 등쌀에 나는 I'm in이라고 답 메일을 보내야 했다.


막상 가기로 하니 설렜다. 플레이데이도 처음이었지만 에버랜드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강남역에 모여서 버스를 타고 한참 가니 말로만 듣던 꿈과 희망의 나라 에버랜드가 보였다. 입구에서 의외로 할인받을 방법이 많았다. 물론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던 나는 남들보다 비싸게 입장료를 끊어야 했지만 또르륵. 외국인 할인을 받으며 신이 난 미국팀 멤버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누구보다도 뽕을 많이 뽑기로 했다.


사실 불가능한 다짐이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놀이기구를 타지 못한다. 나는 겁이 많고 아빠는 그냥 별로라 하고 엄마는 놀이기구 탈 때 싸해지는 느낌이 싫다고 한다. 내 동생은 5살 때쯤 아가들만 타는 회전목마를 태웠다가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서 도중에 놀이기구를 세워야 했다. 해서 우리 가족은 매번 놀이기구는 타지 않고 퍼레이드 구경만 하다가 밥을 먹고 돌아왔다. 학창시절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면 나는 등 떠밀려 줄을 섰다가도 늘 마지막에 탑승을 포기하고 친구들의 짐을 지키곤 했다. 유전자가 이렇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 자발적으로 놀이공원에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사이 내가 겁이 없어지지 않았을까? 나이도 많이 먹었으니까'

혹시나 했던 생각은 첫 놀이기구를 타자마자 허망히 사라졌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그 놀이기구를 타다가 공포에 질린 나는 동기 손을 너무 꽉 잡아서 손가락을 부러뜨릴 뻔했다. 나는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고 동기는 손가락이 아파서 비명을 질렀던 그 순간 나는 회의감에 빠졌다. 이런 게 직장인의 사회생활인 걸까. 억지로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셔야 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놀이기구로 고문당하는 것도 괴롭구나. 애국자라 자부해왔지만 일제강점기에 이 놀이기구를 계속 태웠으면 나는 나라를 팔아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내 돈 주고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 거지? 내가 미친 상념에 빠져 어푸어푸 호흡곤란이 올 때쯤 사악한 놀이기구는 멈췄다.


점심을 먹으러 햄버거집에 들어가서 나는 멤버들에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놀이기구 안 탈 거야"

안돼. 딱 하나만 더 타. 함께 간 미국팀 리더는 그렇게 말했다. 주로 주방에 누워서 일하고 있던 그와는 평소 얘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는 영어를 못했고 그의 디폴트 표정은 뭐랄까 손담비의 '니가?' 짤방의 느낌이라 말을 붙이기 어려웠다. 동기와 내가 바보짓을 할 때면 그가 꼭 한심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날보니 그건 아무 생각 없는 표정이었다. 에버랜드를 돌아다니는 내내 그는 동기와 나의 행동이 웃겨서 움짤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 놀이공원 와서 모처럼 가까워졌는데 하나는 더 타자. 이게 바로 직장인의 사회생활이지.'

근데 미국 애들 놀이기구 왜 이렇게 잘 타 엉엉엉.


결국 바이킹 줄에 서게 된 나는 극도의 공포로 얼어버렸다. 긴장한 내 모습이 웃긴다며 멤버들이 사진을 찍었지만 막을 겨를도 없었다. 우리 차례가 되자 나는 타지 않겠다고 최후의 항을 펼쳤으나 붙들려서 가장 안 무섭다는 중간 자리에 앉게 되었다.

"주변 좀 볼래? 초등학생들이 너 때문에 중간 자리에 못 앉았잖아. 저 어린애들도 탄다고"

미국팀 리더의 타박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한국 애들도 놀이기구 너무 잘 타 엉엉엉.


생각보다 바이킹은 무섭지 않았다. 물론 한국팀 멤버가 찍은 영상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맹세코 내면 깊은 곳에선 별로 무섭지 않다고 안도하고 있었다.


바이킹이 끝나자 다들 약속대로 더는 나에게 무서운 놀이기구 체험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내 수준에 맞는 아동용 롤러코스터 같은걸 하나 타기로 했다. 내 눈으로 봐도 굉장히 만만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 절대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역시 나답게 출발하자마자 비명을 질렀고 내 비명에 놀란 앞자리 멤버가 미국팀 리더의 머리를 쳐서 그의 모자가 날아갔다. 매일 쓰고 다녀서 마치 그의 머리에 이식된 것 같았던 그 모자는 어머니가 사 주신 것이라 했다. 아동용 롤러코스터를 타자고 제안한 동기, 비명을 질러 사람을 놀라게 한 나, 놀라서 옆에 있던 미국팀 리더의 머리를 친 멤버, 간단한 놀이기구라 모자가 날아갈 리 없다며 쓰고 탄 미국팀 리더. 우리는 넷 다 서로 책임이 있다고 자책하며 어딘가 떨어져 있을 모자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저 멀리 울타리 안쪽에 비슷해 보이는 빨간 모자가 떨어져 있었다. 내가 비장하게 셀카봉을 들고 나섰다.

"Nope. I am small"

위험하니 자신이 가겠다는 미국팀 리더를 초급 영어로 제지한 나는 나뭇잎을 헤치고 울타리 앞까지 기어들어 갔다. 이건 베리 베리 스몰한 나만이 할 수 있다고(당당) 셀카봉을 최대로 빼서 겨우 모자를 구출하자 다 함께 박수친 것도 잠시였다. 그건 색깔만 같은 다른 모자였다. 우리는 끝내 소중한 빨간 모자를 찾지 못했다. 그 날의 모자원정대는 한 멤버가 그에게 귀여운 모자를 사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그 모자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에버랜드 수풀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까. 그때 내가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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