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달키 Dalkey
한 해를 얼마 안 남기고 사진첩을 꺼내 보았다. 풍경 사진부터 내가 좋아하는 사람, 공간 그리고 음식까지 수천 장이 보였다. "결국 남는 건 사진"이라며 친구들을 만났을 때, 탁 트인 절경을 만나거나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볼 때, 먹기에 아까운 음식들이 눈 앞에 놓일 때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누군가 올해 찍은 사진 중 제일 마음에 든 사진과 그 이유.
- 인터뷰이 : 사진이 실물을 못 따라가는 사람 또는 (미안하게도) 사진이 실물을 추월한 사람
- 질문 : 올해 찍은 사진 중 제일 마음에 든 사진과 그 이유
아일랜드 어학연수 때 만난 D에게 물었다. 처음 만난 게 벌써 5년 전인데, 첫 만남부터 사랑스러운 느낌의 예쁜 동생이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아일랜드에 온 게 대단해 보였는데 그 이후에도 이곳저곳을 누비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진이 실물을 다 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지만 항상 그만의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이 있었다.
최근 D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교과목은 영어.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만났는데 초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니. 감회가 남달랐다. 체구가 아담한 편인데 고학년 중엔 D보다 크고 목소리가 꼭 어른 같은 학생도 있다고 했다.
고민 끝에 D가 사진을 건네었고, 난 보자마자 감탄했다.
“아일랜드 달키예요. 직접 본 풍경에 필름 감성이 입혀져 제 손으로 찍은 것 같지 않은 결과물이 나왔어요. 볼 때마다 그때 날씨랑 분위기랑 옛날 기억까지 새록새록 떠올라서 더 좋아지는 사진이에요.”
최근에 아일랜드로 다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도 받아 볼 수 있어 기뻤다.
5년 전 달키도 참 예뻤는데. 아일랜드는 정말 매일같이 흐리고 비가 왔다. 그중 5~6월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행복한 계절이었다. 그즈음 달키에서 바다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신랑과 그의 친구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만났는데 그때 당시 찍었던 사진을 꺼내보니 그 장면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달키는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시티에서 느껴지는 북적함이나 퀴퀴함은 없었다. 해변가로 향하니 정말 한적하고 조용했다. 바다 너머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도 만났는데, 내 마음도 함께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건너편에는 바위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커플부터 절벽 아래로 거침없이 다이빙하는 남자, 아빠와 놀고 있는 어린 소녀까지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수년이 지났는데도 생생한 거 보면 역시 경험과 기억을 연결시켜주는 건 사진이다. 문득, D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D는 친구의 필카(필름 카메라로 찍은) 인화 사진을 보고 반한 뒤로 작년부터 필카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휴대폰이나 디지털카메라처럼 여러 장 찍는 게 아니라, 필름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을 때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찍어 훨씬 더 값진 것 같다고. 여행 갈 때 꼭 필카를 들고 가야 여행에서 좋았던 풍경이 무엇이었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더 와 닿는다고 했다.
사진도 결국 사람의 손을 거치는 지라 사진마다 그 사람의 시선과 애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사진 한 장에는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을 지닌다. 사진 속에 있던 날씨와 풍경, 사람과 나눈 이야기, 그때 흘렀던 음악이 떠오르고 그 장면이 재현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그 찰나의 순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카메라를 집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분위기와 온도를 간직하고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