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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pr 19. 2022

그림책인문학 3- 삶의 또 다른 여정, 죽음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 <무릎딱지>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지난해 여름. 열대야로 잠 못 이루던 밤. 겨우 눈을 붙이는데, 어디선가 너무도 귀에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강아지 토토의 코 고는 소리가 아닌가! 순간, 심장이 쿵 멎을 뻔했다. 알고 보니 선풍기의 타이머 버튼이 돌아가는 소리였지만. 잠자리에 들면서 맞춰놓은 타이머가 끝나는 소리가 토토의 코 고는 소리와 비슷해서 그만 잠시 착각을 한 거였다. 한동안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십 년간 함께 지냈던 토토가 죽고 난 뒤 한동안 깊은 슬픔을 감정을 부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날마다 무수한 죽음을 살고 있다. 인연이 다해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 역시 죽음과 닮아있을 터. 부재하다는 것, 더는 함께 무언가를 나눌 수 없다는 것도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또 언젠가 맞이해야 할 나 자신의 죽음도, 늘 유예된 상태로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어느덧 장기전으로 돌입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죽음은 우리 옆에 더 가까이 다가선 것 같다. 웰빙을 넘어서 웰다잉의 의미를 중요하게 모색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주제로 한 다양한 그림책들을 살펴본다는 것은, 그래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치부되었던 죽음을 삶의 한가운데로 초대하여 죽음 속 삶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두렵지만 언젠가 맞이해야 할 친구      


그림책『내가 함께 있을게』(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 웅진주니어)에서 ‘죽음’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오리를 졸졸 쫓아다닌다. 해골의 형상에 격자무늬의 긴 코트를 입은 죽음의 캐릭터라니! 깜짝 놀란 오리가 자신을 지금 데리러 온 건지, 죽음에게 물어보자 죽음은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동안 죽 나는 네 곁에 있었어. 만일을 대비해서.” 생각보다 죽음이 친절하다고, 괜찮은 친구라고 오리는 생각한다. 

『내가 함께 있을게』는 오리가 낯설고 두려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철학이 번뜩이는 유머로 그려낸다. 오리와 죽음은 함께 나무 위에도 올라가고 다정하게 손도 맞잡는다. 죽음 뒤의 세상에 관해, 죽음과 대화를 나누고 아침에 깨어나서는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죽음의 옆구리를 툭 치는 오리. 텅 빈 여백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오리와 죽음의 모습, 또 그들의 대화는, 마치 소극장에서 실존주의 2인 연극을 보는 것만 같아 시종일관 흥미롭다. 



어느 날 서늘한 바람이 깃털 속으로 파고들자 문득 추위를 느낀 오리가 죽음에게 “추워. 나를 좀 따뜻하게 해줄래?”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슬프지만은 않다.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오리가 참 멋지게 느껴진다. 부드러운 눈이 하늘에서 나풀나풀 내리자 오리의 깃털을 매끄럽게 펴주는 죽음은, 오리를 안아 강물 위에 조심스레 띄우고는 떠내려가는 오리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마침내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조금 슬퍼지지만, 그것이 바로 다름 아닌 삶이라고 작가는 마지막에 이야기한다. 그제야 죽음이 입은 격자무늬의 옷이 왜 ‘우주의 완전함’이란 의미를 지닌 체스판과 닮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죽음이 삶의 또 다른 여정임을 그림책 『내가 함께 있을게』는 전한다.      


스스로 치유해가는 죽음의 상처      


사랑하는 가족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죽음은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올 뿐이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림책 『무릎딱지』(샤를로트 문드리크 글 /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강렬한 빨간색이 주조를 이룬다. 엄마의 죽음과 그로 인한 아이의 상처를 직설적으로 표현해낸 것 같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 『상실 수업』은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보통 다섯 단계의 상태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 그림책 『무릎딱지』의 아이도 처음엔 엄마의 죽음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엄마는 정말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엄마가 없는 집은 점점 엉망이 되고, 아빠는 아이가 빵을 지그재그로 꿀을 발라 반으로 접어먹는 것도 모른다. 아이는 아빠에게 그런 것도 알려주지 않고 떠난 엄마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렇다. 엄마가 죽자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냄새를 찾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아이. 아이는 엄마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게 집안의 모든 문을 꼭 닫고, 엄마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 귀를 막고, 입을 다문다.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나도 좋다. 아프면 늘 위로하고 토닥여주던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는 아프지만 손톱으로 자꾸 상처를 긁어내 피를 흘린다. 

어느 날 집에 온 할머니가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버리자 아이는 절망하고 만다. 엄마 냄새가 다 빠져나간 것 같아서다. 할머니는 가만히 아이의 손을 잡아 아이 가슴 위에 올려주며 말한다.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바로 여기에 있어. 엄마는 절대 여길 떠나지 않아.” 

엄마가 자신과 늘 같이 한다는 믿음이 마음에 들어온 것일까? 아이는 일상을 조금씩 회복해가기 시작한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상처의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난 것처럼, 그림책 『무릎딱지』는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의 상처에서 스스로 치유해갈 수 있는 회복력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따스한 울림으로 이야기한다.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일      


그림책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록산느 마리 갈리에즈 글 / 에릭 퓌바레 그림 / 씨드북)는 죽음이 슬픔보다는 그리움의 기억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곧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듯한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정원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늘 꽃들이 피어날 테니까. 좋은 이웃이 잘 돌봐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생전에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하며 소년은 할아버지가 키우던 꽃과 나무를 보며 할아버지를 그리워한다. 

토토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함께했던 마지막 산책이 생각났다.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걸까? 그날 산책하다가 토토를 품에 안고 이제는 나이 들어서 잘 듣지도 못하는 토토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토토야! 오늘 산책하며 만난 햇살과 바람, 잊지 말고 꼭 기억해!” 그것은 토토가 떠나기 전 내게 해주었으면 했던 말을, 내가 토토를 대신해서 해주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의 할아버지도 소년에게 이야기한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라고. 그런 할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눈을 감은 채 바람을 맞는 소년의 얼굴은 그리움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아 먹먹하기만 하다. 또 할아버지는 “네 눈에 바다가 가득한 건 싫단다”라며 자신이 죽은 뒤 소년이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슬퍼하기보단 할아버지의 웃음을 기억해달라고! 

할아버지가 죽기 전 남긴 말들은 마치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노래처럼 다가온다. 깊고 맑은 색의 그림과 어우러져 마음속 깊이 들어가 아름다운 공명이 된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죽음 속에서 삶을 만나게 해주는 일이란 걸 다시금 일깨워준다.          


<더 읽어볼 만한 책> 


『영원한 이별』(카이 뤼프트너 글 / 카트야 게르만 그림 / 봄나무) 

다섯 살짜리 아이 에곤은 아빠의 죽음을 영원한 이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주 작은 부분도 아빠라 여긴다. 그래서 아빠와 언제나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죽음이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할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에곤은 어쩌면 어른들보다도 죽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그림책이다. 죽음 역시 삶의 한 부분임을 이야기한다. 

『이게 정말 천국일까?』(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 주니어 김영사)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공책에는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 할아버지가 상상하며 쓴 글과 그림이 가득하다. 천국에 갈 때 챙길 준비물, 죽고 나면 무엇을 타고 천국에 갈까 등. 죽음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이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할아버지의 빈자리로 슬퍼하던 아이는 할아버지의 공책을 읽으며 웃음을 되찾는다. 죽음 너머 ‘천국’이란 상상의 공간은 ‘지금, 여기’라는 현재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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