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그러함을 인정하는 것
인터뷰를 매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같은 사람을 매일 인터뷰했으면 어땠을까. 프로젝트를 함께 한 L은 친구가 없다는 핑계로 10년을 알고 4년을 함께 살고도 모르겠다는 남편 ㅇㅅㅁ씨를 자주 인터뷰했다.
내용이 재밌기도 했지만, 그들을 알아가는 느낌이라 자꾸 다음 인터뷰가 기다려졌다. 인터뷰가 끝나면 어느 남편의 신혼 일기를 엮은 책 <제가 이 여자랑 결혼을 한번 해봤는데요>에 이어 '제가 이 남자랑 결혼을 한번 해봤는데요'를 내달라며 조르기도 했다.
평소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편인데 사람 관계에 있어서 표현만 잘해도 무탈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에겐 조금 가혹한 편이다. 잘한 면도 미운 면도 인정하기 참 어려운데 오늘 인터뷰 대상과 질문을 보니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저는 예쁜 면은 물론이고 자신의 미운 면도 정확히 마주하고 인정하는 어른이 그렇게 멋지더라고요. 나를 주눅 들게 한 상대 또는 그 원인을 통해 내 안에 미묘한 심리를 인정하는 것도 참 멋지겠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 인터뷰이: 괜히 주눅 드는/부러운 사람
- 질문: 당신을 주눅 들게/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나요?
인터뷰 프로젝트를 하는 내내 일명 ‘ㅇㅅㅁ 시리즈’로 주목받아 부러운 L에게 물었다.
당신이 부러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L은 한참 고민하다 답했다.
"지금 그냥 생각나는 사람은 1년 전 술 먹고 흥이 나서 어깨춤추던 L이라는 분이 있어요. 그분이 부럽네요.”
인터뷰하던 당시, 난 교토의 한 라멘집에 있었다. 가게 안이 꽤나 고요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받고서 혼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과연, 그분의 삶과 L의 삶이 많이 다른 가보다.
“다시 그분을 보고 싶은데 아껴두고 있어요. 소주 한 병이면 만날 수 있는데 쉽게 만나긴 싫네요. 뭔가 진짜 다시 영접해야 할 순간이 있을 거 같아서.”
부러워하면서 왜 쉽게 만나긴 싫은지 물었더니, 엄청 맛있는 과자를 먹지 않고 아껴두는 마음과 같은 거라고 말했다. “뭔가 엄청 소중하거나 특별한 자리에서 만나고 싶어요.”라는 말과 함께.
1년 사이 그에겐 예쁜 딸이 생겼다. 엄청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가 이미 눈 앞에 있지 않냐고 물었다.
“아 그들 앞에선 만날 수 없어요. 소중하고 특별한 자리가 곧 오겠죠.”
우리가 떡볶이 만남을 오래 쉬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떡볶이를 먹으며,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만나 근황을 나누었는데 말이다. 현재를 부정하진 않지만, 과거의 자신을 부러워한다는 L을 보니 조금 씁쓸했다. 그가 말하는 소중하고 특별한 자리는 과연 무엇일지 또 언제가 될지 궁금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계속 부러운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게 나에겐 이기고 싶은 마음보다 닮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까운가 보다. 그러니까 L이 힘을 조금 더 내주면 좋겠다. 닮고 싶은 사람이 기운 없으면 덩달아 힘이 빠지니까 말이다. 가까운 날 L과 떡볶이 만남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