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4편 부여夫餘 (1) #27

부여가 옮겨가는 사이 (8/8)

by 잡동산이

본래부터 임둔-군에 해당하지 않았던 낙랑-군의 현들 가운데 이제 이야기할 마지막 현의 이름은 염/남감[䛁邯]입니다. 이 이름에 대해 중요한 점은, 그것을 적는 글자의 소리가 시간에 따라 바뀌어 한서 지리지보다 뒤의 자료는 또한 다른 이름으로 었다는 점입니다. 이해 살펴보겠습니다.




䛁邯의 첫번째 글자인 䛁에 대해 이른 시기의 소리를 적은 설문해자는 소리가 여汝, 염閻의 반절[切]이다[M-4:⑧] - 곧 염이라고 적었습니다. 보다 뒤의 소리를 적은 한서 지리지 주석은 맹강의 말을 인용하여 䛁의 소리가 남男이다[AJ-2:②-③]라고 적고, 사고의 말을 인용하여 내乃, 감甘의 반절이다[AJ-2:⑤-⑥] - 곧 남이라고 한 적었습니다.


M-4 설문해자: ① 염䛁: ② 염염䛁䛁은 ③ 많이 말하는 것[多語]이다. ④ 언言을 따르며 ⑤ 염冄의 소리다[聲]. ⑥ 낙랑(-군)[樂浪]에 ⑦ 염감-현[䛁邯-縣]이 있다. ⑧ 여汝와 염閻의 반절[切]이다. ①䛁②䛁䛁③多語也④从言⑤冄聲⑥樂浪⑦有䛁邯縣⑧汝閻切
AJ-2 한서 지리지 주석: <① 맹강孟康이 ● 말하기를 "② 염䛁의 소리[音]는 ③ 남男이다."라고 하였다. ④ 사고師古가 ● 말하기를 "⑤ 염䛁의 소리[音]는 ⑥ 내乃와 감甘의 반절[反]이다. ⑦ 감邯의 소리[音]는 ⑧ 감酣이다.> <①孟康●曰②䛁音③男④師古●曰⑤䛁音⑥乃甘反⑦邯音⑧酣>


이 2가지 자료들에 따르면 䛁邯이라는 이름 첫 글자의 소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현재의 '염'이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였고, 뒤에는 현재의 ''이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한서 지리지는 사고의 말을 인용하여, 䛁邯의 두번째 글자인, 䛁의 소리가 감酣이다[AJ-2:②-③]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대만 이체자자전은 감酣의 다른 모양 글자로 +舍에 가까운 글자를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함䣻의 다른 모양 글자인데, 함䣻의 소리는 含의 소리니 그것의 다른 모양 글자 酉+舍에 가까운 글자를 酉+舍라고 잘못 보아 그 소리가 舍의 소리 - 현재의 '사'로 이어진 옛 소리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곧 䛁邯 소리는 본래 현재의 '염감'이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글자의 소리를 현재의 '사'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라고 못 여기고 䛁邯의 소리가 현재의 '염사'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잘못된 옛 소리에서 이어진 '염사'라는 소리를 현재의 소리로 가지는 글자들이 보이는 자료가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이 인용한 위략은 왕망의 지황 때 곧 MC+20[+4)에 염사廉斯 착鑡이 진-한[辰-韓]의 우 거수가 되었다[AW:②-③]고 적었는데, 낙랑에서 염감이라고 하던 무리 이름 진-한 함께 하고서 달리 염사고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AW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① 왕망王莽의 지황地皇 때에 이르러 ② 염사廉斯의 착鑡이 ③ 진-한[辰-韓]의 우右의 거수渠帥(= 우두머리)가 되었다.> <①至王莽地皇時②廉斯鑡③爲辰韓右渠帥>




현재 '염'이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는 앞서 맹강이 이야기하였듯이 뒤에 바뀌어 '남'이라는 소리로 이어져 南으로 달리 적혔습니다. 그런데, 진-한에서는 斯의 현재 소리인 '사'로 이어진 옛 소리를 현재 소리가 '신'인 新을 써서 적습니다.


그리하여 진-한 가운데 신라의 일들을 적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05년 05월 기사가 처음 남신南新이라는 이름[J-4:①]을 적었데, 이 시기는 MC+84/05입니다. 그 뒤로도 삼국사기 신라본기 벌휴이사금 03년 07월 기사, 나해이사금 27년 04월 기사가 남신-현이라고 스스로 이르던 장소의 일들[J-5:①, J-6:③]을 적었는데, 각각의 시기는 MC+187/07, MC+222/04입니다.


J-4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05년 여름 05월) ① 남신-현[南新-縣]의 보리가 ② 가지들을 이었다. (婆娑尼師今五年夏五月)①南新縣麥②連歧
J-5 삼국사기 신라본기: (벌휴이사금 03년) 가을 07월 ① 남신-현[南新-縣]이 ② 상서로운 벼[嘉禾]를 올렸다. (伐休尼師今三年)秋七月①南新縣②進嘉禾
J-6 삼국사기 신라본기: (나해이사금) 27년 여름 04월 ① 우박이 내렸다. ● (우박이) ② 콩, 보리를 상처입혔다. ● (앞서) ③ 남신-현[南新-縣] 사람이 ④ 죽었는데 ⑤ (1)달을 지내고 ● (남신-현 사람이) 다시 ⑥ 살았다. (奈解尼師今)二十七年夏四月①雹●②傷菽麥●③南新縣人④死⑤歷月●復⑥活


그러나 그 뒤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가 남신-현의 이름을 더이상 적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이 앞서 적은 바 공손강이 대방-군을 두었다고 한 구절에 뒤이어 적은 일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공손강은 공손모, 창장 등을 보내 대방-군으로 삼은 둔유-현 남쪽 땅에 남은 사람들을 모아 군사들을 일으켰고 이 사람들이 한, 예를 치니 옛 사람들이 점점 한, 예에서 나왔다[AH-2:①-⑥]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옛 사람들이란, 대방-군을 둔 일에 앞서 적은 바 환-제 때에서 영-제 말에 이르기까지 한, 예가 일어나고 낙랑-군의 현들이 다스리지 못하는 사이 낙랑-군 여러 현들의 사람들이 한, 예로 들어갔다[AH-3:①-⑦]고 적은,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AH-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공손강이) ① 공손모公孫模, 장창張敞 등을 보내니 ● (공손모, 장창 등은) ② (둔유-현 남쪽 땅에서) 거두어 남은 사람들[遺民]을 모아 ③ 군사들을 일으켰고, ● (군사들이) ④ 한韓, 예濊를 치니 ⑤ 옛 사람들[民]이 ● 점점 ⑥ (한, 예에서) 나왔다. ①遣公孫模張敞等●②收集遺民③興兵●④伐韓濊⑤舊民●稍⑥出
AH-3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환(-제)[桓], 영(-제)[靈] 말末에 ② 한韓, 예濊가 ● 강하게 ③ 일어났다[盛]. ④ (낙랑-)군郡의 현들[縣]이 ⑤ (한, 예를) 다스릴 수 없으니 ⑥ (낙랑-군의 현들이 다스리던) 사람들[民]이 ● 많이 ⑦ 흘러 한韓의 국들[國]로 들어갔다. ①桓靈之末②韓濊●彊③盛④郡縣⑤不能制⑥民●多⑦流入韓國


이러한 사람들이 공손-강이 보낸 사람들이 일으킨 대방-군의 군사들이 한, 예와 싸우는 때를 틈타 대방-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앞서 이야기한 염감-현을 나가서는 처음에는 염사, 뒤에는 다시 남신-현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이르던 무리들 또한 대방-군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방-군이 이 사람들이 스스로 나왔다고 하는 남신-현 - 실제로는 염감-현이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서 - 을 새로, 대방-군을 만들고 그 치를 대방-현에 두며 없앤 남-부-도위의 치가 있던 소명-현의 자리에, 만들어 사람들을 두니, 여기가 바로 진서 지리지가 적은 바 대방-군의 남신-현이었습니다.




요컨대, 염감-현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건너가 스스로를 이르던 소리가 달라져 염사가 되었고, 뒤에 진-한에서 적는 바에 따라 그 이름을 다시 달리 적어 남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뒤에 대방-군으로 돌아가자, 그들이 나왔다고 하는 남신이 곧 염감임을 알지 못하고서 대방-군이 소명-현의 옛 자리에 새로 남신-현을 두었습니다.


이것으로 한서 지리지가 적은 바 낙랑-군 25개 현들에 대해서, 관련된 앞서의 임둔-군과 관련된 일들 모두 그리고 뒤의 대방-군과 관련된 일들 약간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여기서 2장 4편 부여 (1)에서 적은 바 MC-74 즈음까지 부여의 움직임과 나란히 이루어진 이야기는 끝이 나는 바, 여기서 또한 2장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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