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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2. 2021

영화에세이4- 죽음을 통과해야 만나는 생명

영화 < 인 어 베러 월드> -수사네 비르

요즘 아침에  뉴스 보는 것이 버겁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폭력, 살인 사건.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범죄 사건들 볼때면 분노가 올라온다.


<인어베러월드>에서 폭력은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무차별적으로 횡행하는 폭력과 덴마크의 쾌적한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그 모양은 다르지만 충분한 공감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폭력이 행해질 수 있다는 진실이다. 물리적인 폭력부터 내면에 웅크린 살의(殺意)까지, 크든 작든, 보이든 감추어졌든, 폭력은 우리 주위에 늘 포진해 있다.


아내 마리안느와 별거중인 안톤은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는 의사다. 그의 10살 난 아들 엘리아스가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던 차에 전학생인  크리스티안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최근 암으로 엄마를 잃은 크리스티안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차 있는 아이다. 착하고 순한 엘리아스에게 분노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한편 아프리카에 있는 안톤은 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반군지도자가 심각한 부상을 당하자 그를 치료하면서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덴마크와 아리카에서 동시적으로 등장하는 폭력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악’이 그 뿌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다. 특히 내기를 위해 임산부의 배를 가르는 반군 지도자의 폭력성은 인간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내면에 엄연히 존재하는 어둠을 말해준다.


엄마의 죽음으로 세상대한 깊은 분노감을 갖게 된 소년 크리스티안의 내면에는 깊은 오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병을 앓던 엄마를 아버지가 끝까지 지켜주리라 생각했지만,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아버지에 대한 불신을 키워준 것이다. 아버지의 잦은 외국출장으로 물리적, 정서적으로 홀로 방치된 크리스티안아버지에 대한 오해와 미움은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온전히 소통되지 못하는 관계는 오해와 불신이라는 내면의 단절을 불러 일으키, 그 단절은 서로에게 소외감을 자아낸다. 단절은 소외를, 소외는 단절을, 계속 반복되는 악순환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악순환 속에서 우리는 단절된 관계에 있는 상대를 두려움으로 덧칠해버리곤 한다.


출처-daum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 반군 지도자의 모습에서 놀랍게도 소년 크리스티안이 오버랩된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어둔 실존이란 점에서 둘은 연결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둠. 정도는 약하지만, 소년 크리스티안 역시 자신의 분노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 가지 않았나? 폭력적인 게임에 몰입하고, 나중에는 폭약까지 만들어 사고를 일으켰으니.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악한지, 어둠 속에 있으면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반군 지도자와 크리스티안에게서 본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분노  만을 투사할 뿐이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스러움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어쩌면 용서는 고통을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지도. 자살하고 싶어서 한밤중에 부두의 높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크리스티안이 안톤의 품 안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 것처럼,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치유를 향한 첫걸음을 비로소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지 않은 척, 상처로 나만의 높은 성을 견고하게 쌓아갈 때, 우리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들고 아픈 것인지도 잊어버리게 될 테니... ...


영화 마지막에 안톤은 폭력의 현장, 아프리카 난민촌으로 다시 간다. 첫 장면과 똑같이 아이들은 ‘how are you!’ ‘how are you!’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안톤이 탄 차를 따라 내달린다.  여전히 거친 황야의 풍경이지만,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면서 예기치 않은 생명을 만난다. 바위 틈 속에서 자라는 작은 풀꽃, 거미줄... ... 카메라는 사막 구석구석 은밀하게 숨어서 움트는 생명을 놓치지 않는다.


작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평화를 가리켜 “ 평화는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직면하고 극복해서 나온 결과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 생명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막으로 가야한다. 힘들어도 고통 한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내 안에 숨 쉬는 생명을 만나기 위해서는 사막으로 가야한다. 모두가 죽은 것처럼 보여지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생명은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과해야만 생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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