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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ㅇㅈ Nov 17. 2021

아일랜드에서 내 공간을 마련하는 일

홈스테이를 떠나 첫 쉐어하우스 입성기

기약했던 홈스테이 3주가 가까워져 새로 지낼 집을 구해야 했다. 아일랜드 가정집에서 문화를 체험하고 의식주 걱정 없이 지낸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내가 계획한 1년을 지내려면 그 이후부터는 쉐어하우스에 살아야 했다. 쉐어하우스는 말 그대로 집을 나눠 사는 형태로 보통 주방이나 거실은 함께 쓰고, 집 안의 여러 방 중 하나를 세 들어 사는 것이었다.


어학원에서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그 어렵다는 시티에서 방을 척척 구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같은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본인 나라로 돌아가면 그 방에 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한 방에 두 명 이상 더블 룸, 트리플 룸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꽤 오랜 시간동안 동생과 한 침대에서 자고 같은 방을 썼지만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과 방을 나눠 쓰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었다. 시티를 조금 벗어난 외곽으로 가더라도 나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일랜드에서 내가 구한 첫 집, 아니 첫 방


그렇게 힘들게 구한 방에서 내 물건들을 내려놓고 삥- 하고 둘러봤을 때 뿌듯함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집은 '촉'이란 게 왔다. 뷰잉을 잡는 것도 1분 만이었고 바로 다음 날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보통 전화를 한 번에 받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다시 전화하거나 문자로 남기곤 하는데 여기는 뭔가 예감이 좋았다.


더 간절하면 꼭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휴대폰 폰트도 '예감좋은날체’로 바꾸었다. 그만큼 많이 간절했었나 보다. 그렇게 집을 보러 가는 날, 처음으로 헤매지지도 않고 약속 시간보다 빨리 뷰잉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집은 새 카펫을 깔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었다. 덕분에 난 아주 깨끗하게 휑한 방만 볼 수 있었다. 거리가 조금 멀긴 했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주인도 좋아 보여서 더 이상 이런 조건의 방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여기서 살고 싶어”라며 “나 말고 뷰잉하러 올 사람 많아? 언제 결정해 줄 수 있어?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집주인은 약간 놀라면서 더 생각해보지 않고 결정하는 거냐며 되물었다. 난 한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건 충동적인 게 아니었다. 여태 뷰잉하러 다니면서 꼭 봐야 할 부분들을 알고 있었고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탄히 뷰잉이 잡힌 순간부터 내 집이 아닐까 기대했었고, 집주인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 정도 집이라면 괜찮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정해진 홈스테이 기간이 끝나기 전에 집을 구해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3시까지 연락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헤어졌고, 1시간 만에 나는 그렇게 기다렸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당장 내일부터 들어와서 살아도 된다고 말이다. 언빌리버블, 어메이징, 하우 어 판타스틱 온갖 감탄사를 다 붙이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이렇게 하루 차이로 희비가 갈릴 수 있다니 놀랍도록 놀라웠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홈맘인 제럴딘에게 전했다. 제럴딘도 너무 잘됐다며 기뻐해 줬다.


한국에서 자취 생활 한 번 해본 적도 없던 내가 외국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았다. 어학원 선생님 존을 비롯해 홈맘 제럴딘, 친구 크리스티나, 가브리엘, 멜리샤 그리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고 도와준 덕분에 집을 얻을 수 있었다. 내 공간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이 말은 곧 제럴딘과 제시카와는 이별을 앞둔 셈이었다.


나의 홈스테이 마지막 저녁은 코티지 파이였다. 코티지 파이는 감자를 으쨔으쨔 으깨고 치즈를 채채채채 썰어서 뒤덮은 파이인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파이 안에 양파와 파프리카 등등 각종 야채가 토마토소스로 버무려져 있는데 특히 감자와 치즈가 크리스피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아서 처음 먹었을 때 눈이 동그래졌었다. 그걸 제럴딘이 기억하고 마지막 만찬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내 사랑 코티지 파이


언젠가 이런 연구 결과를 접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아도 하루의 마지막, 잠자기 전 엄마 아빠한테 꾸중을 듣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그날은 좋지 않은 하루로 기억된다는 말. 왜 이 연구가 갑자기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홈스테이 끝에 다다르니 마침표가 좋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서 홈스테이가 시작됐던 첫날부터 좋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모두 기억하지만, 제럴딘과 제시카와 꼭 웃는 모습으로 헤어지고 싶었다.


꼭 좋은 집을 구해서 행복하게 안녕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이 집을 떠나더라도 종종 잘 지내는지 서로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 인사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일랜드에서 만난 내 첫 가족 그리고 내 집. 그들과 웃는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한 저녁이었다.


아일랜드에서 만난 첫 가족, 제럴딘과 제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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