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Non-Fiction, 2018)
영화 초반, 주인공들이 대화를 주고받는데 펜을 꺼내 적고 싶을 만큼 지적이었다. 성공한 출판사 편집장 그리고 새로 영입된 디지털 마케터, 출간을 앞둔 소설가와 편집장의 아내가 서로 외도 상대라는 것을 알기 전까진.
디지털 시대가 도래한 만큼 편집장 알랭은 종이책과 E북 사이에서 고민한다. E북이 가진 매력을 인정하면서도, 디지털 마케터 로르와 이야기할 때는 종이책을 고수했다. 그런데 소설가 레오나르와 이야기할 때는 종이책도, 그의 소설도 이제 달라져야 함을 이야기한다.
일터에 돌아와서도 알랭과 그의 아내 셀레나는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종이책이냐, E북이냐'의 기로에 서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개중에는 글은 책으로만 읽고, 책이 주는 감성을 원하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블로그에 가볍게 글을 쓰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디지털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레오나르는 결국 새로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고 작은 출간 기념회를 열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선 신간을 손꼽아 기다린 팬들의 환영 인사보다, 그의 소설이 불편한 대중들의 날 선 질문들이 오간다.
소설 속에 실존 인물을
모델로 쓸 권리가 있는가
레오나르는 '자신의 작품이 팩션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으면 쓸 수 없을 정도로 세세한 스토리에 사람들도 알아 차린 걸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과 여행 장소, 영화 제목 등을 교묘하게 바꿨지만 사람들은 그와 공개 연애를 했던 스테파니라고 추측했다.
다른 추측을 한 사람도 있었다. 실제 소설 속 주인공이자 외도 상대였던 셀레나 그리고 그의 남편 알랭이었다. 레오나르의 신간을 왜 계약하지 않았냐는 셀레나에게, 알랭은 '그의 항상 같은 레퍼토리가 지겹다'고 단언한다.
사실과 허구,
그 경계를 알 수 있을까
소설을 그동안 허구 또는 상상에 그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꾸며낸 이야기’였다. 소설은 소설가가, 결국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려 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사생활, 습관, 취향을 너머 깊숙한 가치관이 소설 속에 투영되니 완전 허구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레오나르가 소설을 출간했을 때, 지인과 대중이 팩션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영화 끝에는 알랭, 셀레나 부부와 레오나르, 발레리 부부가 외곽으로 나와 한가로이 식사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발레리는 남편 레오나르에게 자신이 임신했음을 고백한다. 레오나르는 행복하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다고 덧붙이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참 이해할 수 없으리 만큼 쿨하면서도 파리지앵들의 일, 사랑, 삶을 오롯이 담아냈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완전 허구 같지 않았던 영화였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논- 픽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