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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Dec 09. 2023

뜻밖의 동행자들

여행 셋째날 - 독일 퓌센


잘츠부르크 근교에는 아름다운 관광지가 매우 많다. 알프스의 풍경과 경치가 아름답다는 인스부르크, 내일이면 방문할 잘츠캄머구트 지역, 독일의 베르히데스 가덴 지역 쾨니제 호수, 아름다운 성이 있는 독일 퓌센까지.


일정 짤때 가장 보태보태병이 극심했던 곳도 이쯤이 아닌가 싶다. 고심 끝에 고른 두 곳은 바로 독일 퓌센과 잘츠캄머구트 지역이었고 오늘 가는 곳은 독일 퓌센 지역이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보기 위함이다. 사실 퓌센은 잘츠부르크에서 곧바로 갈수가 없고 뮌헨을 들렀다가 기차를 갈아타고 또 한참을 가서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터라 동선상 적절한 곳은 아니었는데 그저 노이슈반슈타인성 사진 하나에 반해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갈 길이 멀기에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번거로운 동선으로 멀리까지 가야하고 무엇보다 경치를 보러 가는 곳인데 비까지 오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마리엔 다리는 공사중이기까지 하다(노이슈반슈타인성을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 그렇지만 내부 입장표를 이미 예매해두었고 바이에른 티켓도 끊어두어서 포기하기에도 비용이 발생하는터. 고민이 되었다. 엄마에게 의견을 여쭈어보니 엄마는 막상 도착하면 비가 그칠수도 있으니 그냥 일정 짜놓은 대로 움직이자고 하셨다. 이럴 땐 엄마 말 듣는게 상책.


예정대로 퓌센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우리 칸에는 선량해보이는 중국인 부부가 유모차에 탄 귀여운 아이와 함께 있었다.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엄마와 나는 아이와 자주 눈도 맞추고 장난도 치고 있었는데 기차가 몇번 서는 것 같더니 갑자기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어가 몹시 서툰 나는 지지직 거리며 빠르게 울려퍼지는 안내 방송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당황한 눈빛의 나를 보고는 중국인 남자분이 지금 기차가 고장나서 내려서 갈아타야 한다고 안내해주었다. 영어를 엄청 잘하셨다. 그 이후에도 그분 덕분에 무사히 기차 갈아타고 알맞게 내리고 또 버스를 타고 노이슈반슈타인성까지 갈 수 있었다(행선지가 우리와 같았다). 나는 이 때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 첫째는 내가 중국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것은 그야말로 편견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인에게 나쁜 일을 당해본적도 없으면서 그저 미디어로 접하는 부정적 정보만을 토대로 나는 중국사람들은 다들 교양이 없고 경박한 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만난 중국인 부부는 누구보다 품위있고 선량하고 교양이 넘쳤다. 그분들과 기차 같은 칸에 오른 건 오늘의 첫번째 행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후 1시쯤에야 성에 무사히 도착했다. 다행히 엄마의 예언대로 비는 그치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은 호엔반가우성과 노이슈반슈타인성 두개가 있는데 나는 또 관광지 오면 구석구석 다 가봐야 하는 스타일이라 두 성 모두 실내 입장을 예약해뒀었다. 성 내부에서 바라보는 퓌센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고,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것이 위정자가 굽어보기에 딱 좋은 곳에 지어진 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유럽 중세시대에 영주들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나 영화 소설에서 묘사된 딱 그런 성의 모습이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두 성의 중간 쯤 에메랄드 빛의 알프 호수가 있다. 그곳에서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었는데 웬 나비 한마리가 내 옷에 내려앉았다. 엄마와 나비가 사람에게 와서 앉은 게 신기하다며 보고 있는데 내 가방, 내 옷을 옮겨 다니며 계속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비와 교감이라도 나누는양 기분이 좋은 순간이었다. 오늘의 두번째 행운이다.

내 몸에 앉은 나비님

마리엔 다리는 멀리서 보면 마치 디즈니의 성 같다는 노이슈반슈타인성 전체의 모습을 조망하기 위한 곳이다. 이곳은 공사중이지만 그렇다고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내부만 둘러보고 갈 수는 없는 일! 방법을 찾아보는데 원래 마리엔 다리로 가는 길로 어떤 외국인 2명이 걸어 나오는걸 목격했다. 샛길이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가지 않겠다고 하셔서 나 혼자 조심히 살펴보고 오기로 했다. 마리엔 다리와 유사한 뷰를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고, 그곳에 다다를수 있는 산길이었다. 그곳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5명의 무리를 만났다. 패기 넘쳐 보이는 아직은 앳된 20대 남셋 여둘 청년이었다(당시 내 나이 또한 고작 31세 였음은 안비밀이다).


외국에서 한국사람 만나니까 얼마나 반가운지! 그것도 이렇게 비공식적인 길을 가고 있는데 만나니 더 반가웠다. 그들도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볼 수 있는 뷰포인트를 찾아 가고 있는 중이란다. 나를 의지하는 엄마를 모시고 여행하다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동행을 만난 셈이다. 젊은이들이니 길도 잘찾아서 나는 따라만 가면 되었다. 아 오랜만에 너무 편하고 좋다. 이럴 때 보면 연장자라는 위치는 나쁘기만 한건 아닌가보다. 가는 길에 1 엉덩방아도 찧었던 나인데 그들이 없었으면 거기서 포기하고 돌아갔을것 같다.


무사히 뷰포인트로 찾고, 그곳에서 즐겁게 사진도 찍고 함께 산을 내려왔다. 그들도 바이에른 티켓 때문에 어제 구한 동행들이라고 한다. 자기들은 이제 뮌헨으로 돌아가서 아우구스티노로 저녁을 먹으러 갈건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했다. 엄마를 모시고 왔다고 하니 더 좋단다. 다들 긴 유럽 여행에서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고, 남의 엄마지만 엄마를 보니 좋다고 한다.


이게 그리도 보고 싶었던 노이슈반슈타인성


사진 찍고 노느라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늦어져서 뮌헨 직행 기차는 놓쳐 버렸다. 이제는 직행이 없어서 한번 갈아타고 가야한다. 그렇지만 나는 걱정이 없다. 젊은이들 동행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도 나에게 맡겨두고 이런 기분이셨을까? 그들이 기차 시간도 찾아주고 길도 안내해줘서 이 순간 만큼은 긴장도 생각도 내려놓고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기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원래는 2시간이면 되는 구간을 3시간만에 도착했지만 그 3시간 동안 낯선 길에서 만난 낯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엄마 역시 내가 아닌, 친척도 아닌, 낯선 젊은이들과 오랜 시간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눠 보는게 거의 처음이라며 즐거워하셨다.


뮌헨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일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우린 저녁을 먹어야 한다. 뮌헨 역에서 직진하면 곧 나올 것 같았던 아우구스티노는 한-참을 가도 나오지 않다가 우리가 길을 잘못 찾은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할 즈음 나타났다. 결국 저녁을 먹기 시작한 시간은 무려 10시. 그래도 엄마와의 여행에서는 오지 못할 것 같았던 분위기의 펍에서 생맥주와 학센을 먹고 있자니 너무 행복했다. 그곳의 소란스러운 분위기까지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이들을 만난 것이 오늘의 세번째 행운.


아우구스티너의 맥주

더 놀고 싶었지만 내일 일정도 생각해야 하고 우리는 잘츠부르크로 돌아가기까지 해야 하니 11시에는 길을 나섰다. 12시 마지막 기차를 타고 잘츠부르크로 돌아오는 길, 엄마와 조금은 더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이제는 무슨 이야기들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나진 않지만 그간 회피해오던 마음들, 엄마와 나 사이에 생긴 관점의 차이, 생각의 간극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솔직하게 말했다. 서로의 의견에 동의를 한 건 아니었다. 누군가 옆에서 들었다면 싸우는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터놓고 말하지 못했던 다른 생각들을 이야기 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던 모녀의 관계에 그래도 긍정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린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길 위에서 만난 행운들, 그리고 엄마와의 시간들. 누군가에게 나도 언젠가 길위에서 만난 행운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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