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편 말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by ㅁㅇㅈ

친한 친구 K가 결혼을 했다. 그가 처음 결혼을 알릴 때, 신기하면서도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K는 한 때 비혼을 선언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결혼과 제일 먼 사람'으로 심심찮게 꼽혔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20대 초반이었던 나와 친구들에게 '결혼'은 너무나 먼 미래였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거나 연애보다 학업에 더 관심이 있다는 단순한 이유들로 순서를 매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친구 두 명이 후발대로 뽑혔는데 그중 한 명이 K였다. 그들은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둘이서 실버타운을 짓고 잘 사겠다며 쿨한 마음을 내비쳤더랬다.


그렇게 철없던 내기가 잊힐 즈음,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일이 생겼다. 우리 사이에서 '결혼'이라는 단어가 진지하게 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타자는 다름 아닌 K였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며 놀라 했고, 도대체 언제, 왜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문득 같은 팀 디자이너인 R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남편과 싸워도 오래가지 않아 ‘부부 단합대회’를 한다는 그의 말이 퍽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 인터뷰이: 주변의 기혼자 중 1인
- 질문: 결혼을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R은 어느 순간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을까.

“음... 남들은 '이 사람이다' 느낌이 왔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자연스럽게? 결혼할 나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남편이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다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이유가 이런 건가 싶기도 하네요. 서로 취향도 잘 맞고, 말도 잘 통하고 항상 저를 배려하는 마음에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혼도 큰 결심의 순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R이 남편을 처음 만난 건 20대 후반. 첫인상을 중요시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했는데, 남편의 첫인상은 ‘별로’였다고 했다.

서로에게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고 한다.

“스타일리시하다고 들었는데, 그렇진 않네요?”
“잘생겼다고 들었는데, 그렇진 않네요?”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어찌 됐든 서로 첫인상은 별로였다고. 그런데 저녁을 먹으며 편히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 굉장히 잘 통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남편은 R에 적극적으로 대했다고. 그렇게 연애는 1년 정도, 결혼은 3개월 만에 골인했는데 이때도 남편의 적극성이 빛을 발했다고 한다.


현재 결혼 생활은 어떠냐고 물었는데 “2년 정도 되니 원하던 ‘신혼’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보통 신혼이라 하면, 붙어만 있어도 좋은, 혼인한 지 얼마 안 된 부부에게 붙이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R은 오히려 신혼보다 결혼 3년 차인 지금이 더 좋다고 했다. 결혼 초기에는 정말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꿈꾸던 신혼 느낌이 이런 거겠다 싶다고.


아차 싶었다. 꿈꿔오던 신혼 생활이 깨가 쏟아지는 대신 박이 터지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달콤한 나날들보다 콩깍지가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서로의 모르던 모습을 알아가는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R은 본래 평화주의자라 모르는 사람이 본인을 툭 치고 가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남편과 싸우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싸운다고 했다. "남편은 항상 내 편이라는 걸 아니까"라면서 말이다. R은 결혼 선배로서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건넸다.


"결혼은 복불복이에요. 너무 환상 갖지 말고 나를 진짜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세요."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행복한 결혼을 하려면 '사랑'보다는 '조건'이라고. 제 아무리 단단한 사랑이라 해도 사랑은 밥 먹여 주지 않지만 탄탄한 재정과 탁월한 능력은 밥 먹고 사는 일을 풍요롭게 할 테니까. 이 세상에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사람을 만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에 '사랑'보다 '조건'이라는 말에 반기를 들고 싶다. 나에겐 밥 먹고 살 일을 걱정하는 것보다 밥 한 끼라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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