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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Dec 03. 2023

새로운 인사이트의 하루

여행 첫째 날

카페 첸트럴 - 성슈테판성당 - 그리헨바이슬 - 카페 자허 - 오페라 하우스 - 립스오브비엔나 - 성페터성당 - 시청사필름페스티벌


16시간을 꼬박 비행해서 도착한 엄마의 첫 유럽, 빈의 첫인상은 다행히 아주 좋았다.


거리도 깨끗했고 물건을 강매하려고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거리의 잡상인들도 없었다. 엄마까지 단도리 해야 하는 여행에서 여기 저기 상인들이 호객행위까지 했다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선 이 도시 합격!


우리는 빈에 밤늦게 도착해서 역 근처 호텔에서 하루 묵은 후, 이른 아침부터 일정을 시작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이니 아침 일찍부터 강제 기상이다.


빈은 유명한 카페가 많은 도시다. 우리가 즐겨 먹는 비엔나 커피의 비엔나도 바로 이 도시의 이름을 딴 커피이니 말 다했다. 다른 유럽 도시가 그러하듯이 이곳도 뻑하면 50년전부터 영업하던 카페, 좀 더 나가면 100년 전부터 영업하던 식당인데 그 중 오늘 아침은 150년 역사에 빛나는 카페 첸트럴(센트럴)에서 우아하게 시작해보기로 한다.


카페 첸트럴은 빈 구시가지 내에 있어서 우리 숙소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정도 이동해야 했다. 짐은 최소화해서 엄마는 작은 손가방 하나, 나는 카메라 가방 하나 메고 나섰다. 빈의 지하철역이나 지하철은 서유럽들의 그것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어 이동수단으로 손색이 없다. 편안하게 구시가지로 이동 완료. 두어번 길을 헤메기는 했지만 그러는 중에 만나는 빈의 풍경들도 꽤나 멋져서 즐거운 마음으로 무려 오전 9시 30분에 카페에 도착했다(혼자 여행할 땐 기상하지도 않았을 시간이다).


엄마의 감흥을 더하기 위해 이 공간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 카페 첸트럴은 우리가 아는 많은 예술가들이 애용하던 곳으로 지식인들의 아지트였다고 한다. 150년 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유명한 사람들과 다른 시간 같은 공간을 향유한다는 것은 이상하고도 멋진 일인 것 같다.


인종차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특히 이 카페에서 겪었다는 글도 보았기에 긴장하며 들어갔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한건지 좋은 종업원을 만난 것인지 다행히 친절한 안내를 받았고, 엄마와의 첫 유럽여행의 첫 단추는 무난히 끼워졌다.


달디단 디저트 빵과 커피. 엄마도 좋아해주셨다. 특히 커피가 참 맛있단다. 자신이 이렇게 유럽에 와있다는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유명한 성당 구경도 하고, 성당 근처에 있는 말들도 신기해하며 구경하고, 성당 꼭대기에 올라 빈의 풍경도 조망해보았다. 피렌체는 중세시대로 시간여행 온 느낌이었는데 빈은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느낌의 풍경이었다고나 할까? 고전미를 잃지 않았는데 과거 같지도 않았다.


성 슈테판 성당 내부


점심은 또 오래된 식당을 예약해서 먹었는데, 그리헨바이슬이다. 이곳은 무려 5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와우. 엄마와 드디어 첫 오스트리아 음식 트라이다. 나도 처음 먹어보니 뭘 시킬지 몰라 고민하다가 우리나라 돈가스와 흡사한 슈니첼과 타펠슈피츠를 주문했다. 슈니첼은 소스없는 돈가스이기 때문에 엄마도 나도 큰 거부감 없이 어쩜 이렇게 비슷한 메뉴가 있을 수 있는지 감탄하며 먹었다. 타펠슈피츠는 내 입에는 소 누린내가 났고 엄마도 그랬을 것 같지만 내색하지 않고 잘 드셔주셨다.


어렸을때는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침대에 누워 이것 저것 이야기하다가 밤을 새버리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서부터는 달라졌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세계는 내가 알던것과 달랐다. 엄마가 해주던 이야기들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순진한 것들이었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이 고될수록,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고 다짐할수록 엄마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게 불편해졌다. 여전히 나와 뉴스에서 본 정치 이야기부터 내가 하는 업무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하게 나누고 싶어 하는 엄마. 이 식당에서도 그랬는데  밥 먹는 내내 온갖 정치, 사회적인 주제로 말을 건네는 엄마에게 건성 건성 대답하다가 결국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말았다. 엄마가 내적 상처를 입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내 말을 수긍해주신 엄마 덕분에 큰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식사는 마칠 수 있었다.


이곳 식당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남긴 사인들도 있는데, 그 유명한 사람이 무려 모차르트다. 엄마와의 분위기 전환도 할겸 서버분께 유명인 사인이 남겨진 방 구경을 부탁드려서 야무지게 구경도 하고 왔다. 한국 사람 중에도 사인을 남긴 분이 있었는데 마침 또 정치인이었던건 안비밀.


그리헨 바이슬 내부 사인의 방


빈은 걷기에도 참 좋은 도시였다. 구시가지에 관광지가 모여 있어서 오늘의 행선지는 도보로도 대부분 이동이 가능했고, 7월이지만 우리나라 보다는 시원해서 엄마와 손잡고 걸으며 거리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 모녀는 아기자기한 물건이나 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크리스탈로 만든 악세서리를 판매하는 유명 매장이 있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홀린듯이 매장으로 들어가 1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오페라 하우스 투어를 놓쳤다.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던 유명한 카페 자허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루에 빈의 3대 카페 중 2군데를 섭렵한다. 엄마와 여행하면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사진이다.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예쁜 사진도 많던데 이제는 사진의 평행을 잘 맞추지 못하셔서 삐딱하게 찍힌 사진이 태반이다. 유럽까지 왔는데 인생 사진 한컷쯤 남기고픈 딸래미는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사진 촬영을 요쳥해보지만 결과물이 영 마뜩찮다. 그래도 이 곳, 카페 자허에서 오늘의 사진 한장을 건질 수 있었으니 오페라 하우스 투어보다 값지다고는 못하겠지만 비슷한 값은 되었다고 하겠다. 카페 내부의 분위기가 이국적이라 마치 잡지의 한 컷 같은 인물 사진 한장을 남겼다.


쇼핑 때문에 외관만 구경해야 했던 오페라 극장


저녁은 한국인들 사이에 유명한 식당으로 갔다. 비교적 동양인, 그 중 한국인이 많은 분위기였음에도 엄마는 내가 잠깐 화장실만 가도 불안해 하셨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직원이 엄마에게 와서 다 먹었냐고 물어보는 걸 목격했는데, “Finished?” 라고 말하는 직원에게 엄마는 멘붕하셔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손사레만 치셨다. 유럽 여행하던 중에 간혹 외국인이 말을 걸어와 엄마가 멘붕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무력감 같은걸 경험하셨는지 엄마는 유럽을 다녀와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셨다. 이제는 간단한 회화 정도는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신 엄마! 이 여행이 엄마에게 자극이 되어 새로운 것을 배우게 했다는 것이 나는 뿌듯했다. 사람은 죽을때까지 배우고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도 이 여행은 의미 있는 여행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빈의 거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아직 해가 채 지지 않은 빈. 우리는 성 페터 성당과 시청사 필름 페스티벌까지 걸어다니며 구경했다. 걸어서 가자는건 엄마의 제안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의 체력은 짱짱하다. 유럽의 거리들, 그리고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영화 상영과 노상 음식점들까지. 너무 낭만적이었는데 엄마는 알콜을 1도 드시지 않는 분이라 이 분위기에서 술한잔 하지 못하는게 몹시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를 엄마와 만끽해보는것도 흔치 않은 경험일테지. 엄마 덕분에 여행이 몹시 건강하고 건전하다. 드디어 해가 지고, 모녀 여행의 첫째날도 무사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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