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濊로 가는 새로운 옛 길 (4/5)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은 위 때에 고구려-위 전쟁을 치르며 이르렀던 옥저라고 스스로 일컫던 무리가 있는 땅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들을 모두 적었고, 뒤에 이 내용을 정리하고 몇 가지를 보탠 것들을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편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절들 가운데에는 위만이 조선에서 왕 노릇을 하며 다스릴 때에 옥저가 모두[皆] 위만을 따랐다[2장 1편 B:①-②]고 적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앞서 이 구절을 인용한 바 있는데, 얼핏 보면 옥저라는 무리 그리고 땅 이름이 위만이 다스릴 때부터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그러하였을까요?
2장 1편 B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① 이(= 위만이 조선에서 왕노릇할) 때 ② 옥저沃沮가 ● 모두 (위만을) 따랐다[屬]. ①時②沃沮●皆③屬焉
이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은 낙랑-군과 임둔-군의 동쪽 땅을 지키도록 따로 동-부를 나누어 도위를 두었고, 낙랑-군에 임둔-군을 아우르면서 이곳은 낙랑-군의 동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서 뒤에, 옥저 - 옥저 땅의 무리들이 낙랑-군을 따르게 되었으니, 이 일을 삼국지 위서 동옥저편은 또한 옥저가 돌아와서[還] 낙랑-군을 따랐다[G-4:①-②]고 적었습니다.
G-4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① 옥저沃沮가 ② 돌아와서 낙랑(-군)[樂浪]을 따랐다[屬]. ①沃沮②還屬樂浪
이 때, 돌아왔다[還]고 적은 것은 보다 앞에 삼국지 위서 동옥저편이 옥저의 곧 옥저 땅에 있는 성城에 현토-군을 두었다[G-2:⑤]고 적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한漢의 현토-군을 없애자 현토-군을 따르던 무리들이 바로 한을 따른 것이 아니라 뒤에 돌아와 낙랑-군을 따랐던 것입니다.
앞서 낙랑-군을 따랐다고 적은 구절들에 이어지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의 구절들이 그렇게 다시 낙랑-군을 따르게 된 과정을 보여줍니다. 한은 옥저의 땅이 단단-대-산령 동쪽에 있다고 여겼다[G-5:①-③]고 적고, 이어 나누어 동-부로 하고 도위를 두었는데 그 치治가 - 도위를 둔 곳이 - 불내-성이었다[G-5:④-⑤]고 적었습니다. 앞서 삼국유사가 인용한 전한서가 적은 동-부와 도위에 대해, 그 치治가 불내-성에 있었다는 점을 또한 적은 것입니다.
G-5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① 한漢은 ② (옥저의) 땅[土地]은 ● 넓게[廣] 멀리[遠] ③ 단단-대-(산)령[單單-大-領] 동쪽에 있다고 여겼다. ● (앞서) ④ 나누어 동-부[東-部]로 하고 도위都尉(= 위들[尉]의 우두머리[都])를 두었고 ⑤ (도위의) 치治는 불내-성[不耐-城]이었는데, ● (이 때에) 따로(= 떨어진) ⑥ (단단-대-산)령 동쪽의(= 동쪽에 있는) 7개 현들에(=현들에 대해서도) 우두머리 노릇을 하니(= 하게 되니) ⑦ (이) 때 ⑧ 옥저沃沮가 ● 또한 ⑨ 모두 ⑩ (도위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현들[縣]이 되었다. ①漢②以土地●廣遠③在單單大領之東●④分置東部都尉⑤治不耐城●別⑥主領東七縣⑦時⑧沃沮●亦⑨皆爲縣
그런데, 이어 도위는 뒤에 따로[別] 단단-대-산령 동쪽의 7개 현들에 대해서도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G-5:⑥]고 적었습니다. 여기 별別이라는 글자를 보태어 적은 것은, 치인 불내-성이 있던 곳은 본래 단단-대-산령 동쪽의 땅이 아니라 멀리 단단-대-산령 서쪽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7년 09월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사는 먼저, 화려-현과 불내-현이 거느린 말탄 군사들이 신라의 북쪽 변방을 침범하였다[J-2:①-③]고 적었고, 이어 맥-국이 군사들로 하여금 - 말탄-군사들이 움직인 또는 움직일 길목인 - 곡-하[曲-河]를 막도록 하니[J-2:④-⑥], 맥-국의 군사들이 "서쪽으로 가서[西]" 그들 - 2개 현들이 보낸 말탄 군사들을 패배시켰다[J-2:⑦-⑧]고 적었습니다.
J-2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17년 가을 09월 ① 화려(-현)[華麗], 불내(-현)[不耐] 2(개) 현들[縣]의 사람들이 ② 잇달아 꾀하여 말탄 군사들[騎兵]을 거느렸고 ● (말탄 군사들이) ③ 북쪽 변방[境]을 침범하였다. ④ 맥-국[貊-國]의 우두머리[渠帥]가 ⑤ 군사들[兵]이 ⑥ 곡-하[曲-河]를 막도록 하니 ● (군사들이) ⑦ 서쪽으로 가서 그들[之](= 화려-현, 불내-현의 말탄 군사들)을 ⑧ 패배시켰다. (儒理尼師今)十七年秋九月①華麗不耐二縣人②連謀率騎兵●③犯北境④貊國渠帥⑤以兵⑥要曲河⑦西⑧敗之
그런데,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은 고금군국지를 인용하여 고구려의 동남쪽 땅이었고 예의 서쪽 땅이었던 맥의 땅은 대개 지금 신라의 북쪽 땅인 삭-주였다[AI:①-⑤]고 적었습니다. 곧 삼국사기 신라본기가 맥-국이라고 적은 곳은 예의 서쪽 땅에 있었으니 지금의 태백-산맥 서쪽 땅에 해당합니다.
AI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 인용 고금군국지: ① (고)구려의 동남쪽이었고(= 동남쪽 땅이었고) ② 예濊의 서쪽인(= 서쪽 땅이었던) ③ 옛 맥貊의 땅은 ● 대개 ④ 지금 ⑤ 신라新羅의 북쪽(= 북쪽 땅인) 삭-주[朔-州]였다(= 삭-주에 있었다). 賈躭古今郡國志云①勾麗之東南②濊之西③古貊地●盖④今⑤新羅北朔州
곧 화려-현의 말탄 군사들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불내-현의 말탄 군사들과 더불어 불내-현에 모인 뒤, 태백-산맥 서쪽에 있던 맥의 땅보다 더 서쪽에 있던 길로 - 동쪽으로 - 움직여 신라 북쪽 변방을 침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로 움직여서 이르게 되는 불내-현이 있던 곳, 불내라고 이름한 땅은 태백-산맥의 서쪽 먼 곳에 있었습니다.
더하여, 이러한 기사를 통해 앞서 전한서가 이른바 낙랑-군, 임둔-군의 동-부에 도위都尉 - 군사들을 거느리고 지키는 위들[尉]의 우두머리 - 을 두어 대비하도록 하였던 상대가 바로 예의 서쪽에 있었던 맥임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다시 뒤에 다른 자료로 이어집니다.
일단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본래 낙랑-군의 동-부는 단단-대-산령 서쪽의 땅에 해당했다는 것입니다. 도위가 단단-대-산령 동쪽 7개 현들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된 것은 그 뒤 옥저를 비롯한 그 동쪽 무리들이 돌아와 따르기로 하였던 때[G-5:⑦-⑩]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하여 다시 한을 따르게 되었을 때 그 무리의 이름은 옥저沃沮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은 2가지 자료들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는 한서 지리지가 적고 있는 바, 낙랑-군을 따르는 현들의 이름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옥저沃沮가 적혀있지 않고, 제일 마지막에 이르러 부조夫租라는 이름이 적혀있을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낙랑-군이 있던 현재의 북한 지역에서 발견된 호구부 - 호戶와 구口라는 단위를 가지고 낙랑-군에 있던 사람들의 수를 적은[簿] 목간이 적고 있는 현들의 이름입니다. 이것은 낙랑-군에 있던 사람들의 수를 각각의 현 이름 아래 나누어 적고 있는데, 여기에도 현 이름들 가운데에 옥저는 없고 부조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漢은 낙랑-군의 조선이라는 이름을 현의 이름으로 쓰며 그리하였듯이, 현의 이름은 가급적 그곳에 있던 무리가 스스로 이르던 글자를 써서 적고 그렇지 않으면 한에서 그 글자의 소리를 적는 다른 글자를 써서 적었습니다. 곧 본래 옥저라는 이름이 있던 - 북쪽의 예가 머무르는 곳의 무리 이름은 옥저가 아니었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보다 앞서 옥저라고 적기 시작한 어떤 시기까지 한漢에서 부조夫租를 읽는 소리로 읽던 어떤 글자들로 적던 것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본래 어떤 이름이었을까요? 뒤에 바뀐 옥저라는 이름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그 이름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한이 새롭게 열었던 옛 길에 대한 부여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 글에서 그것을 찾아 이 길에 대한, 이 시기 부여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