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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Dec 17. 2023

스냅사진의 모델이 된 김여사

여행 여섯째 날 - 빈

쉔브룬 궁전 - 오스트리아 은행 - 렌트카 지점 - 미술사박물관 - 피그뮐러


엄마와 둘이 하는 여행에 가장 큰 단점은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거다. 남는 건 결국 사진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진에 꽤 진심인 편인데 엄마는 사진을 잘 못찍으신다. 게다가 둘뿐이니 함께 있는 모습을 찍어줄 사람이 없다(짐이 무거워서 삼각대는 사전 탈락).


그러한 이유로 여행 전에 찾아봤던 비엔나 스냅. 한 업체가 눈에 들어왔고 마침 거기서 사진 찍으시는 작가님이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촬영 코스로 쉔브룬 궁전을 개발 중이신데 사연과 사진을 보내주면 추첨해서 무료 스냅을 찍어주신다고 한다. 그리고 당첨.


스냅사진을 찍기로 작가님과 약속한 날짜가 오늘 오전이었다. 뭘 입으면 가장 예쁠까 고민고민하다가 녹색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장고 끝 악수였다.


쉔브룬 궁전 근처에서 만나 궁전 내부를 제외한 정원을 한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차 한잔 하면서 또 사진을 찍고 중간 중간 작가님이 이야기도 들려주시는 그런 일정이다.


작가님은 쉔브룬 궁전에서 자신만의 포토 스팟이 다 있었다. 적절히 엄마와 내가 먼곳을 보게도 하시고 이야기 나누게도 하시고 걷게도 하면서 촬영하셨는데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려고 가장 신경 써 주신 것 같다. 그저 내가 안예뻤던 것이 이날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진 여러 장 남겼다).


한장만 공개해보는 모녀스냅


엄마는 꼭 연예인 된 기분이란다. 본인 친구들은 해외 여행 가서도 스냅사진 찍었다는 애들은 하나도 없었다며, 패키지 여행이 아닌 딸과의 여행은 이렇게 독특한 경험도 해볼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만족해 하셨다. 엄마 시절엔 웨딩 촬영도 없었을테니 전문가의 디렉션을 받으며 사진을 찍어보신 게 처음일거다.


작가님은 한국분이신데 빈에서 벌써 몇년 째 생활하고 계시다고 했다. 사진도 찍고 피아노도 치신다니 예술성이 남다른 분이시다. 엄마는 역시 엄마인지 듣자마자 "에구, 어머니가 보고싶으시겠다." 하셨다.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그 후 몇 번의 우연이 겹쳐 작가님과 인연이 이어졌다.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하고, 아이도 비슷한 시기에 낳아 서로의 소식을 랜선으로나마 나누면서 공감하고 함께 웃고 분노했다(특히 신생아 육아시절에 그랬다).


그러고보니 이번 여행은 인연이 참 많이 만들어진 여행이다. 비록 소통의 한계로 외국인과의 인연은 닿지 않았으나


오후엔 어제 친 사고들을 수습해야 한다. 작가님께도 어제 할슈타트에서 받은 딱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내가 해석한 내용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이런 일은 처음본다고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보이스 피싱과 유사한 사기를 당한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찜찜하니까 입금하러 비엔나 은행에 방문했다. 여행와서 송금하러 현지 은행까지 와보다니. 퐌타스틱한 경험이다. 다행히 송금 절차는 까다롭거나 복잡하지 않아 무사히 송금을 마쳤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사건이 사기를 당한건지 진짜 주차료를 낸건지 나는 모른다. 다만 (불법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주차를 한 건 맞고, 송금으로 내 마음은 편해졌으니 되었다.


다음으론 어제 렌트카가 제대로 반납된 게 맞는지 확인하러 렌트카 업체에 들렀다. "Everything OK"란다. 그리고 나를 아주 조금 이상하다는듯 바라보았지만 뭐 어때.


보행자 신호마저 낭만적인 빈 시가지


가벼워진 마음으로 드디어 다음 일정인 미술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미술사 박물관엔 그림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나는 그 중에서도 곳곳 벽화로 그려진 클림트 그림을 보고 싶어서 갔다. 미술사 박물관은 전시된 그림 외에도 건물이 고풍스럽고 웅장해 구경하는 맛이 있고 내부 인테리어도 계단, 기둥, 벽화들까지 어우러져 굉장히 멋있다.


나는 신나서 계속 엄마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그림도 열심히 보고 다녔는데 엄마는 이곳에서 가장 체력이 부치신 모양이었다. 이제 여행 후반인 점도 있었지만 엄마는 평소 그림에 조예가 있으신 분은 아닌데다우리는 투어를 통해 설명을 듣는 것도 아니니 흥미가 많이 없으신듯 했다. 게다가 미술사 박물관 바닥은 대리석이라 충격 흡수가 잘 안되서 오래 서있으면 발바닥이 아프다.


여행을 마치고 오직 엄마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곳이 WORST 2에 올랐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이 아니라면 미술사 박물관은 투어를 신청해서 가이드와 함께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녁은 한식을 먹어보려고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셰프 김소희가 운영하는 Kim Kocht에 방문했다. 엄마를 위한 유명 셰프 한식집 흐흣 하면서 야심차게 준비한 집이었는데, 또 영업을 안한다. 아예 문을 닫지는 않은 것 같은데 휴가인지 아님 이전을 하는지 아무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찾느라 고생만하고 결국 이번 여행에서 한식은 한번도 못먹었다(지금은 영업을 하는 것 같다).


다행히 엄마는 관대하고, 이 곳 빈에는 한국 돈가스와 비슷한 슈니첼이 있다. 슈니첼로 유명한 피그뮐러에 가서 맛있게 뚝딱 했다. 이제 여행이 고작 2일 남았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를 먹여살린 슈니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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