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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동산이 Oct 30. 2024

2장 3편 진辰 (1) #6

진辰에 이르렀던 무리들 (2/5)

진辰이라는 무리 -번의 땅을 나와 움직여 예가 머무는 땅 통해 이른 땅에 머물러 그 땅에 본래 있던 무리와 어울려서는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그 무리의 이름을 붙인 진-국[辰-國]을 이루었을 때, 그 뒤 여기에 처음 찾아온 사람들이 바로 조선을 떠나 한韓의 땅으로 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지요.




조선을 떠나 한을 거쳐 진에 이르렀던 사람들은 크 낙랑 사람들, 조선 사람들로 나누어볼 수 있니다. 이 사람들이 한韓의 땅으로 오기에 앞서 선에서 함께 하게 되었던 것은 2가지 일들의 결과입니다. 하나는 조선-연燕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진秦의 어지러움[亂]입니다.


낙랑樂浪 사람들은, 앞서 주서 왕회해편이 주周 때에 성주에서 있루어진 모임에 함께 하였다 적은 무리들의 이름들 가운데 양이良夷, 곧 양良이라는 땅에 머물던 동쪽 사람들[夷]니다.  사람들은 그 뒤에도 그 땅에 계속 머물렀는데, 한참 뒤 조선 사람들이 연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는 아사달을 떠나 이리저리 움직여 마침내 여기에 자리잡으면서 그들과 함께 하니다.


그 뒤에 르렀던,  조선 사람들이라고 이르는 무리는 사실 2가지 무리들니다. 하나는 앞서 아사달에서 기-자가 단-군을 대신하여 조선을 다스리던 때부터 따르던 말 그대로의 조선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조선-왕 준이 조선을 다스릴 때 진의 어지러움을 떠나 와서 함께 하였던 연, 제, 조 사람들인데 진秦을 먼저 따랐기에 진秦 사람들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3가지 무리들은 앞서 우거를 떠난 역-계-경을 따라 남쪽으로 - 마-한으로 - 가서 한-왕을 따랐으며, 다시 한-왕의 뜻에 따라 마-한의 동쪽 계界의 땅 곧 진-국과 맞닿은 곳에 머물러 진辰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그 수가 적지 않았기에 진 사람들의 우두머리는 한-왕을 따르기로 하고서는, 한-왕이 보낸 새로운 사람들을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본래 있던 사람들을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을 통해 사람들을 다스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들어온 이러한 무리들의 모습은 뒤에 3ㅏ시 신라가 일어나 그들의 일을 적기 시작한 뒤에야 자료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지요.




먼저 본래, 조선 사람들에 대해 한서 지리지는 -자가 조선으로 와서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1장 3편 P-1:-]고 적고, 그 가르침을 이어받은 당시 낙랑-군에 있던 조선 사람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도적을 골라내지 않아도 되어, 문을 닫아거는 일이 없었다[1장 3편 P-1:]고 적은 구절이 있습니다.


1장 3편 P-1 한서 지리지: ① 은殷의 도리[道]가 ② 사그라들었다. ③ 기-자[箕-子]가 ④ (은을) 떠나 조선朝鮮으로 갔다. ● (조선에서 기-자가) ⑤ 예를 갖춤[禮]과 올바름[義]으로 사람들[民]을 가르치니 ● (사람들이) ⑥ 논밭을 갈고[田] 누에를 치고[蠶] 천을 짜고[織] 물건을 만들었다[作]. ⑦ 낙랑(-군)[樂浪]의 조선 사람들은 ⑧ 꺼려하는 8가지[條]를 어기고서는, ⑨ "죽인 사람"을 골라[相] ⑩ 때를 맞춤으로 죽인 일을 갚도록 하였고, ⑪ "상처입힌 사람"을 골라 ⑫ 곡물[穀]로 (상처입힌 일을) 갚도록 하였고, ⑬ "도적질한 사람"을 골라 ⑭ 남자는 ● 모두 ⑮ 그 가문[家]에 들여보내 따르는 사람[奴]이 되었고(= 되도록 하였고) ⑯ 여자와 아이는 ● (모두 그 집에 들어가) ⑰ 따르는 여자[婢]가 되었는데(= 되도록 하였는데), ● (도적질한 사람 가운데) ⑱ "스스로 갚고자 하는 사람"은 ⑲ 사람마다 500,000이었는데(=500,000을 갚도록 하였는데) ● 비록 ⑳ 벗어나 (갚은) 사람이 되어도 ㉑ 세상 사람들이 ● 여전히 ㉒ 그 사람[之]을 부끄러워하니 ● (그 사람이) ㉓ 시집갈 (나이의) 사람[嫁]이나 장가갈 (나이의) 사람[取]이라면 ㉔ (그 사람과) 짝지우는[讎] 곳[所]이 없었다. ● 이리하여 ㉕ 그(= 조선) 사람들에게 ● 마침내 ㉖ 도적질한 사람을 고르지 않아도 ㉗ 문을 닫아거는 일이 없었고(= 없어졌고), ㉘ (조선 사람들의) 아내들[婦人]이 ㉙ 곧바르고[貞] 성실하여[信] ㉚ 어지럽거나[淫] 치우치지[辟] 않았고(=않게 되었고), ㉛ 그(= 조선의) 논밭가는 사람들은 ㉜ 변두籩豆로 먹고 마셨다(= 마시게 되었다). ①殷道②衰③箕子④去之朝鮮●⑤敎其民以禮義●⑥田蠶織作⑦樂浪朝鮮民⑧犯禁八條⑨相殺⑩以當時償殺⑪相傷⑫以穀償⑬相盜者⑭男●沒⑮入爲其家奴⑯女子●⑰爲婢●⑱欲自贖者⑲人五十萬●雖⑳免爲民㉑俗●猶㉒羞之●㉓嫁取㉔無所讎●是以㉕其民●終㉖不相盜㉗無門戶之閉㉘婦人㉙貞信㉚不淫辟㉛其田民㉜飮食以籩豆


이러한 모습은 흔한 모습 아니며, 때문에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이, 또한 그러한 모습을 적으면서, 기-자의 가르침을 받아 조선 사람들이 그리하게 되었다[1장 3편 O:⑦-⑧]고 적었습니다. 예 사람들은 아사달에서부터 기-자가르침을 받 그 가르침을 이어왔기에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위 사람들이 예 사람에게 기-자의 일을 듣고 또한  모습 보고서 한서 지리지와 같이 기-자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1장 3편 O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편: ① 옛날[昔] ② 기-자[箕-子]가 ③ 조선朝鮮으로 가기를 끝내고서 ● (조선에서) ④ 8가지[條]의(= 8가지에 대한) 가르침[敎]을 지었고 ⑤ 그것[之]을 가르쳐 ⑥ 문을 닫아 거는 일이 없어도 ⑦ 사람들이 ⑧ 도적질[盜]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①昔②箕子③旣適朝鮮●④作八條之敎⑤以敎之⑥無門戶之閉⑦而民⑧不爲盜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0년 04월 기사는 낙랑 사람들이 군사들을 거느리니 군사들이 신라를 침범하였[D-5:①-③]고 적고 그리하여 보니 변방 사람들 밤에 문을 닫아걸지 않았[D-5:④-⑦] 적고서, 드러나게 쌓은 것들 - 거둔 것들 - 이 들판에 널려있도록 하였다[D-5:⑧-⑨]고 적고 있습니다. 곧 참 뒤 신라 사람들 가운데에 기-자의 가르침을 이어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적고 있습니다.


D-5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0년 여름 04월 30일[己亥晦]) ① 낙랑樂浪 사람들이 ② 군사들을 거느리니 ● (군사들이) ③ 와서 침범하였다. ● 보니, ④ 변방[邊] 사람들은 ⑤ 밤에도 ⑥ 집[戶]을(= 집의 문을) ⑦ 닫아걸지 않았고, ⑧ 드러나게 쌓은 것(= 거두어 쌓아놓은 것)을 ⑨ 들판에 널려있도록 하였다. (赫居世居西干三十年夏四月己亥晦)①樂浪人②將兵●③來侵●見④邊人⑤夜⑥戶⑦不扄⑧露積⑨被野


앞서 이야기한 예 사람들이 또한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앞서 글에서 보았듯이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예 사람들을 신라 사람들과 구분하여 적었습니다. 그러니 이 기사가 예 사람들이라고 구분하여 적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예 사람들이 아니라 신라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곧 신라가 일어난 진-한 땅, 그 변방 사람들 가운데에 옛 조선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던 것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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