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포츠 조선>
한국방송대상 시상식 구경을 갔다가
평소 주목하던 연출자의 비상을 지켜볼 수 있었다. 대상을 거머쥔 송연화 PD, 내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머물렀다.
그녀는 단 몇 편만으로 저력을 입증한 경우라 더 눈길을 끈다. 공동 연출로 이름 올린 '옷소매 붉은 끝동'. 그 이후 제작한'멧돼지 사냥' 4부작 드라마가 유일한 첫 단독 연출작인 것으로 안다. 스타 의존도 없이 긴장감 있는 연출과 밀도 높은 분위기로 호평받은 작품이다. 그 바로 다음이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다. 첫 장편 시리즈 데뷔작인 셈이다.
송연화 PD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흔들림 없이 완수하며 저력을 입증했다. 큰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국내 거의 모든 시상식의 연출상을 석권했다. 작품은 칸 시리즈 초청으로 해외 무대에도 선보여졌다.
그녀의 스릴러는 단순히 오싹한 공포가 아니다. 아름다운 처절함과 쓸쓸함, 인간관계의 공허함까지 미학적으로 스며 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주인공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불편한 공간이다. 낯설기까지 하다. 공간을 채운 이질적 광조가 그러한 분위기를 훌륭히 담아낸다. 카메라가 바라보는 시선, 그 구도들 또한 나는 좋았다. 대화하는 부녀의 거리도 철저히 계산된 장치였으리라 추정한다. 의미 없는 공포 분위기에 의존하지 않고,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주며,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잘 계산된 영상으로 보여준다. 진짜 스릴러는 사람의 내면 속에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씬과 씬의 연결, 촬영 기법과 편집이 공부하듯 반복해 볼 만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다시 드라마를 쓰고 싶은 미련 길어 올릴 만큼 인상적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후 축하를 건네며 진심으로 그녀의 다음 스텝을 응원했다. 머지않아 봉준호ㆍ박찬욱 감독을 잇는 대한민국 대표 거장이 되겠다 덕담하니 그녀는 누가 들으면 큰일 날 말이라는 듯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끝내주는 스릴러를 찍은 감독의 이질적인 귀여움과 상냥함은, 큰 키와 날카로운 연출력 사이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언젠가 그녀가 아카데미 트로피까지 들어 올리는 날 이날 함께 찍은 사진이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불행하게도 뒤로 왔다 갔다 하는 박보검·이준혁 같은 꽃미남들 때문에 오징어가 되어버렸다. 평생 공개도 못하겠구나 싶어 아쉽다.
송연화 PD의 성취는 ‘다작’의 결과가 아니라, 압축된 기회 속에서 드러난 역량이다.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쉽게 얻지 못하는 타고난 감각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을 지나 인정하게 된 사실 하나가, 타고난 천재는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송연화 PD에게서 그런 천재의 향이 스멀스멀 풍긴다.
머지않아 그녀의 이름이 한국 방송·영화계의 새로운 좌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송연화의 영상 시대가 이미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