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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절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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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eader Mar 16. 2020

우린 모두 열여덟이었다.


가장 고단했던, 

뜨거웠던 날들로

걸어 들어갔다.


선배 특강, 이란 이름으로 

모교의 부름을 받아
모처럼 립스틱 곱게 바르고 옛 교정을 밟은 날.

20년 만이었다.
학교는 교문 위치마저 바뀌어있었다.

입구를 찾느라 담장길을 빙 둘러 의도치 않은 드라이브를 하면서

심장은 이미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프고 고단했던 시간들이
그리움의 파노라마가 돼 밀려왔다.


잊고 살던 친구의 이름이 떠올랐고

여학교의 흔한 전설 속 아담이 궁금해졌다.

별이 돼버린 후배의 미소도 아프게 려왔다.

호랑이 같던 한문 선생님도,

몰래 소설책을 선물해 주시던 국사 선생님도,

짝사랑했던 영어 선생님도,

다친 나를 업고 4층 계단까지 달렸

물리 선생님도 사라진 교정.

그럼에도 마음은 이미

열여덟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눈 크고 잘 달린다며
'달려라 하니'라 불러주셨던 선생님이
이젠 은퇴를 앞둔 노교사가 되어 맞아주셨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 겨우 삼켰건만
선생님은 1등 하던 나의 언니만 기억하더라는 비정한 현실.
아놔~~ 공부는 하고 볼 일이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함성으로 맞아준

후배님들 덕에
잊고 살던 함박웃음이 터졌다.


한껏 꿈꿀 특권 가진 소녀들.
1991년의 나와 동갑내기일 소녀들.

그 시절 나는 무엇에 뜨거웠었던가.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소녀 시절의 파랗던 꿈을..."


호기심 많은 소녀들 덕분에 약속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질문을 받고 돌아오는 길,

벌써 어둑해진 하늘 위 별을 보며

진짜 별이 돼버린

신해철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차장까지 배웅하는

기특한 후배들을 뒤로한 채 교문을 나설 때, 

불안했으나 반짝였던 열여덟의 우리가

신기루처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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