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한 도전자의 기록
사람들이 흔히 손재주가 없을 때 똥손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는 그 비유에 정말 딱 맞는 똥손이다.
거의 40 평생 나에게 손재주가 없음을 인지하고 살아왔지만,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손으로 하는 일에 동경을 갖고 도전해왔다.
아무리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도 성실하게 노력하면 결국 어느 정도 수준의 실력을 갖기 마련인데, 안타깝게 나는 이 성실함마저 결여된 채 그저 도전과 실패만을 반복해 왔다. (심지어 포기가 빠르다.)
구체관절 인형에 빠진 초기 그러니까 거의 15년 전쯤 나는 인형을 직접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정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금손 분들이 제작 과정을 올려둔 블로그를 보고 재료를 구입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어이없는 것은 심재 구입을 위해 철물점에 가서 방문(房門)만 한 스티로폼을 사 온 것이다.
그걸 낑낑거리며 집으로 가져가서 마침내 심재 깎기에 도전!!
어마어마한 스티로폼 조각이 온 방안에 날렸다. 아뿔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방안에 날리는 스티로폼 조각은 어떻게 해도 수습불가 상태였다. 그 순간 내 안에 충만했던 의욕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남은 것은 어마어마한 청소.... 스티로폼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을 보고 몇 분 전 철물점에 갔던 자신을 원망도 했지만 상황을 수습할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구체관절 인형 제작 도전은 재료를 구입한 첫날 실패로 끝났다. 석분 점토는 아예 뜯지도 못 했다.
그날 어떻게 방을 치우고 잤는지는 나의 갸륵한 뇌가 셀프 방어 차원에서인지 완전히 삭제해주어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 나는 조금 소박하게 인형 옷 만들기에 도전했다. 당시에는 오로지 손바느질로 드레스 만들기에 도전한 것이었는데 마침 인형 옷 diy키트를 판매하는 곳이 있어서 단숨에 결제를 해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 블라우스 만들기 등을 배울 때도 바느질이 너무나 엉망이라 엄마 찬스로 과제를 제출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왜 또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바느질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똥손!! 나는 바느질뿐만 아니라 재단도 못 했다. 옷 만들기에서는 바느질만큼 중요한 것이 도안대로 옷감을 자르는 것인데 나는 똥손에 걸맞게 재단도 정말 정말 엉망으로 했다. 옷감을 자르다가 몇 번이나 집어던지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고 겨우겨우 재단을 끝낸 후 마침내 박음질만 할 줄 아는 능력으로 드레스를 완성했다. 그런데 결과물은 샘플사진과 매우 다른 모양이었고 심지어 내 인형에게 맞지 않았다. 분명 msd 표준 사이즈였는데 재단을 잘 못 했거나 도안선에 맞춰 바느질을 한다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몇 cm 안쪽으로 들어가 박음질이 된 것이리라.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은 최근 나는 육일돌(1/6 사이즈 인형)에 빠졌다.
그리고 유명 인형 옷 제작자 분의 블로그에서 책 홍보 글을 발견하고 그분의 책을 구매....
이번에는 손바느질이 아닌 재봉틀로 도전하자는 생각에 중고나라에서 가정용 재봉틀도 구매했다.
10년 전에는 존재도 몰랐던 올풀림 방지액이며 온갖 실과 원단도 주문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재봉틀을 받고 나는 대체 이 기기를 어떻게 세팅해야 할지 몰라 유튜브를 무한 검색해 겨우겨우 1시간 만에 윗실과 밑실을 끼울 수 있었다. 솔직히 이때 1차 의욕상실이 오긴 했지만 아직 주문한 원단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책을 보면 왠지 나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또다시 근거 없이 자리 잡아 아직은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재료가 도착했다. 아직 일자 박기 한 차례 도전밖에 하지 않은 나였지만 도안에 맞춰 일단 원단을 잘랐다. 아차차, 그렇다 나는 재단을 못한다. 그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무튼 그래도 이것은 연습이다라고 자신을 위안하며 다 자른 옷감을 재봉틀로 끼웠다. 일자 박기 도전!!
윗실이 빠져버렸다. 이걸 어떻게 끼웠는지는 이미 기억에서 아스라하게 희미해져 있는 상태다. 겨우 며칠 지났다고.... 윗실이 빠짐과 동시에 나의 의욕도 사라졌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를 완전히 가린 재봉틀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최근에는 인형 룸 만들기에 자꾸 눈이 간다.
아직 목재를 사지는 않았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