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 Nov 21. 2021

스물셋에 푸르게 머무를 너에게

오랜 나의 친구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


야, 잘 살고 있냐?


입에 붙은 이 인사말이 툭 떠오르자마자 아차, 싶더라. 근데 어떡해. 난 그저 네가 어딘가에서 그냥 잘 살고 있을 것만 같단 말이다. 언제나처럼 삐딱한, 괜스레 더 툴툴대는 그 말투며 태도와는 달리 부지런히 과외를 돌고 사람들을 챙기면서 그냥 그렇게, 스물셋 그 모습 그대로. 근데 이렇게 문득문득 니가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단 사실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탁 조여와 잠시 숨을 고르고 지나가야만 해. 벌써 6년이 지났는데 이건 이렇게 매번 실감이 안 나.


기억력 좋지 않기로 소문난 나지만 네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던 순간은 영화 속 장면처럼 생생하게 기억나. 장난인 줄 알았어. 워낙 우리 서로 독하게 장난치면서 놀았잖아. 이번엔 너무 과한데, 이건 아닌데, 어서 너를 만나 붙잡고 때리면서 화를 내고 싶었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내 믿을 수 없었어. 그 해 늦가을, 그렇게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 쪼그라들기를 반복하는 너를 무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그 한 달의 시간은 고스란히 마음의 빚으로 남았어.


미안해, 미안해, 그냥 다 미안해.


이런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못해 미안해. 크론병이 있는 너에게 생각 없이 술을 따르는 게 아니었는데, 담배 좀 끊으라는 잔소리를 더 자주 하고 아예 뺏었어야 했는데. 서로 매번 꼬투리 잡으면서 투닥대고 술을 마시러 갈게 아니라, 카페에 좀 더 앉아 깊은 이야기도 하고 여행 계획을 짤걸. 마지못해 끌려가는 척해도 소풍이나 여행 가자고 하면 제일 좋아하는 거 다 보였었는데. 사진도 더 많이 남길걸. 스튜디오에 가서 제대로 된 사진도 한 장 남겼어야 했는데. 무엇보다 네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버리기 전에 더 자주 만나고 연락도 했어야 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는 모든 순간을 곱씹으며 후회를 반복해, 지금까지도.


그래서 남은 네 명은 대학 졸업 후 전국 각지로 흩어진 후에도 일 년에 몇 번씩은 일부러 시간을 내 꼬박꼬박 만나고 있는 것 같아. 너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새 모두 각자의 여자 친구, 남자 친구가 생긴 우리가 이렇게 나름 자주 만나 여행도 하고 우정사진을 남기긴 어려웠지 않을까. 너라면 센터 역할을 하며 모임을 주도했을 텐데 우리 넷은 그런 타입도 못되고. 매해 이맘때 너를 만나러 가는 길마다 우리는 성큼 쌓여버린 일 년의 시간을 새삼스레 마주해. 만나면 서로 살가운 말 못 건네고 틱틱대는 건 여전하지만 확실히 갈수록 대화도 둥글어지고 있어. 각자의 세상에서 겪는 일상 얘기며 나이와 함께 늘어가는 크고 작은 고민을 나눌 때면 투박한 말에 숨겨진 응원과 위로가 자주 오가곤 해.


너도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 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 전화하면 귀찮다고 짜증내면서도 내심 좋아하면서 바로 나올 거잖아. 우리에게 하루의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예전 그 날들 중 하루처럼 시간을 보내자. 웃긴 사진도 많이 찍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보고, 어차피 단 하루밖에 없다면 술도 그냥 왕창 마시자. 요새 너랑 이름이 같은 캐릭터가 유행하는 거 알지? 카페 사장 최준. 진짜 2년 치 놀림거리인데. 마초인 척하는 니가 제일 질색할 캐릭터니까 더더욱 지겹도록 우려먹어야지. 아 근데 그래도 그 와중에 꼭 사진관에 갈 거야, 다시 남겨질 우릴 위해서. 그 시절 핸드폰 카메라 화질은 아무래도 두고두고 아쉽거든.


어머니께서는 잘 지내실지 모르겠네. 네가 떠난 후 어머니와 연락하거나 찾아뵐 때면 우린 어쩔 줄을 모르고 계속 눈치를 살폈어. 우리를 보며 괜히 더 속상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혼란스러웠지. 나는 엄마에게 조언을 구했어. 엄마는 그때 그러더라, 언젠가는 준이 어머니께서 우리를 조금 덜 필요로 하실 순간이 자연스레 올 텐데, 그때까지는 종종 찾아뵙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어머님을 몇 번 뵈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께 연락드리는 게 더욱 조심스러워지더라. 우리가 학생의 태를 벗어가는 게 어머니께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드릴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다 변명이고 분명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갈수록 그 만남이 어쩔 수 없이  불편해지더라.


너희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어머니께서 꼭 아셔야 할 텐데, 우리가 너를 잊어서 더 이상 연락을 드리지 않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걸 말이야. 가족분들의 그리움에 비하면 티끌만큼도 안 되겠지만... 우린 정말 자주 너를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있는걸. 근데 이런 마음들은 어떻게 잘 표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우린 여전히 어리고 자주 혼란스러워.


준아, 우리의 나이가 벌써 서른이 다 되어가. 근데 우리의 시간은 여전히 스물셋 그 순간에 고스란히 고여있네. 너희 어머니는 매년 너의 스물다섯, 스물아홉 모습을 그리며 어떤 기분이셨을까. 되게 멋진 한의사였을텐데, 좋은 친구이자 아들이고. 이젠 어쩌면 누군가의 남편 혹은 아빠가 되어있대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까지 되었어. 마흔, 쉰, 예순... 지금은 상상도 되지 않는 그 나이에 다다르는 날에도, 나는 너를 떠올리면 늘 이십 대 초반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일 것만 같아. 젊은 너는 우리의 입가에 늘어가는 주름과, 정수리에 쌓여가는 새치를 보며 우리의 나이듦을 실컷 놀려줘. 우리만 늙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숨기고 그냥 부끄러운 척 웃으며 너의 젊음이 부럽다고 투정 부릴게.


부디 잘 지내줘. 좋은 사람들 곁에서 스트레스 같은 거 받지 말고. 해야 하는 거 말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마냥 행복하게. 그런 단어들이 치열하게 살았던 너에게 너무 어색하게만 느껴져 슬프지만, 그래도 그렇게 어딘가에서 푸르른 청춘을 살아가고 있기를 바라.


안녕, 코끝에 찬 바람이 스치고 네가 더욱 생각나는 계절이 왔어. 곧 인사 갈게.

작가의 이전글 우리 하루의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