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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eader Apr 09. 2020

응급실의 밤


웬만해선 아파도 끙 소리 없이
혼자 감내해온 남편이
제 발로 응급실을 찾았다.
며칠째 이어진 원인 모를 복통 때문.

오전에 집 근처 내과에 함께 들렀다가
방송 시간에 쫓겨 먼저 회사로 들어왔는데
녹화를 마치고 나오니
국장님이 심란한 표정으로

남편 소식을 전해주신다. 
동네 내과에 있던 그가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갔다는.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국장님이 로비까지 따라 나와

운전 주의하라며 근심 가득 당부를 하신다.

왜 저러시지, 심각한 뭔가 있구나.

덜컥 겁이 나고 말았다.


달리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 방정맞게 스쳤다.
다행히 남편의 통증은 멈춰있었다.

편안해진 얼굴을 보는 순간
긴장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풀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렇다 할 진단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지만
걱정했던 췌장질환은 아님에 안도하자는 설명.

정황상 췌장암까지 우려했던 모양이다.


?

그것도 예후 나쁘기로 악명 높은 췌장암이라니.

진통제에 취해 잠든 남편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도로 나왔다.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응급실 풍경이
참 공허하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우리, 가 맞구나.


어제 퇴근길엔 첫 비행에서 낙오한

아기새를 발견하고

들고양이들로부터 지키느라 잠을 못 잤다.
그제는 원고를 마감해야 했고
그 하루 전날 밤엔 무엇이  붙잡았더라.

불과  전 일도 기억할 틈 없이

내달리는 이유를 더듬어본다.

응급실 복도에 앉아 바라보는 세상이

꿈인 듯 환상인 듯 현실감 없이 흔들렸다.
잃고 난 후에야 보석같이 빛나는 일상,

이런 거구나.



잠들지 못할 응급실에서의 밤.

한 의사의 고백에 마음이 닿는다.

노부부의 이별이 그에게 새긴

강렬한 한 컷처럼

나도 이 밤을 기억하겠지.

서로의 곁에 머물렀던 모든 날들이

언젠가 사무치는 그리움이 될 것이라고.


추신 ; 불행중 다행, 남편의 복통은

            잘못 받은 척추교정 원인이었다.  

            무엇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아름다운 것.

            5번 척추 6번 만들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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