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Central Saint Martins에서 처음 디자인을 공부할 때 튜터가 저의 스케치북을 보고 난잡(messy) 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기가 어렵다는 매서운 평가를 자주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스케치북에 숙제를 해갔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 당시 스케치북이라는 도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혹시 여러분도 디자인을 할 때 스케치북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나요? 이 글에서는 스케치북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10년 동안 디자인을 하고, 디자이너들과 교류하고, 연구하고,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들의 에센스를 5분 내로 얻어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 주위에는 스케치북을 안 쓰는 디자이너들이 계신다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은 항상 자신만의 스케치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쓰는 커다란 A3 스케치북은 아니지만요. 그들은 무슨 이유로 귀찮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는 것일까요? 스케치북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정답은 그들이 '스케치북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아서 쓸 수도 있고 컴퓨터가 없어서 스케치북을 쓰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대체로 다른 대안들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스케치북을 활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오늘은 그것에 대한 비밀을 짧고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선 스케치북을 바라보는 시각을 알려드릴게요.
스케치북 = 말하기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는 말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글쓰기와 말하기가 비슷하지만, 저는 말하기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하기에 비유하겠습니다.
말을 어떻게 하죠? 상대방에게 육성으로 문장들을 내뱉는 방식으로 말하죠. 문장들은 뭐죠? 문장을 모으면 문장들이 됩니다. 문장은 무엇이죠? 단어와 단어들을 쪼개면 단어가 되죠? 후, 잠시 숨을 고르죠. 그 이상은 가지 맙시다. 아무튼, 말하기의 요소들을 쪼개어 근본으로 들어가면 결국 단어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스케치북에 디자인을 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스케치북은 뭘로 이루어져 있죠? 종이들의 묶음이죠. 종이보다는 페이지(page)로 표현하겠습니다. 페이지들의 묶음을 쪼개면 1개의 페이지가 나오겠죠? 1개의 페이지는 무엇의 묶음이죠? 혹시 여러분은 답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해 본인만의 대답을 가지고 있다면 훌륭합니다. 혹시 대답하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1개의 페이지는 공간들의 묶음입니다. 공간들의 묶음이라고요?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빈 공백인데요?라고 하실 수도 있어요. 네, 그 빈 공간이 스케치북의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입니다. 왜냐하면 그 공간에 바로 이미지라는 재료가 들어갈 공간이니까요.
말하기와 스케치북을 모두 작은 단위로 쪼개는 과정에서 혹시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스케치북도 말하기도 일종의 층위(layers)로 나눌 수 있고 각 층(layer)는 자신의 아래층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자, 스케치북에 디자인을 하는 것은 말하기와 비슷하고, 그 말하기의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스케치북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대답해 주지 않습니다. 이제 그것에 대한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이미지는 신중하게 고려해서 적확한 이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이미지가 적확한지 판단하는 방법은 디자이너들마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없으시다면 자신만의 까다로운 기준을 이참에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일단 기본적으로 이미지의 품질, 레퍼런스가 분명한 이미지 등인지를 확인합니다. 핀터레스트에서 출처 없이 굴러다니는 저화질 이미지들로 프로젝트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는 마치 고급 식당의 셰프가 유통기한과 브랜드를 알 수 없는 통조림을 사서 요리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지는 모든 것의 가장 최소한의 단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까다롭게 선별해야 합니다. 마치 여러분이 오늘 입을 스타일링을 까다롭게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죠.
단어와 단어가 모여서 문장이 됩니다. 이미지는 이미지가 모여서 하나의 맥락(context)가 형성됩니다. 이미지들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보면 그 맥락이 더 잘 보일 거예요.
하나의 스케치북 페이지는 마치 문장들이 모여 구성되는 하나의 문단과 같습니다. 하나의 문단은 생각을 드러내죠. 이와 마찬가지로 스케치북 페이지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실험에 대한 기록을 한 페이지라면 어떤 재료로 했는지, 어떤 실험 방식을 썼는지 등을 보기 좋게 시각화해야 합니다. 만약, 디자인 디벨롭을 한 페이지라면 디자인을 위해 어떤 리서치를 참고했는지, 이 이미지에서 어떤 요소를 디자인에 활용했는지, 관찰 드로잉 이미지 등 디벨롭에 관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두면 좋습니다.
혹시 디벨롭하다가 망하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심지어 실패한 것들도 어떤 결과를 예상했고, 어떤 식으로 실험을 하다가 실패했는지에 대한 실패를 위한 페이지도 넣으면 좋습니다. 사실,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를 잘 정리한 페이지들이 더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실패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입니다. 스케치북은 문단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전체 스토리가 되는 것입니다. 즉, 스케치북은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스토리는 항상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소설이라면 교훈과 같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비전이 담겨있겠죠. 스케치북이라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론은 이렇지만 사실 실제로 스케치북에 디자인을 전개하다 보면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죠. 여러분만 그런 것이 아니구요 원래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각의 흐름이라는 것이 선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뒤죽박죽한 스케치북의 핵심 요소들을 보기 좋게 정리한 것이 포트폴리오입니다.
따라서 포트폴리오는 스케치북의 핵심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한 에센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케치북에 대한 시각을 점검하고, 스케치북의 요소들을 쪼개어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 단위까지 내려가서 스케치북이라는 것을 파악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을 할 때 각 계층별로 어떻게 요소를 표현해야 하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이 글이 스케치북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또 디자인이라는 것이 말하기 처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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