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원작 읽기 2
주인공 ‘나’는 마지막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주 잠깐 지나가는 인물조차 이름이 나오는데 ‘나’만큼은 끝내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서술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마 그녀 자신조차 원래 이름이 아닌 드윈터 부인으로 불리길 바라서였을 것 같다.
‘나’는 시종일관 자기 비하를 하고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는 인물이다. 그녀의 독백을 읽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서 책을 몇 번이나 덮게 된다.
반면 레베카는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정신을 태생부터 갖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주변인들의 묘사에 따르면 말이다.
이야기는 레베카가 이미 사망한 후부터 전개되고 플래시백으로라도 직접 등장하는 장면은 없다.
오직 주변인들의 증언만 존재할 뿐이다.
레베카는 아름답고 지적이며 안목이 뛰어나고 사교적이라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는 그야말로 완벽한 인물이다.
때문에 미스터 드윈터가 레베카의 사망 후 1년 동안 근심에 빠져있는 것은 완벽한 그녀를 잊지 못해서라고 주변인들은 추측한다.
주인공 ‘나’ 역시 드윈터 부인이 되고 난 후까지 자신이 얼마나 레베카와 비교해 부족한지, 그것을 주변인들이 얼마나 수군거릴지 의식한다.
뮤지컬에서는 <새 안주인 미세스 드윈터>라는 넘버에서 맨덜리 저택 사용인들이 ‘나’와 레베카를 비교하는 노래를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실제로 그들이 뒷담화를 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이었고 직접 그녀 앞에서 수군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레베카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을 껄끄러워하고 그나마 마음 놓고 대화하는 상대는 새로 들어온 메이드 클라리스뿐이었다.
클라리스는 메이드 일 자체가 처음이라 다른 저택의 귀부인과도 비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더 안심한다.
‘나’가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은 레베카를 아주 오랫동안 보필해온 맨덜리 저택의 관리인 댄버스이다.
댄버스는 비혼 여성이라 부인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지만 소설이나 뮤지컬에서는 부인이라는 호칭을 붙여 부른다.
영문 원작 소설을 본 적이 없기에 작가가 댄버스에게 미시즈라는 호칭을 붙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댄버스는 레베카를 가장 오랫동안 봐온 인물이다.
‘나’의 두려움은 완벽한 귀부인과 생활한 사람들이 자신의 미숙함을 비웃지 않을까 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방법은 미스터 드윈터의 사랑을 온전하게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나’는 지나치리만큼 드윈터의 사랑을 갈구한다. 어떤 장면에서 ‘나’는 드윈터가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언가 결핍된 상태이길 바라는 것처럼도 보인다.
가장 최근 뮤지컬 레베카에서는 비교적 젊은 드윈터 역할의 배우가 있었지만, 드윈터는 ‘나’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은 인물이다. 그래서 가끔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 중에는 드윈터와 ‘나’가 너무 부녀지간처럼 보여 극에 몰입하기 힘들다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대놓고 드윈터와 댄버스가 ‘나’와의 나이 차이에 대해 비관적 발언을 하기도 한다.
소설은 거의 후반까지 ‘나’가 맨덜리 저택에서 느끼는 불안과 이미 죽은 레베카를 이길 수 없다는 한탄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맨덜리 저택으로 돌아온 후 드윈터는 이전만큼 그녀 곁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드윈터라는 인물은 내 기준에 굉장히 비호감 캐릭터다. 그가 레베카에게 환멸을 느낀 포인트는 물론 공감해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애초에 그 역시 레베카의 겉모습에 반한 것이었고 실체를 알게 된 후조차 자신의 체면만 생각하고 끝내 최악의 선택을 하고서는 대단히 타당한 사유였던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가 바라는 아내가 어떤지 너무 뻔히 보여서 불쾌하기도 했다.
드윈터는 ‘나’가 평생 욕망을 모르는 소녀이길 바란다. 가장무도회에서 그녀가 무엇으로 변장할지 고민할 때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권할 정도다.
레베카가 자신의 욕망에 매우 충실했던 인물이라 반작용으로 욕망하지 않는 여성을 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아내 역시 자신과 같은 개인이라는 생각보다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정에 꼭 맞는 퍼즐 조각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욕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여성의 욕망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물론 소설 속 레베카의 욕망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30년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드윈터 부인으로만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레베카는 드윈터 부인의 삶 대신 레베카로 살기를 바란 여성이다. 반면 ‘나’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기꺼이 드윈터 부인이 되는 것을 선택한 여성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가 드윈터 부인이 되길 선택한 것은 순종적인 아내로 살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미스터 드윈터를 온전히 독점하기 위해서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레베카의 욕망이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는 것이었다면 ‘나’의 욕망은 오로지 한 사람을 완벽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소설에서 마지막 ‘나’의 선택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지만 분명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