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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떨림 Jul 21. 2021

스크루지와 살다(늘 되풀이하는 실수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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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의 해프닝을 통한 '실수'에 대한 고찰


오늘은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편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나의 남편은 대학생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난 선후배 사이다.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 사귀기 시작한건 사회인이 되어서였다. 선후배 시절에는 '깐깐한 선배' '개념없는 후배'로 인식하며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다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집에서 같이 살게되면서 이 사람의 '스크루지' 기질을 점점 알게됐다. 사실 연애시절에도 돈 관계에 있어서는 주고받기를 확실히 했다. 이 점이 딱히 나쁘진 않았다. 절대 손해보는 일도 없고 허트로 돈을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건을 고를때도 비슷한 수준의 제품과 비교를 해가며 가성비 좋은 제품을 골랐고 부당하게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에는 관련 업체에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정당하게 돈을 되찾았다.  


자신이 입고 쓸 물건에 대해서는 매우 야박했다. 입던 바지가 찢어지고 신발이 해져 구멍이 나서 더이상 입을 옷이 없어지거나 신을 신발이 없어야 새제품을 구매했다. 브랜드를 선호한달지 패션트렌드를 따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공부를 하거나 재테크를 할 때에는 과감하게 투자했다. 자신의 가치관이 확실한 사람이다.  


결혼생활이 무르익어갈 쯤 사건은 터졌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는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많은 살림도구(식기세척기, 인덕션, 로봇청소기 등)를 기계화 했다. 그리고 남편은 싱크대에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를  설치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처리기가 대중화되지 않았고 그에 따른 평이 천차만별이다보니 선뜻 구매하는 게 꺼려졌다. 무엇보다도 처리기에 70~100만원 돈을 소비하는게 과연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직접 온라인 쇼핑을 통해 음식건조기를 주문했다. 고구마나 감자, 사과 등을 말리는 이 기계를 어디에 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주말이되자 그는 나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그 건조기에 양파껍질, 밥풀 등등의 것들을 꺼내 말리기 시작했다.


"오,마,이,갓"

"이런 덩어리의 음쓰들을 말리면 냄새도 안나고 편하게 버릴 수 있을거야"


그 음쓰들은 하루가 지나도 잘 마르지 않았다. 말라도 큰 변화는 없었다. 몇날며칠을 머리맞대고 고민하더니 그는 "건조기가 성능이 별로 안좋네, 안되겠다"라며 음쓰 말리기를 멈췄다. "직접해보니 안되는걸 알 수 있었다. 성과는 있네"라는 말을 하는 그... 그래도 자신의 실수라는 걸 빨리 알아차려서 다행이었다.


다음 사건은 몇 달 지나지 않아 터졌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쌀쌀해진 날씨 탓에 추위를 느낀 나는 퇴근후면 보일러를 자주 켰다. 관리비 청구내역서를 보던 그는 "가스비를 아껴야겠다"며 나에게 보일러 사용법에 대해 이리저리 알려주었다. 밖에 나갔을 때 설정해야하는 '외출', '내부 적정온도' 등 상황에 맞게 보일러를 사용해야 그나마 가스비가 덜나온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날 나와 딸 그리고 엄마와 함께 주말을 이용해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2박3일 집을 비웠다. 오랜만에 들어간 집에는 냉기가 흘렀다. 남편은 자기혼자 집에 있는데 아깝다고 보일러를 한번도 틀지 않고 지냈던 것이다. 겨울 잠바에 양말까지 신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그러던 어느날 '띵똥~' 집에 택배하나가 도착했다. 내가 시킨적 없는 묵직한 네모난 박스가 낯설었다. 90년대 내 어릴적 집에서 썼던 그 기름보일러의 모양이었다. "설마..."


신이난 남편은 퇴근 후 늦은시간 주유소로 달려가 기름을 몽땅 받아왔다.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거나 도전할 땐 굉장히 흥분모드로 바뀌고 즐거워 한다.) 기름보일러에 연료를 가득채우고 신나게 보일러를 가동시켰다. 따뜻했다. 그런데 냄새가 너무 심했다. 하... 그런데 방바닥이 너무 찼고 작은 기름보일러 하나로 버티기에는 30평대 아파트가 너무 넓었다. 그리고 심지어 나는 둘쨰를 임신한 상태(초기)였다. 남편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성질이 나서 눈물이 났고 남편과 싸움이났다. 일부로 더 짠해보이려고 기름보일러 앞에 첫째아이와 움크려 누워있었다. 잘 기억이 안나지만 남편이 이번에도 자신의 실수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해 나의 겨울은 매우 추웠다.


지금도 남편이 무모한 도전을 하려고 하면 이 두 사건을 언급하며 자중하라고 말린다. 그리고 올 해 여름. 해외살이를 계획하면서 기존 가전제품을 모두 처분한 상태라 또다시 가전제품을 사야했다. 이리저리 들어갈 돈이 많다보니 남편의 셈도 꾀나 복잡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도 사고 에어컨을 사야하는데 그러던 찰나 나의 노트북까지 고장이 나면서 수리비가 많이 들어갔다. 남편은 '멀쩡한 노트북을 침수시켜 고장냈다'며 화를 냈다. 그 '화'의 불똥은 엄한 곳으로 튀었다. 계획했던 에어컨 구매에 대한 남편이 마음을 바꿨다.


"이번 여름엔 에어컨없이 지내"  처음엔 억울하고 성질도 났지만 9년을 살아오면서 느낀점이 있다보니 '없어봐야 힘든질 알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더위는 전례없던 폭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유치원 그리고 어린이집 등 기관들이 다 문을 닫고 가정돌봄을 권고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선풍기 두대로 올 여름을 버티고 있다. 남편은 "나의 실수였다"라고 할 것 뻔하다. 그리고 그래주길 바란다. 너무 덥다.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 사전적 의미로 실수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일으키는 인간의 행위를 뜻한다. 남편이 음식물 건조기를 사고 기름보일러를 사는 등의 행위는 순수했다.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스스로가 고안해 낸 혁신적인 행위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남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이와 같은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려고 하면 전례했던 실수를 되새기며 자신의 행위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실수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깨닫게 되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한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은 실수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분명 피해자도 있을 것이며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떠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수는 되풀이하기 쉬운 매혹적인 검은 유혹이다. 남편의 경우에도 형태는 다르지만 정리해보면 비슷한 종류의 실수를 저지르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의 기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실수를 반복하면서 옳고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실수가 나에게 이롭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를 밑거름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하는게 중요해 보인다.


실수에 관한 명언

◆ 실수하여 고치지 않으면, 곧 그것을 실수하고 만다. 실수하여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마라. - 공자

◆ 절대 후회하지 마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캐롤 터킹턴(미국 저널리스트)

◆ 한번도 실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알버트 아이슈타인


※아이들아빠는 매우 가정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는 부지런한 사람. 위 내용은 실수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이 사건의 단면만으로 남편을 평가해서는 안됨.


#실수

#밑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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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심야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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