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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절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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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eader Mar 18. 2020

소녀의 기도


자주,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그럴 나이가 됐나 보다.




어린 시절,  
피아노 치는 엄마의 존재는

 4남매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좁다란 골목으로

'은파'나 '소녀의 기도'같은 곡이 흘러나오면 고무줄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멈칫, 귀를 기울이곤 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나를
피아노 치는 집 막내, 라 칭하며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 대기도 했다.
별 볼 것 없는 동네의

먹고살기 바빴던 골목 사람들에겐

엄마의 피아노 연주가

위화감 느껴지는 뭔가였으리라.




가난한 농사꾼의 여섯 남매 중 하나였던 엄마가
당시 만석꾼의 외동딸쯤은 돼야

만져볼 수 있었던 피아노를 배운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60년대, 더욱이 시골마을엔

흔치 않았을 피아노 교습소.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선율에 매혹돼

주변을 맴돌곤 했을 소녀.
그 갈증을 알아봐 준 피아노 선생님은
엄마의 손을 이끌어 피아노 앞에 앉게 했다.
수업이 없는 이른 시간에

공짜 강습을 해주겠노라 손을 내민 것이다.


희고 검은건반에

처음 손가락을 올려놓았을 소녀의 희열은

 어느 만큼의 크기였을까.




엄마에겐 긴 세월이 흐르도록 버릴 수 없는

악보집 하나가 있다.
엄마가 손수 그린 명곡집 악보다.


엄마는 피아노를 배워 무엇을 할 거냐 꾸중하는 외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강습을 받았다 한다.
악보집을 살 돈을 구하기도 힘들었기에
피아노를 소유하지 못한 엄마에게
겨우 구한 악보집은

가장 귀한 보물이었다.


짓궂게도 사춘기가 도래했던 삼촌은
엄마와 크게 다툰 날
그 악보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눈물로 채워 넣은 음표들이
찢어져 나간 사이사이 채워졌다.

인쇄소에서 복사한 듯 곱게 그려진
소녀의 음표들...
쏟아낸 눈물 흔적 고스란히 남아

얼룩진 악보...

수십 년 빛바랜 악보집을 더듬다 보면
먼 과거 교복 입은 소녀였을 엄마와
마주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가만히 다가가 눈물이라도 닦아주고파
울컥해지는 마음.




우여곡절 많았지만
피아노는 가난했던 소녀를 일으켜

꿈을 꾸게 했다.
대개는 공장으로 돈벌이를 위해 떠났던
친구들 틈 속에서
엄마는 악착같이 음악의 꿈을 놓지 않았고,
기어이 음악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은

긴 세월 붙잡고 있던 엄마의 꿈을 내려놓게 했다.
가난도, 외할아버지의 꾸중도 꺾을 수 없었던 소녀의 꿈을 잊히게 한 것은 결국 모성이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에게 갚을 수 없는 부채가 있음을 인지했다.  




내가 여덟 살 무렵 들였던 검은색 영창 피아노는

35세월 엄마의 집 한쪽을 채우고 있었다.
엄마가 소유해보는 첫 피아노였다.
아침마다 정성으로 건반을 닦는
엄마의 투박한 손엔
소녀의 꿈이 어려있었다.
그 꿈이 설레고 아름다웠던 만큼
굳어버린 손가락 앞에 눈물도 깊어진다.


지난해 이사와 함께

엄마는 낡은 피아노를 포기해야 했다.

서글픔을 눈치채고

언니가 선물해준 딸의 피아노를

엄마의 집으로 옮겼다.

산타라도 만난 양 함박웃음 보이던

주름진 얼굴.


엄마의 피아노 연주를
녹음해두기로 마음먹었었다.
머지않아 영영 듣지 못할 이 선율을
잃을 수 없어서다.
더듬더듬 음악이 끊길 때마다
더 일찍 기록하지 못했던 나를 탓하기도 다.


하지만 건반만 어루만질 뿐
이제 엄마는 연주하는 일을 망설인다.
눈 감고도 연주할 수 있었던 곡들을
악보를 보면서도 겨우 이어가는 모습

보이기 싫은 것일까


혼자가 되면 

엄마는 여전히 피아노 앞에 앉아있을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릴 적 보았던 엄마의 뒷모습이

꿈인양 되살아난다.

내가 그 모습을 사랑했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면

나는 '소녀의 기도'를 연주하는 뒷모습으로

엄마를 기억하게 되겠지.




엄마의 악보를

이젠 나의 어린 딸도 들여다본다.
긴긴 세월 얼룩진 음표에서

3대를 잇는 애틋한 소녀의 꿈들을 만난다.
채 꽃 피우지 못했지만

여전히 주름진 노모를 반짝이는 소녀로

되돌아가게 하는 꿈.
할머니보다 풍족한 환경에서 음악을 배우며

바이올린 독주회의 꿈을 꾸는 어린 딸.
연주를 멈춰버린 엄마에게
언젠가 손녀의 독주회 때 찬조 출연해야 하니
피아노 연습 열심히 하라 일러두었다.
농담 같은 한 마디에 환해지는 얼굴,

다시 소녀다.

엄마의 악보는

꿈꾸는 자의 뜨거움을 가르쳐준다.
또한 자식을 위해
당연하듯 모든 걸 내려놓아야 했던
이 땅의 어머니들의 헌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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