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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r 메이르 Jun 03. 2023

한국과 유럽, 패션 디자인 교육은 무엇이 다른가

유럽 패션스쿨의 특별한 교육 시스템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 졸업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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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것과 유럽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에는 수 없이 많은 대학이 있고, 유럽에도 패션을 가르치는 예술학교들이 꽤 있어서 이들이 이렇다 저렇다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 뿐만 아니라 친구들, 가르친 학생들을 통해 지역별로 나름의 공 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장에서는 두 곳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참고로 한국의 경우는 대체로 일반 종합대학(university)을 의미하고, 유럽의 경우 패션 전공이 있는 예술 학교(art school 또는 fashion school)를 말한다. 편의상 이 두 지역을 ‘한국'과 ‘유럽'이라고 지칭하겠다.



표준형 인간 vs 유일한 인간


한국은 표준화된 패션 디자이너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한다. 쉽게 말해서 졸업생들은 학점 차이만 있을 뿐 정체성, 생각의 틀, 경험은 다르지 않은 부품형 인간이다. 한 해외취업 관련 세바시 강연에서 이를 굴비로 비유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으면 Simon라는 분이 발표한 <Stop Dreaming, and Be Smart in Overseas Jobseeking>(https://youtu.be/p7p-T9aNbjg? T=489)을 참고하길 바란다. 반면, 유럽의 예술 학교의 경우, 패션 디자이너 보다는 패션 디자인을 도구로 사용하는 예술가를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둔다.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차이가 무엇인가? 디자이너는 대체 가능하지만 예술가는 대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유일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예로 들자면, 지오다노는 유니클로, SPAO와 경쟁해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관점에서는 티셔츠의 품질과 가격이 중요하지 지오다노인지 유니클로인지는 옷을 구매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마르지엘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다. 마르지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 꼼데 가르송에서 세일을 한다고 브랜드를 갈아타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마르지엘라는 그냥 마르지엘라다.


대체 가능한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 대체가 가능하면 경쟁이 생긴다. 한국에 스펙 경쟁이 있는 이유다. 다들 정체성도 경험도 생각도 똑같기 때문에 기회를 잡으려면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 하나라도 더 따야 하는 소모적인 경쟁이 발생한다. 반면, 당신이 정체성이 뚜렷한 유일한 인간이라면 내가 속한 분야에서 나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내 지인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다. 그분은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컬렉션에도 그것이 잘 드러났다. 졸업을 하고 귀국하였는데, 어느 유명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새 디렉터가 지인의 컬렉션을 보고 자신이 꾸릴 팀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지인은 그 브랜드의 HR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한국에서 화상회의로 면접을 보고 결국 프랑스의 한 럭셔리 브랜드에서 모셔갔다. 한국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수업 시스템


한국 대학들의 커리큘럼은 수 많은 교수들의 수업들로 쪼개져있는 형태다. 교수들은 각자의 수업에 집중하고 수업들 간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유럽 또한 과목마다 담당 교수가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라면 전공 수업들이 마치 하나의 큰 공동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도 패션 전공하면 디자인, 마케팅, 패턴 등 서로 관련된 수업을 받는데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유럽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교수들이 마치 한 팀처럼 학생들을 가르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컬렉션을 기획하고 있다면 디자인 교수가 컨펌 해준 디자인을 패턴 교수에게 바로 가져가서 패턴을 어떻게 만들지 조언을 받고, 또 이 전반적인 디자인 과정을 포트폴리오로 시각화하기 위해 그래픽 교수와도 대화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디자인 교수와 패턴 교수가 대동해서 학생의 디자인을 실제 옷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지 학생과 함께 논의하기도 한다. 마치 학생을 수 많은 학생들 중 하나가 아닌 실제 패션 하우스의 주니어 디렉터라고 생각하고 이들의 상상력을 현실로 끄집어내기 위해 교수들이 마치 한 팀처럼 협업하여 학생들을 서포트하는 방식이다.


상상해 보라. 학교의 모든 교수들이 학생을 브랜드의 리더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환경에서 4년을 압축적으로 보낸 학생과 일반 종합대학에서 그저 착실히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한 학생. 두 사람은 같은 시간을 보냈더라도 패션에 대한 깊이와 경험의 총량은 압도적인 차이가 날 것이다.



환경


교육 환경도 중요하다. 한국은 원단, 공장 등 제조에 관련된 리소스가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성비에 초점을 맞춘 원단과 공장이 많고, 높은 퀄리티의 원단 또는 공장을 찾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업계 전체 인프라의 노후화가 심해져서 이러한 인프라 또한 몇 년 이상 가지 못할 것이라는 패션 업계의 목소리가 많다.


사실, 제조업 인프라는 한국에 비하면 유럽은 거의 황무지와 다름없다. 물론 기업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학생의 경우 마땅한 원단, 부자재 가게가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앤트워프의 경우에도 불과 몇년전 까지만 해도 유일하게 남은 (그나마 괜찮은) 원단 가게 하나가 있었는데 결국 사라졌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브뤼셀이나 파리로 직접 가서 원단을 공수해오곤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프랑스의 한 부자재 회사에 주문을 한 적이 있는데, 담당자가 여름 휴가를 가버렸고 몇 개월이 지나도 물건을 받을 수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졸업


한국이나 유럽이나 패션 전공자라면 과제에 치여 사는 것은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학생이 특정 수준 미달일 경우 학점이 낮게 나오더라도 졸업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반면 유럽 예술 학교는 졸업 자체가 어렵다. 예를 들어, 내가 앤트워프 왕립예술 학교에 처음 1학년으로 입학했을 때는 약 70명이 조금 안되었다. 매해 절반이 개인 사정 또는 탈락으로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3학년을 마칠 때는 약 15명 만 살아남았다. 유럽은 입학보다 졸업이 어려운 시스템이다.



졸업 이후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모든 것에 나쁜 것은 아니다. 한국은 표준화된 교육 덕분에 기업 실무 교육이 잘 이뤄지는 편이고 또 한국에 패션 브랜드들이 많기 때문에 눈을 조금 낮춘다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는 아니다. 반면, 유럽 예술학교의 경우 실무 교육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다만, 유럽은 인턴 경험을 대부분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무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는 점에서 단점이 그리 큰 문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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