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9
중국팀에는 발랄한 한국인 멤버가 한 명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중국에 살았다는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소개할 때 "한국인입니다. 중국팀이지만 한국인이에요 아핫핫" 이라 말했다. 한·중·일 3국의 직원이 다 있는 이 회사에선 중국어 한 마디 못하는 나조차도 입을 여는 순간 "헐 한국말 할 줄 아세요? 한국인 아닌 줄"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럴 만도 했다.
입사 첫날 화장실에서 그녀를 만난 나는 회사가 어떤지 물었다.
"너무 좋아요. 진짜. 너무 재미있고 회사 오는 거 너무 좋고"
그녀는 방방 뛰면서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입사한 지 한 달 반 정도 되던 때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근심 어린 얼굴을 한 사람이 되고야 만다. 중국팀은 당시 막 세팅되어 모든 사업을 처음부터 꾸려야 했기 때문에 막막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반면 마의 한 달 반 구간을 넘지 않았던 나는 첫날 화장실에서 방방 뛰던 그녀처럼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필 그때 대표님과 면담이 잡혔다. 신규 입사자들은 프로베이션 기간 3개월 중 딱 절반이 흐른 한 달 반이 되면 대표님과 회사생활이 어떤지 1대1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고민이라고는 프로베이션 통과뿐이었던 나는 힘든 일 없냐는 대표님의 끈질긴 물음에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동기 역시 나와 똑같은 상태라 전혀 고민이 없다고 말했단다. 너무도 긍정적인 우리들의 반응에 왠지 대표님의 표정은 좋지 않아 보였다.
면담이 끝나고 또 화장실에서 중국팀의 그녀를 만난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저도 딱 한 달 반 지나니까 근심이 밀려왔어요. 걱정 마세요"
힘든 점이 없다는데 대표님이 오히려 실망한 느낌이라고 털어놓자 그녀는 득도한 사람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이곳은 스타트업이다. 힘든 점은 앞으로 무궁무진했다. 그녀의 단언처럼 딱 한 달 반이 지나자 나에게도 근심걱정이라는 것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나는 한 치 앞날을 몰랐지만 대표님은 이 사실을 미리 아셨던 건지 HR 담당자에게 한 달 반이면 애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으니까 앞으로 상담은 두 달 이후로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토끼처럼 귀를 쫑긋하고 그 대화를 엿들은 나는 회사를 너무 안 힘들어해서 수습 통과 못 하는 것 아닐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걱정은 하나 더 있었다.
마케팅팀에는 오랜 시간 기자로 활동하신 시니어 분이 계셨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분이 해주시는 컨피덴셜 교육을 들었다. 회사 내부 정보에 대해 바깥에다 어디까지 얘기해도 되고 어디까지 안 되는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사실 기억 나는 건 거의 없다. 가령 '최근에 일본팀 숫자가 몇 명에서 몇 명으로 줄었어요' 라는 말을 하면 '저 회사가 지금 일본 사업을 축소하고 있구나'라는 단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던 정도만 기억난다. 교육 내용을 제대로 기억 못 한 부작용은 컸다. 겁이 많고 FM 타입인 나는 아예 회사에 대한 건 모두 입을 다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인들이 회사에 대해 물어보면 무조건 컨피덴셜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나는 절친이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 재직 중이라 더 그랬다. 매번 비밀이라고 말했던 나 때문에 친구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놈의 컨피덴셜'이라고 욕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타를 수정해줄 수 있냐는 관계사의 말에 그렇다고 답했다가 어드민 기능에 대해 말했다고 본부장님에게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그 뒤로는 더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스스로 다짐했다. 너는 천지 분간을 못하니 그냥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라. 사실 이 글을 연재하면서도 그렇다. 나에겐 이제 과거이지만 회사는 여전히 꿈을 향해 도전 중이다. 회사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나의 업무에 대해 자세히 쓰기는 힘들다. 글 속에서 마치 놀러만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사활을 걸고 치열하게 일하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스타트업이라 힘든 점도 셀 수 없이 많지만 나는 많은 멤버들의 20대와 꿈이 쌓인 우리 회사가 좋다. 그래서 꼭 잘돼야 한다.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 2016년 4월 6일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