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2편 진辰 (2) #4

진-한의 여섯 무리들 (4/8)

by 잡동산이

잠시 앞서의 질문을 에 든 채로, 다른 촌들에 대한 기록들을 이어 살펴보지요. 이어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6개 촌들 가운데 셋째를 자-산 진지-촌이라고 하였다[C-6:①-②]고 적고, 6개 촌들 가운데 넷째를 무-산 대-수-촌이라고 하였다[C-7:①-②]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삼국유사 기이편은 6개 촌들의 셋째를 무-산 대-수-촌이라고 하였다[B-18:①-②]고 적고 이어 6개 촌들의 넷째를 자-산 진지-촌이라고 하였다[B-19:①-②]고 적었습니다.


C-6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6개 촌들의) 셋째를 ● 말하기를 ② 자-산[觜-山] 진지-촌[珍支-村]이라고 하였다. ①三●曰②觜山珍支村
C-7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6개 촌들의) 넷째를 ● 말하기를 ②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이라고 하였다. ①四●曰②茂山大樹村
B-18 삼국유사 기이편: ① (6개 촌들의) 셋째를 ● 말하기를 ②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이라고 하였다. ③ (대수-촌의) 우두머리를 ● 말하기를 ④ 구례마俱禮馬라고 하였는데, ● (구례마는) ⑤ 처음 ⑥ 이-산[伊-山]에 내려왔다. ● (뒤에) ⑦ 이 사람을(= 구례마를) ⑧ 점량-부[漸梁-部] 또한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손-씨가) 조상이라고 하였다. ⑨ 지금 ⑩ (이-산 아래를) 일러 ● (말하기를) ⑪ 장복-부[長福-部]라고 하며, ⑫ 박-곡-촌[朴-谷-村] 등 서쪽 촌들이 ⑬ (장복-부를) 따른다. ①三●曰②茂山大樹村③長●曰④俱禮馬●⑤初⑥降于伊山●⑦是⑧爲漸梁部又牟梁部孫氏之祖⑨今⑩云●⑪長福部⑫朴谷村等西村⑬屬焉
B-19 삼국유사 기이편: ① (6개 촌들의) 넷째를 ● 말하기를 ② 자-산[觜-山] 진지-촌[珍支-村]이라고 하였다. ③ (진지-촌의) 우두머리를 ● 말하기를 ④ 지백호智伯虎라고 하였는데, ● (지백호는) ⑤ 처음 ⑥ 화-산[花-山]에 내려왔다. ● (뒤에) ⑦ 이 사람을(= 지백호를) ⑧ 본피-부[本彼-部] 최-씨[崔-氏]의(= 최-씨가) 조상이라고 하였다. ⑨ 지금 ⑩ (화-산 아래를) ● 말하기를 ⑪ 통선-부[通仙-部]라고 하며, ⑫ 시파柴巴 등 동남쪽 촌들이 ⑬ (통선-부를) 따른다. ⑭ (최)치원致遠이 ● 이어 ⑮ 본피-부 사람이었는데, ⑯ 지금 ⑰ 황룡-사 남쪽 미탄-사에 ⑱ 옛 터가 있고 ⑲ (이 터를) 일러 ● (말하기를) "⑳ 이곳[是]이 ㉑ 최-후의 옛 집이었다."라고 하니, ● 거의 ㉒ 분명하다. ①四●曰②觜山珍支村③長●曰④智伯虎●⑤初⑥降于花山●⑦是⑧爲本彼部崔氏祖⑨今⑩曰⑪通仙部⑫柴巴等東南村⑬屬焉⑭致逺●乃⑮本彼部人也⑯今⑰皇龍寺南味呑寺南⑱有古墟⑲云●⑳是㉑崔侯古宅也●殆㉒明矣


곧 촌들로 있는 사이에 그 순서가 바뀌었으니, 앞서 이루어진 촌들은 그 뒤 그대로 이어온 것이 아니라 촌으로 있는 동안에도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바뀌도록 한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6촌들 전체를 함께 말할 때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은, 그렇게 바뀐 것이 하나의 촌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6개 촌들 전체에서, 다만 정도의 차이를 두고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앞서 지절 01 6개 부들의 조상들 - 6개 촌들의 우두머리들 - 이 알-천에 모인 일을 적은 삼국유사 기이편 구절[B-4]에 바로 이어지는 구절들이 그 일이 무엇인지 드러내어 적고 있습니다. 바로 다스리는 사람들이 그들의 다스림에서 벗어나고 있다[B-20:⑥]고 적은 일니, 이러한 황을 삼국지 위서 이전 한편, 진-한의 6개 국들이 점점 나누어져 12개 국들이 되었다[A-2:①]고 적었습니다.


B-20 삼국유사 기이편: (6개 촌들의 우두머리들, 그 아들들, 아우들이) ① (상황을) 헤아리고 ● 말하기를 "② 우리[我], 무리들[輩]이, ③ 위[上]에 ④ 군주君主가 없이(= 우두머리를 두지 않고) ⑤ 와서 늘어나는[蒸] 사람들[民]을 다스리니, ⑥ (우리가 다스리는) 사람들도 ⑦ 모두 ⑧ 놓여나고[放] 달아나서[逸] ● 스스로 ⑨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른다. ● 어찌 ⑩ 덕이 있는[德](= 사람들이 돕는/따르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아 ● 그를(= 덕이 있는 사람을) ⑪ 군주라고 하여(= 우리 위에 우두머리로 두고) ⑫ 방邦을 세우고 ⑬ 도읍[都]을 만들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地節元年三月朔)①議●曰②我輩③上④無君主臨治蒸民⑥民⑦皆⑧放逸●自⑨從所欲●盍⑩覓有德人⑪爲之君主⑫立邦⑬設都乎
A-2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 (진-한의 6(개) 국들이) 점점 ① 나뉘어 12(개) 국들이 되었다. ● 稍①分爲十二國


보다 앞서 주변의 다른 움직임이 없을 때야 그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북쪽, 한漢의 4개 군들[郡]이 하나로 정리되어가는 것을 알게 되는 상황을 알게 되니, 그리고 나면 앞선 세대에게 들은 바 진秦이 다시 한漢이 그리하였듯 모인 힘이 그 주변에 영향을 줄 것임을 알던 우두머리들은, 그들이 다스리던 사람들이 벗어나는 일을 되돌려 그러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는 데에 뜻을 같이하였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의 구절들이 적은 바 그들이 마련한 해결책에 대해서는 이번 편 끝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돌아가서 보면 이렇게 사람들이 벗어나 각각의 촌들에 해당하는 6개 국들은 각각 12개 국들로 나누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갈라진 사람들의 수에 차이가 있으니, 그리하여 크기가 비슷하던 대수-촌은 진지-촌보다 작아져 셋째에서 넷째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서 보면, 앞서의 구절들에 이어 삼국유사 기이편은 대수-촌의 우두머리 구례마가 이-산에 내려왔다[B-18:⑤-⑥]고 적었으며, 또한 진지-촌의 우두머리 지백호가 화-산에 내려왔다[B-19:⑤-⑥]고 적었습니다. 양-산-촌, 고-허-촌의 우두머리들이 이르렀던 표암-봉, 형-산이 그러하였듯이, 2명 우두머리들이 본래의 촌들을 떠나 모이는 가운데 이르렀던, 현재의 경-주 가까이 있던 곳들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유리이사금 09년 대수-부를 점량-부라고 하였다[C-8:①-②]고 적고, 또한 같은 해 우진-부를 본피-부라고 하였다[C-9:①-②]고 적었습니다. 이 구절들은 앞서와 같이, 빠지고 해당하는 시기만이 주석이 잘못이라고 하며 남긴 옛 책[古本]의 건무 01년 MC+25에 해당하는 유리이사금 02년에, 저 대수-촌은 대수-부로 바뀌었고, 진지-촌은 우진-부가 되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C-8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09년 봄) ① 대수-부[大樹-部]를 ② 점량-부[漸梁-部]라고 하였으며, ③ (우두머리의) 성을 ④ 손孫이라고 하였다(= 손-씨를 점량-부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儒理尼師今九年春)①大樹部②爲漸梁部③姓④孫
C-9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09년 봄) ① 우진-부[于珍-部]를 ② 본피-부[本彼-部]라고 하였으며, ③ (우두머리의) 성을 ④ 정鄭이라고 하였다(= 정-씨를 본피-부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儒理尼師今九年春)①于珍部②爲本彼部③姓④鄭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점량-부의 우두머리의 성을 손-씨라고 하였[C-8:③-④]고 적었니다. 곧 삼국유사 기이편이 적은 바 대수-촌의 우두머리 구례마를 조상으로 여기던 손-씨[B-18:⑦-⑧]가 이어 다스리도록 한 것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본피-부의 우두머리의 성을 정-씨라고 하였다[C-9:③-④]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 우두머리는 앞서 삼국유사 기이편이 적고 있는 바 뒤에 본피-부가 되는 진지-촌의 지백호를 조상으로 여기던 최-씨[B-19:⑦-⑧] - 최-씨 성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삼국유사 기이편은 정-씨는 - 정-씨 성의 사람들은 고-허-촌의 소벌도리를 조상으로 여겼다[B-17:⑦-⑧]고 하였습니다.




자, 드디어 앞서의 글에서 들고온 질문을 이해하기 위한 또다른 단서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끊고, 다음 글에서 그 답을 풀어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장 2편 진辰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