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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eader Mar 16. 2020

아름다웠던 소녀, 까슈

장진영의 영화 [국화꽃 향기] 속에서


사진 속의 딱 이 모습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여고생 장진영은.


너무 일찍 떨어져 버린 아까운 인생.
이 아이의 아버지와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기어이 체하고 말았다.
내가 이런데 자식 잃은 아비의 맘은 오죽할까.

감히 울 수조차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입안의 음식물 씹는 횟수를 세며 마친,

더없이 슬픈 식사였다.




여고시절, 중성적 매력 뽐내며

적지 않게 시선을 끄는 아이가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보다 위였던, 

계열반 후배의 인연으로 

꾸준히 얕게도 스쳐왔던 사람.


매점 가는 길 돌다리에서 마주칠 때면

시크한 눈인사로 선배 폼이라도 잡으려 했건만,

이 멋진 후배님에게 반해있던 단짝 친구는

기어이 팬심을 드러내곤 다.

덕분에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지.


아이가 훗날 큰 배우가 되었다.

우리 둘 모두 방송 초년생이던 즈음,

같은 프로그램에서
작가와 배우의 인연으로 만날 뻔했었다.
한 달 간격을 두고 그녀는 나갔고
난 새로 투입되며 어긋났다.


그녀가 여고시절 흑장미로 불렸다는

기사를 봤었는, 사실 선배들 사이에선

모델 진희경을 닮았다, 해서

진희경의 대표 광고인 '까슈'라는 별명으로 통했었다.

배우 장진영이 후배 장진영과 동일 인물임을

둔한 나는 그녀가 이미 투병생활을

시작하고서야 인지했다.

'까슈'로만 기억했기에

둘의 연관성을 의심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별이 되고 한참이 지났다.


방송 촬영 준비로 그녀의 아버지를 찾게 됐다.
어르신과 생선 정식으로 점심을 들며

조심스러운 대화가 오고 갔다.

가시를 발라내는 손이 자꾸만 버벅댔다.

더 아플 어르신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전라북도 임실 장진영 기념관.
딸의 영혼이 머물 집 한 채 정도는 남기고 팠던 

아버지의 마음은

들고나는 관광객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직은 마음을 다잡을 수 없음.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계신 이유였다.

못 견디게 그리울 때면
아내와 기념관 한쪽 쪽잠을 자며

딸의 체취에 머물다 온다는 사연.

오래된 인터뷰를 더듬어가다 마음이 꼬여

모든 정지 돼버렸다.


스치듯 인사 나눈 그녀의 언니가 떠올랐다.

두 딸 중 하나가 가버렸으니
홀로 남은 언니는 휘청대는 부모를 지키며
슬퍼할 겨를도 없어 보였다.
하나의 부재가 모두에게 걷어낼 수 없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멋진 소녀였던 까슈.

은사님의 호출을 받고 20여 년만에 교정을 찾았어.

매점으로 건너가던 돌다리가 이젠 사라졌더라.

대신 그대가 후배들을 위해 이어온 장학사업의

사연이 전해지고 있었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매점으로 뛰어가다

멈춰 인사하며 웃던 네가 떠올라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시절 우리를 꿈에서 보았네.

앞머리 꾹꾹 누르며 어색하게 인사하던

여고시절의 너에게

미래의 너를 얘기해주고 싶은 건가 봐.
아까운 인생 되돌려주고픈 마음에
부르고 또 불렀던가.
조심하라고,

부디 건강 살피라,

그날로 돌아가 이 한 마디만 전할 수 있다면...


네가 무슨 꽃을 좋아했었는지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다시 보는 날

 한 송이는 전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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