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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Dec 10. 2023

김여사 운전을 부탁해요

엄마가 운전하는 차로 잘츠캄머구트 여행하기 (여행 넷째 날)

잘츠부르크 - 장크트길겐 - 장크트볼프 - 샤프베르크 - 할슈타트 - 오베르트라운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보다 늦게 잠이 들었다. 내일 가기로 한 곳들 교통편이나 정보 같은 것들도 한번 더 점검해야 하고, 얼마 썼는지 내일 얼마 정도 쓸 건지도 체크해야 하고, 오늘 여행의 스토리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면 엄마는 나보다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신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 것은 정말 사실인지 엄마는 아침 7시가 채 되기 전에 매번 눈을 뜨시고는 부스럭부스럭 짐정리를 하셨다. 잠귀가 밝은 나는 엄마가 움직이시는 소리를 들으면 언뜻 잠은 깨고 그러나 일어나지는 못하는 상태로 이불속에서 뒤척거리다가 7시쯤 몸을 일으키는 게 이번 여행 아침의 패턴이었다 보니 이제 고작 4일째인데 30대 딸래미의 체력이 먼저 방전되었다.


게다가 어제는 무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해서 새벽 3시쯤이 되어서야 겨우 자리에 눕지 않았던가. 정말이지 오늘 아침은 너무 피곤했는데 일어나 보니 팔 한쪽도 잘 올라가질 않았다. 어제 마리엔 다리 샛길로 다니다가 넘어졌을 때 다친 것 같다(근육이 놀란 듯). 여러모로 컨디션도 좋지 않은데 창밖엔 또 비가 온다. 나는야 이 구역 유명한 날씨요괴. 여행에서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편인데 이번 여행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훨씬 이후의 일이지만 신혼여행으로 갔던 몰디브에서는 4박 5일 중 4일 동안 비가 왔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한식으로 든든히 먹고 힘내서 출발해 보려고 잘츠부르크에 왔던 날 문 닫아서 못 갔던 무궁화 한식당으로 향했다. 비 오는데 엄마와 우산 하나 나눠 쓰고 어깨 적셔가며 열심히 걸어 도착했는데 뚜든 또 문을 닫았다. 문 바깥에 쓰여 있는 식당 운영 시간은 분명 오전 9시부터인데, 왜 문이 닫혀있지? 오늘은 주말도 아니고 인터넷에 쓰여있는 정기 휴무일도 아니었다. 문을 똑똑(느끼기에 따라 쾅쾅) 두드렸더니 사람이 나왔다. 지금 영업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12시부터 영업이라고 한다. 그럼 왜 여기 9시부터 영업이라고 써두셨냐고 하니 그건 옆 학교 방학 전에 카페테리아를 겸할 때 써두신 것이란다. 지금은 학교가 방학이라 12시부터 영업이라고. 흑흑 사장님 오늘 월척을 낚으셨네요.


한식 먹으려고 12시까지 잘츠부르크에 있을 수는 없어 다시 호텔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는데, 찾지 않을 때는 곳곳에 보이던 식당이 어쩜 이렇게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지. 겨우 찾은 카페에서 와플과 커피 한잔, 기대했던 것과 아주 다른 식사를 마쳤다. 그래도 와플이 너무 맛있어서 소소하게 위로가 되었다.


오늘은 이 낯선 나라에서 차를 렌트해서 이동하는 날이다. 긴장되고도 설레는 일정이었다. 잘츠부르크 사무실에서 렌트하지만 반납은 빈에서 하는 일정이다. 우리 엄마는 멋지게도 스틱 운전이 가능한 여자다. 유럽에는 자동 만큼 스틱 차량도 많은데 우리가 예약할 때는 자동 기어 차량은 모두 솔드 아웃이었다. 만약에 엄마가 스틱 운전이 불가능했다면 렌트를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가 렌트한 차는 스틱 기어 차량이다.  


엄마가 가장 염려하셨던 부분은 이곳 교통법규를 잘 모른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항상 몰던 차량이 아니라는 점, 즉 차의 조작버튼을 정확히는 모른다는 거였다. 그래도 렌트한 차량이 현대차였고 잘츠부르크 시내는 복잡한 도로가 거의 없었던 데다 차를 타고 거의 곧바로 잘츠부르크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거나 시골길을 달려 사실상 복잡한 교통법규를 알아야 할 상황은 없었다.


낯선 곳에서 드라이브를 한다는 건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멋진 일이었다. 비가 오지만 신나는 기분!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이 된듯한 기분도 들었다. 엄마도 운전을 해보더니 외국에서의 운전도 별로 어려운 것 같지 않다고 하며 신나 하셨다. 운전하면서 자주 “어때, 늙은 엄마라도 쓸모가 있지?”라고도 하셨다. 엄마는 운전이 아니라도 늘 쓸모(?)있는 존재지만 스스로가 이 여행에서도 기여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 것이 기뻤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할슈타트 바로 옆 마을인 오베르트라운이다. 가는 길에 장크트길겐, 장크트볼프, 샤프베르크, 할슈타트를 들를 생각이다.


장크트길겐에 도착할 즈음에는 비가 잦아들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주차장을 찾고 있었다. 주차장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우선 주차하러 들어갔는데 자세히 보니 마트 같은 곳이었다. 아니네 하며 나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후진기어 넣는 방법을 모르겠단다. 평소 엄마가 타고 다니는 차량이나 일반적으로 후진 기어 넣는 방향으로 해보는데 후진 기어가 먹어지지 않고 차는 계속 앞으로만 움직여 바로 앞 벽을 박을 기세로 붙었다.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보는데 계속 벽과 가까워지기만 했다. 엄마의 멘탈은 붕괴직전.


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포털 검색에 들어갔다. 우리가 렌트한 차량이 현대차라서 다행히 정보가 있었다. 그 차는 운전자 좌석 옆쪽으로 확 당겨서 앞으로 밀어야 한다기에 그렇게 해보았더니 띵 소리가 나면서 후진이 된다. 렌트카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종료할 뻔 했다. 얼른 빠져나와 무사히 장크트 길겐 마을의 넓은 주차장에 주차도 완료했다.


이때의 내 상태는 마치 물먹은 미역 같았는데 바깥 풍경도 너무 아름답고 차로 이동하는 것도 너무 신났지만 너무 너무 너무 피곤했다. 그게 엄마 눈에도 보였는지 엄마는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겠단다. “아이스크림 먹고 기운내라.” 하는데  어쩐지 다시 아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 엄마에겐 내가 아무리 성장해도 아이스크림이면 신나 하는 아이처럼 보이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크트길겐 마을은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물이 굉장히 맑았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 작은 물고기들까지 다 볼 수 있었다. 그곳을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들을 보니 평화로움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마을에는 모차르트의 외가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하니 모차르트의 수많은 곡 중 이곳에서 영감을 받은 곡도 하나쯤은 있을법하다.


장크트 길겐 강의 풍경들


이곳에서 조금만 더 차를 타고 이동하면 장크트볼프 지역으로 갈 수 있고, 그곳에서 산악열차를 타면 샤프베르크에 갈 수 있다. 이쯤 와서는 다행히 비가 아주 그쳤다. 나는 날씨 요괴지만 엄마는 날씨 요정이라 날씨가 오락가락 하나보다.


산악열차는 탈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우선 산악열차 표부터 구매했다. 표가 남아있는 가장 가까운 시간은 3시 30분이어서 40분 정도 대기해야 했다. 그동안 장크트볼프 지역을 둘러보며 구경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맑은 물에서 수영하고, 낚시도 하고, 보트도 탔다. 구경하는 것만으로 나도 힐링하는 것 같았던 곳이다. 엄마는 이 풍경들을 바라보다 신혼여행 오면 너무 좋을 곳이라며 나에게 “신혼여행은 여기로 와라~.” 하셨다.


장크트볼프강의 평화로운 풍경들


산악열차는 30분 정도를 이동해서 우리를 산 정상 샤프베르크로 데려다주었다. 여기서는 전망이 끝내준다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걱정이었다. 구름이 끼면 산 정상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후기도 보았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길에도 아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초원에서 풀 뜯는 소들도 보이고 아래쪽으로 커다랗고 맑은 호수도 보여 절경이었다.


4시쯤 정상에 도착했는데 5시가 마지막 하산 기차다. 여기서 고작 1시간밖에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아직 점심도 먹기 전이어서 이곳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밥을 먹고 구경까지 충분히 하기에는(+사진을 찍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밥을 다 먹었더니 기차 시간까지 고작 10분 남아서 엄청 급하게 구경해야 했다. 엄마는 나보다 먼저 점심을 다 드시고는 본인은 좀 둘러보겠다며 먼저 가셨다. 오잉 유럽 여행 와서 엄마가 나를 두고 혼자 움직이신 건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엄마 마음에 꼭 드는 풍경을 가졌던 샤프베르크. 여행을 마치고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었을 때도 엄마는 샤프베르크를 꼽았다. 조금 흐려서 구름을 비껴가며 감상해야 했는데도 몹시 멋졌다. 다음에 또 엄마와 유럽여행을 할 수 있다면 스위스로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샤프베르크 정상


짧은 시간이었지만 구경할 건 다하고 사진 찍을 건 다 찍고, 이제 할슈타트로 이동한다. 할슈타트는 여기서 한참 꼬불꼬불한 산길을 들어가야 나온다. 할슈타트는 한국 여행객에게 몹시 유명한 잘츠캄머구트 지역 대표 관광지다. 산이 사방으로 솟아 있고 그 중간에 커다란 호숫가에 아기자기한 집들이 있어 동화 속 마을 같은 곳이다.


할슈타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7시가 넘었다. 해가 길어서인지 시간 개념이 없어져서 늦은 시간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저녁 먹고 숙소로 이동하면 8시도 넘을 것 같다. 숙소의 쥔장이 체크인해달라던 시간을 넘길 것 같아서 미리 연락을 드렸더니 열쇠는 카운터에 두고 가신다고 해서 다행히 편안히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으로는 송어구이를 선택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너무 비려서 거의 못 먹고 엄마가 시킨 스테이크를 나도 나누어 먹었다.


어둑해지고 있는 할슈타트 광장


저녁을 먹고 나오니 어둑해진 할슈타트를 뒤로하고 우리의 숙소가 있는 오베르트라운으로 이동한다. 어둑해지고 나니 순식간에 해가 졌는데 깜깜해서 엄마가 운전하기 좀 어려워하셨다. 구글맵에 우리의 숙소 주소를 찍어 이동했는데 구글맵은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 시골 막다른 길에서 갑자기 안내를 멈췄다. 거긴 숙소가 없는데? 길도 없는데? 2차 멘붕. 깜깜한 시골길이라 정말 무서웠지만 차에서 내려 확인해 보니 구글맵은 숙소 뒤편에 있는 다른 길 쪽으로 우리를 조금 어긋나게 안내한 듯했다. 멀지 않은 곳에 숙소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조심조심 돌아 마을 어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한 하루였고, 여긴 정말 시골인지 칠흑 같은 어둠이 뭔지 확인할 수 있는 곳이어서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운전하면서 몇 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적인 드라이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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