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2편 진辰 (2) #6

진-한의 여섯 무리들 (6/8)

by 잡동산이

살핀 바와 같이 정-씨 성의 사람들은 유리이사금 02년 고-허-촌이 고-허-부로 바뀐 뒤에 그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고, 유리이사금 07년 우진-부가 본피-부로 바뀐 뒤에 그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씨 성의 사람들은 유리이사금 02년 진지-촌/우진-촌이 우진-부로 바뀐 뒤에 그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고, 다시 유리이사금 07년 고-허-부가 사량-부로 바뀐 뒤에 그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세력이 미미하던 신라 초기, 곧 왕을 세우고 받들기는 하여도 그가 실제적인 힘을 갖추도록 돕지는 않던 시기에, 대대로 성을 쓰며 이어오던 우두머리들은 왕이 맡기는 이러한 형식을 갖추어 로 부들을 바꾸어 다스렸습니다. 이러한 모습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마-한 사람들이 12개 국들 - 6개 부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갈라진 다른 무리들 - 을 맡아 대대로 서로 이어갔다[2장 3편 A-7:⑥-⑨]고 적었습니다.


2장 3편 A-7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그(= 변-진, 진-한의) 12(개) 국들은 ② 진-왕[辰-王]을 따랐다[屬]. ③ 진-왕[辰-王]은 ④ 언제나 ⑤ 마-한[馬-韓] 사람들을 썼는데[用] ● (마-한 사람들이) ⑥ 그것들[之](= 12(개) 국들)을 맡아 ⑦ 대대로 ⑧ 서로 ⑨ 이어갔다. ①其十二國②屬辰王③辰王④常⑤用馬韓人●⑥作之⑦世世⑧相⑨繼


그러한 6개 국들 - 6개 촌들 가운데 양-산-촌, 대수-촌, 가리-촌, 고야-촌은 뒤로도 이어 같은 성을 쓰는 사람들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최-씨와 정-씨 성을 쓰는 사람들 또한 그들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부들의 옛 우두머리, 곧 고-허-촌의 우두머리 소벌도리 또는 진지-촌의 우두머리 지백호를 그 조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보인 바와 같이 최-씨와 정-씨 성을 쓰는 사람들은 같은 부에서 이어 우두머리 노릇을 하여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다른 4개 부들과 달리 뒤에 최-씨와 정-씨 성을 쓰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스리던 2개 부들을 다스린 첫 우두머리의 후손이 아니었으니, 런 첫 우두머리들 이르는 지백호와 소벌도리라는 단어들에 다른 첫 우두머리들의 이름 알평, 구례마, 기타, 호진는 다른 점이 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먼저, 지백호라는 단어 가운데에는 백伯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이 글자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인데 또한 달리 중仲, 숙叔, 계季의 글자들을 대신하여 이름 가운데 쓰여 그 형제들 가운데 첫째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곧 지백호智伯虎는 이름이라기보다 성 + 이름 또는 장소 이름 + 伯 + 이름의 형태로 이루어진 단어로, 지智는 성 또는 소 이름에 해당합니다.


한 지백호의 후손이 이어 맡아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진지-촌/우진-촌 대해 왕은, 유리이사금 02년에 우진-부로 바고서 어째서 -씨 성을 쓰는 사람이 그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을까요? 해당하는 기인 MC+25 약간 앞서 진-한에 일어던 1가지 요한 일 때문에 그러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대해 앞서 낙랑-군의 현들에 대해 살피며 아주 간단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의 주석의 구절들이 위략을 인용하여, 염사이라는 사람이 진-한 가운데 우右의 우두머리[渠帥]가 되서는, MC+20[+2)에 해당하는 지황 연간에 진-한에 잡혀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낙랑-군에 가서 漢을 따르기로 하였다[2장 4편 AW:①-③]고 적은 일이 그것입니다.


2장 4편 AW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주석 인용 위략: <① 왕망王莽의 지황地皇 때에 이르러 ② 염사廉斯의 착鑡이 ③ 진-한[辰-韓]의 우右의 거수渠帥(= 우두머리)가 되었다.> <①至王莽地皇時②廉斯鑡③爲辰韓右渠帥>


조선을 따르던 예의 남려가 요동-군에 이르러 한漢을 따랐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일 진-한에게 결코 가벼운 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염사는, 낙랑-군 염감-현 사람들이 떠나 이르른 진-한에서 물던 곳을 옛 현의 이름름하여 달리 적은 것이 뒤에 달리 남신이라 적던 것니다. 그러한 곳을 다스리던 이라는 사람이 우의 거수가 되고서는 이러한 일을 일으 앞서 조선의 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은 다행히 한漢과의 대립없이 해소되었지만, 그 뒤를 이은 유리-이사금은 자리에 오른 다음 해, 우진-촌을 우진-부로 고치면서 그 우두머리[渠帥]를 바꾸어 일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 거수가 된 곳을 이르는 右는 현재 '우'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은 것인데, 현재 같은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적는 于로 달리 줄여 적는 곳 우진于珍 해당니, 그리하여 물러게 되었던 우진-촌의 우두머리, 지智라는 성姓을 가진 지백호의 후손 바로 齒입니다.


대신하여 우두머리가 되었던 최-씨 성을 쓰는 사람은 그가 맡은 곳의 옛 우두머리 지백호 대해 알고 후손에게 백호를 옛 우두머리의 이름라 전하는데, 오 뒤에 최-씨 성을 쓰는 사람들 다른 부들의 우두머리였던 사람들이 그러하였듯, 그들이 다스렸던 곳의 옛 우두머리고 전하여 온 지백호를 조상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 뒤 우진-부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최-씨 성의 사람들은 유리이사금 09년에 해당하는 시기 MC+32, 우진-부 대신 사량-부로 이름을 바꾼 고-허-부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한 자리바꿈은, 가까운 시기 다른 자료가 적은 또다른 최-씨 성의 우두머리 - 바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 여름 04년 기사가 적은 옥저의 낙랑-왕 최리[I:③] 때문이었습니다.


I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 여름 04월 ① 왕자王子 호동好童이 ② 옥저沃沮에서 노닐었다. ③ 낙랑(-국)[樂浪]의 왕王 최리崔理가 ④ (낙랑-국을) 나와 움직였고 ● 이어 ⑤ 그를(= 호동을) 보았다. (大武神王十五年)夏四月①王子好童②遊於沃沮③樂浪王崔理④出行●因⑤見之


후한서 광무제기는 건무 06년 도위를 없었다[2장 4편 AK-1:③]고 적었는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은 그리하여 낙랑-군 동-부의 도위가 없어졌다[J-1-(1):④]고 적고 이어 그 현들 가운데 앞서 도위를 따르던 불내-현, 화려-현, 옥저의 여러 현들에서는 그 우두머리들 - 이미 부조에서 옮겨간 부여의 일은 다음 편 또는 그 다음 편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 을 후가 되도록 하였다[J-1-(2):①-③]고 적었습니다. 최리는 그 즈음 옥저에 자리잡고서 이러한 후들을 르도록 한 뒤에 스스로 왕으로 일컬었습니다.


2장 4편 AK-1 후한서 광무제기: (건무 06년 겨울 12월 28일[癸巳]) ① 이 해 ② 처음 ③ 군들[郡], 국들[國]의 도위都尉 벼슬을 없앴다. (建武六年冬十二月癸巳)①是歲②初③罷郡國都尉官
J-1-(1)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① 한漢은 ② (건)무 06년 ③ 변방의 군들[郡]에 있는 도위都尉를 없앴으며 ● (낙랑-군 동-부-도위는) ④ 이 일[此]로 말미암아 ⑤ 없어졌다. ①漢②武六年③省邊郡都尉●④由此⑤罷
J-1-(2)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편: ① 그(= 낙랑-군 동-부-도위가 없어진) 뒤에 ● (동-부-도위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현들은) ② 모두 ③ 그 현들[縣] 가운데 거수들[渠帥](= 우두머리들)이 ④ 현들[縣]의 후侯가 되도록 하였다. ⑤ 불내不耐, 화려華麗, 옥저沃沮의 여러 현들[縣]이 ⑥ 모두 ⑦ (후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국들[國]이 되었다. (建武六年)①其後●②皆③以其縣中渠帥④爲縣侯⑤不耐華麗沃沮諸縣⑥皆⑦爲侯國


그러한 최-씨가 갑자기 옥저에 나타나게 된 것은, 보다 앞서 백제가 동쪽에 있다고 하였던 낙랑 곧 남해 차차웅 때에 신라를 덮치기도 하던 옛 낙랑-국 사람들이, MC+20[+2)에 낙랑-군이 알게 되었던 바와 같이 진-한이 잡은 사람들이 되었다가 풀려나고, 그 뒤 MC+25 우진-부를 최-씨 성의 사람들이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던 일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의 이름 우진이 남아있는 장소에서 그 결을 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은 명-주에 울진-군이 있고 본래는 고구려 우진야-현이었다[K:①-③]고 적었습니다. 과연 이곳에 언제, 무슨 일 때문에 고구려 사람들이 들어와 머물렀으며, 왜 그곳을 본래 고구려의 현이라고 하였는지는 남해차차웅 때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자세하게 살필 것이니, 일단 이 자료에서는 여기가 현재의 울진-군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K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 (명-주에는) ① 울진-군[蔚珍-郡]이 있었는데, ● (울진-군은) ② 본래 ③ 고구려 우진야-현[于珍也-縣]이었다. ④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⑤ 고쳐 이름하였다(= 울진-군[蔚珍-郡]이라고 하였다). (溟州)①蔚珍郡●②本③高勾麗于珍也縣④景德王⑤改名


울진-군에서 남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내려가면 현재의 경-주 곧 신라의 수도인 금-성의 동쪽 바닷가에 이릅니다. 또한 북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올라가면 현재의 함흥과 그 북쪽 땅 곧 옥저의 동쪽 바닷가에 이릅니다. 둘 가운데에 자리한 이곳에 최-씨 성의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고서 북쪽의 예가 있던 - 본래 진 사람들이 머물던 - 옥저에 가문의 사람을 보내니, 이 사람이 옥저 사람들과 어울 두머리가 되어 왕이라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루어낸 무리가 한漢의 이름을 등에 업고 스스로 서기를 바니, 그것을 알고 주변의 무리는 그 무리를 낙랑-국이라고 하였습니다. 런 까닭에 진-한은 그들을 꺼려하였고, 보다 앞서 염사의 이 그러하였듯이, 우진-부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최-씨 성의 사람이 낙랑-국을 통해 한漢을 따르 되는 일이 없도록, 유리이사금 09년 낙랑-국과 멀리 떨어진 고-허-부를 사량-부로 고치고 그에게 맡겼니다.




다음 2개의 글들에서 소벌도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진-한의 여섯 무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어 그 가운데 한 무리를 통해 진-한에 건너와 바깥 일들을 알려왔던 여자와 그가 낳은 아들을 주제로 하는 글들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는 듯 여기지만 은 그렇지 않은 혁거세赫居世와 사소娑蘇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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