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의 일곱째 날, 그리고 에필로그
쉔브룬 궁전 - 벨베데 궁전 - 판도르프 아울렛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는 쉔브룬 궁전, 벨베데레 궁전을 들르고(어제는 외부 구경밖에 못했으니까) 오후에는 판도르프 아울렛 쇼핑 일정이다.
어제는 흐리더니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쉔브룬 궁전의 정원이 더욱 예뻤다. 오스트리아 왕가의 여름 궁전이라는데 정원 조경이 잘 되어 있어 가히 여름에 더 초점이 맞추어진 궁전이 맞는 것 같다. 원래 계획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못지 않은 화려한 궁전이었다고 하는데 재정상 어려움으로 계획대로 구현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정원과 글로리에테는 어제 스냅을 찍으면서 둘러보았기 때문에 간단히만 구경하고 궁 내부를 구경했다. 내부는 사진 찍기가 금지였는지 사진이 한장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슬프게도 내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다. 이상하게 같은 궁전 내부인데 퓌센에서 보았던 궁전들만 기억에 남고 쉔브룬 궁전 내부는 기억이 잘 안난다.
벨베데레 궁전에는 클림트의 키스가 있다. 아마 빈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벨베데레는 꼭 한번 방문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내부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지만 이곳도 궁전이기 때문에 정원이 굉장히 아름답다. 쉔브룬 궁전보다 규모는 적지만 그래서 산책하기에 더 적합하기도 했다. 전날 미술사 박물관에서는 그 규모에 압도되어 엄마가 빠르게 지쳐버리셨지만 벨베데레는 그에 비하면 적당한 규모여서 구경할만 했다. 클림트에 대해서는 오기 전 책도 읽어보고 와서 내가 간략하게나마 설명도 가능했다.
클림트의 키스를 실물로 보았을 때, 솔직히 화면 속에서 보던 것과 다른 느낌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그림의 크기에 조금 놀라긴 했다. 그저 화면 속 그림도 실물도 모두 아름다웠다.
이곳에는 클림트의 후원을 받았던 빈 출신의 또 다른 유명 화가 에곤 쉴레의 그림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클림트의 그림과는 화풍 자체가 딴판이었지만 그의 그림도 꽤 마음에 들어 나중에 영화도 찾아봤다. 벨베데레에서는 엄마도 꽤 흥미롭게 그림들을 둘러보셨던 것 같다.
그리고 오후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판도르프 아울렛 쇼핑을 위해 나선다. 빈에서 1시간 30분 정도 셔틀을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도 규모가 어마하진 않아서 반나절 돌아다니며 쇼핑하기 딱 좋았다. 나는 이곳에서 토즈 가죽 운동화를 10만원에 득템하고 이후 4년 동안 아주 잘 신었다(한라산 등반할 때 신고 갔다가 망가져서 버렸다는 새드 앤딩이긴 하지만). 엄마도 생애 최초 내돈 내산 명품 가방 하나를 득템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한국 도착까지 성공. 모녀의 길고도 짧은 여행이 끝났다.
1. 아쉬웠던 점
(읽어보며 느끼셨을테지만) 엄마를 위한 여행을 계획하는 듯 하면서 사실은 내가 가고 싶은 곳 알차게 다닌 여행이었다. 엄마는 자연 풍경이 좋은 곳을 현저히 선호하셨는데 미술관이나 궁전 같은 일정이 너무 많았던게 아닌가 싶다. 특히 빈에서 머무르는 일정이 길었는데 하루쯤 줄이고 잘츠부르크나 근교를 하루 더 다녔어도 좋았을 것 같다.
여행 다니면서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엄마가 자꾸 재촉하는 부분이었다. 나도 처음 와보는 곳이라 잘 모르고 길도 찾아봐야 하고 지도도 한참 들여다 봐야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봐야 알 수 있는데, 엄마는 열심히 찾아보는 내 옆에서 "어디로 가야되노" 혹은 "어떻게 해야되노" 를 반복해서 계속 물어보셨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른다니까!!" 하면서 짜증을 내게 되더라는. 자녀와 함께 여행갈 계획이 있으신 부모님들은 제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다(자녀도 최선을 다해 찾고있다).
그리고 부모님과 먼 타지 자유여행을 계획중인 자녀분이라면 지금 생각한것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하고 알아보고 가시면 좋겠다. 부모님은 현지에서 무언가 찾아보지 않으시며 현장에서 다소 조급하시다. 내가 더 많이 준비하면 트러블을 줄일 수 있다.
2. 생각보다 부모님은 체력이 좋다.
엄마의 체력을 걱정하며 숙소와 동선을 계획했건만 엄마는 생각보다 잘 걸으시고 힘들다는 말도 별로 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힘들다고 했던 곳은 미술사 박물관 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망설이시는 모든 분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도전해 보실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패키지 여행보다는 자유여행으로 준비해보시는 것을 권한다. 패키지 여행은 좀 더 나이가 드셔도, 자녀와 함께 하지 않아도 기회가 있으실테지만 자유여행은 기회 자체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자유여행에서 겪는 상황들이 당시에는 당황스러워도 시간이 지나면 함께 나눌 추억이 된다. 쉔브룬 궁전 내부는 기억이 안나도 엄마와 다퉜던 것, 우왕좌왕 했던 사건들은 다 기억이 난다.
3. 여행 그 후
나는 엄마와 여행을 다녀오면 늘상 포토북을 만들어 드리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포토북과 함께 동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여행 내내 짧게 찍었던 영상들을 노래와 함께 싱크해서 3분 정도의 짧은 영상으로 구성한 동영상인데 엄마와 나 모두에게 이 여행을 추억하고 싶을때마다 보기에 딱 알맞은 매개가 되었다.
엄마는 지금도 그 영상을 자주 보시는 것 같고, 3살 짜리 우리 아들도 할머니가 보여주시는 여행 영상을 여러 번 보았다고 하니 말 다했다. 나도 그 때 생각이 나면 한번씩 동영상을 본다.
사진도 좋지만, 짧은 영상 많이 찍어오셔서 동영상으로 만들어 드리는 것도 좋은 선물이 될 듯 하다.
그리고 엄마는 영어 공부를 시작하셨다. 여행 첫째 날 에피소드에서도 썼던 내용이지만 나는 이 점이 굉장히 기뻤다. 우리 엄마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데에 소극적인 분이다.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영어를 배운다니 내가 다음 여행을 또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혹여 다음 여행이 없더라도,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뇌에 굉장히 좋은 자극이니 이러한 동기부여를 한 여행은 참말 좋은 것이다.
8박 10일의 여행,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