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 날 - 잘츠부르크
빈 서역 - 잘츠부르크 - 호엔잘츠부르크성 - 사운드오브뮤직투어 (미라벨정원, 폰 트랩 대령 집, 헬브룬 공원, 몬트제 성당) - 미라벨정원 - 저녁 - 묀히스베르크전망대
드디어 이 여행을 오스트리아로 온 목적인 잘츠부르크에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빈 서역 바로 앞 호텔에 묵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잘츠부르크로 이동이 가능했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숙소 역시 역 바로 앞에 있는 호텔로 잡았기에 캐리어를 들고 먼 길 이동할 일은 없다.
빈에서 잘츠부르크는 기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정도의 거리로 볼 수 있겠다. 기차의 바깥 풍경은 그저 평온한 풍경이었다. 내심 같은 알프스를 품고 있기에 스위스 기차에서 보았던 풍경을 기대했는데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곧장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선다. 날이 약간 흐릴 수 있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선선하고 좋은 날씨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잘츠부르크는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실존 인물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그 실존 인물이 살던 곳이 잘츠부르크이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 시에 외부 촬영은 잘츠부르크에서 많이 이루어진 듯 했다(내부는 헐리우드 내 세트장이었다고 한다).
아직은 자동차를 렌트하기 전이기 때문에 잘츠부르크 내 곳곳의 촬영지를 우리끼리 둘러보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사실 정보도 그렇게까진 없고), 잘츠부르크 투어를 예약해두고 오전 시간에는 호엔잘크부르크성에 다녀왔다. 우리 숙소에서 버스를 한번 타고 이동이 가능했고, 조금 무리하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입구가 있었다. 입구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면 정상에 쉽게 다다를 수 있어 부모님과 함께 둘러보기 딱 좋다. 그리고 이곳에 올라오면 잘츠부르크의 모습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그곳에는 레스토랑도 있었는데 엄마는 이런 곳에서 밥먹으면 밥이 술술 넘어가겠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시간 관계상 이곳에서 식사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는 이 경치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돗자리 깔아놓고 고스톱 한판 치면 천국이 따로 없겠다고도…
잘츠부르크에 대한 나의 환상도 이야기 하자면, 내가 어릴 적 재미있게 했던 게임 에리의 아틀리에가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한다. 에리의 아틀리에는 에리라는 주인공이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공방을 운영하며 연금술사가 되어가는 스토리다. 나는 호엔잘츠부르크성에 올라 어디쯤 에리가 운영하는 공방이 있을법한 곳인가 살펴 보며 게임의 정취에 빠져보았다. 내 눈에는 어디에서 에리가 공방을 하고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민트빛 지붕 마을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잘츠부르크가 너무 좋아서 한참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우리는 예약해둔 사운드오브뮤직 투어에 참여 해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덕분에 점심도 건너뛰고 미라벨 정원으로 가서 곧장 투어 셔틀에 올라탔다. 셔틀은 오후 2시 출발이라기에 최대한 외부에 있다가 버스를 탔더니 둘이 같이 탈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슬프지만 각자 외국분 옆에 앉아 투어 시작!
투어 버스는 아무래도 사운드오브뮤직 영화의 오랜 팬들이 타고 있을 터, 어딘가로 이동하는 내내 사운드오브뮤직의 OST를 감상할 수 있고 투어 인원이 떼창하는 진풍경도 관람할 수 있다. 우리 엄마는 영어를 못하시지만 사운드오브뮤직의 OST는 외워서 부르신다. 젊으실 적에 다 외워두셨다고 한다. 엄마는 샤이한 성격이지만 이곳은 외국이고 모두가 즐겁게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분위기이니 부담없이 떼창에 참여하셨고 즐겁게 소리내어 노래하셨다. 이 여행에서 마음이 흐뭇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투어버스는 근교에 있는 폰 트랩 대령의 집으로 촬영된 곳, 아이들이 물놀이 하다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촬영된 호수, 그리고 첫째 딸이 사랑에 빠져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촬영된 헬브룬 공원에 데려다 주었다. 그 중 헬브룬 공원은 들어가는 초입 길이 내가 상상하던 외국 교외의 가로수길 느낌이어서 참 좋았다. 내부 공원도 잘 꾸며져 있어 투어만 아니면 이 공원에 좀 더 머무르며 즐기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운드오브뮤직 투어를 온 것이니,, 헬브룬 공원 입구 초입에 파빌리온만 구경하고 사진 찍고 철수.
이제 투어 버스는 잘츠캄머구트 근교에 있는 몬트제로 이동하는데 (사운드오브뮤직 주인공들이 결혼식을 하던 성당이 있다고 한다) 이동하는 길에 바깥에 보이는 풍경이 오늘 아침 내가 기차를 타고 오면서 기대했던 그런 풍경이었다. 평화로운 초원이 펼쳐지고 저 멀리 푸르고 투명한 호수가 보이는 풍경.
뷰 포인트로 보이는 곳에서 버스를 한번 세워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엄마와 그 풍경에 감탄을 했다(잘츠캄머구트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인것 같다).
몬트제는 잘츠부르크보다도 훨씬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성당을 구경하고, 1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져 근처 카페에서 엄마와 못먹은 점심을 빵으로 떼웠다. 오늘 저녁은 한식당에서 맛있게 먹어보자 다짐하면서.
저녁은 잘츠부르크에서 꽤 유명해 보이는 한식당 무궁화에서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둘째 날부터 엄마께 한식을 먹여 드리는 나의 센스를 칭찬하며 찾아간 식당은 굳게 닫혀있었다. 문앞에는 휴무라고 적혀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왜 하필 오늘이 휴무야, 아쉽지만 아직 잘츠부르크에 머물 날이 남았으니 또 다시 오면 되지 하며 오늘도 할 수 없이 잘츠부르크 현지 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호엔잘츠부르크성 옆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맛보다는 풍경이 멋진 곳이었다. 호엔잘츠부르크성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유럽은 그나마 향신료를 강하게 쓰는 음식이 적고, 고기 자체의 맛을 살린 메뉴가 하나쯤은 있어서 엄마도 그럭저럭 식사를 잘 하실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제는 숙소로 들어가고 싶어하시는 엄마를 설득해 잘츠부르크의 야경을 보러 묀히스베르크 전망대까지 갔다. 이곳은 미술관과 함께 있는 곳인데 우리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미술관은 문을 닫고, 전망대를 통해 야경만 감상할 수 있었다. 이곳은 이번 유럽 여행에서 내가 한국사람을 가장 많이 만난 장소다. 정말 한국 사람들만 바글바글했다. 그리고 엄마는 이곳에서 처음 본 한국 모녀와 (한국 사람을 만나 너무 반가운 나머지 신나게) 대화를 나누다가 내 자랑을 끊어지게 하셨는데 나는 그게 또 너무 듣기가 싫었다. 여기서 오늘자 싸움이 시작되고 나는 엄마에게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이곳에선 야경의 감상도 무엇도 생각나지 않고, 그곳을 내려오면서 엄마에게 쏟아부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나는 엄마에게 재발방지 약속을 몇번이고 받아내고 나서야 잔소리를 멈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딸이 준비해서 온 유럽여행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딸 자랑 좀 한게 뭐가 대수라고 그랬을까 싶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엄마와 설전을 하며 숙소에 도착해서보니 숙소 천장에서 뭐가 떨어진다. 자세히 보니 에어컨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소리가 꽤나 거슬렸다. 그렇게 저렴한 호텔도 아니었고 4성급 호텔인데 이게 말이 되나 싶어 1층 프론트로 내려갔다. 천장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진다고 짧은 영어로 겨우 설명하고 나니 프론트에서는 심드렁하게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사람불러 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지금 당장 방을 바꿔줘야 할 것 같은데. 방을 바꿔줬으면 좋겠다고도 짧은 영어로 말해 보았지만 안된다고 한다. 너무 화가났다. 한국이었으면 백만가지를 들어 따질 수 있는데 영어가 짧아서 따지는 말을 다다다다 할 수 없는 것이 분통이 터졌다. 너무 열은 받는데 언어가 안되니 후퇴하고 방으로 올라왔는데 방에서는 이미 엄마가 물 떨어지는 곳에 수건을 받쳐서 그냥 자도 별 무리가 없게 어느 정도 조치를 해두고 계셨다. 역시 내가 아무리 성장했어도 엄마가 아무리 나이가 드셨어도 내가 감히 엄마를 넘어설 순 없다. 엄마가 최고다.
그렇게 행복과 분노가 교차하는 여행 2일차 밤도 저물어가고, 항의가 무색하리만치 나는 이 방에서 꿀수면을 취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