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쉬에게 한국 음식 대접하기
오늘은 홈스테이 가족 제럴딘과 제시카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기로 한 날이다. 한국인은 난생처음이라는 아이리쉬 그녀들. 가끔 한국에 대해 물으면 성의껏 답하곤 했는데 며칠 전, 여느 날과 같이 "한국에도 이거 있어?"“한국의 ㅇㅇ와 비슷하다" 등등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는데 제럴딘이 언제 한번 한국 음식을 해주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마침 한국 음식이 그립던 찰나였다. 이게 웬 떡이냐는 한 70% 정도였고, 나머지는 무얼 해주면 좋을지 하는 고민과 부담이 이어 생겼다. 물론 외국인에게 한국을 알리고 한국 음식까지 대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겠지만 혹시나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무얼 해줘야 하나 처음 생각이 든 건 나의 사랑 너의 사랑 떡볶이. 한국에서 가져온 고춧가루도 있고 하니 떡볶이를 해줘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 외국인이 가장 꺼려하는 음식이 ‘떡국'이라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떡이 아무 맛도 안나는 고무를 씹는 느낌 같아 이해할 수 없는 음식이라고 이야기하는 인터뷰였다.
이를 간과할 수 없어 다른 음식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결정한 건 삼겹살과 김치찌개였다. 삼겹살은 어차피 고기 맛으로 먹는 거니까 평타는 보장할 거라 믿었다. 또 고기를 쌈 싸먹는 거 자체에도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김치찌개는 평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김치’라 말한 적 있고, 한국식 수프로 '찌개'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 꼭 소개하고 싶었다.
김치찌개는 보글보글, 삼겹살은 지글지글되는 가운데 약 1시간여 만에 내 생애 첫 김치참치찌개와 삼겹살이 완성되었다. 제럴딘은 우리의 식탁을 보고 아일랜드와 한국이 만난 국제적인 자리라 했다.
어제 저녁, 제럴딘은 내일 제대로 한국식을 해보겠다며 젓가락 사용법도 알려 달라고 했다. 내가 왼손잡이고, 영어로 가르쳐야 하다 보니 조금 애먹었지만 내심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오늘 식탁엔 젓가락도 같이 올라왔다. 어제는 제시카가 곧잘 하기에 천재인가 싶었는데 오늘 보니 제럴딘이 진짜 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포크 없이 젓가락으로만 식사를 했다.
식사 내내 제럴딘은 정말 맛있게 먹어주었고, 제시카는 김치찌개를 한 입 먹어보더니 물 잔에 바로 손이 가더라. 삼겹살만 그나마 좀 먹고 아쉽지만 나와 제럴딘만 맛있게 먹은 저녁이었다.
나중에 유학원 주임님께 물어보았더니 외국인에게 대접하는 한국 음식 중 최고는 불고기와 유부초밥이라고 했다. 외국인에게는 라면도 매워서 김치찌개는 잘 못 먹을 거라고. 난생처음 맛보는 음식이고 매웠을 텐데도 새삼 맛있게 잘 먹어준 제럴딘에게 고마웠다. 아마도 제럴딘은 먼 땅에서 가족을 떠나 온 내가 오랜만에 고국의 음식을 맘껏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맛보는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함께 나누는 기쁨이 더 컸다.
식구란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하지 않나. 어느덧 내가 이 집의 식구가 되었구나 느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