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2편 진辰 (2) #11

사소娑蘇와 그 아들 (3/6)

by 잡동산이

사소의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째서 옛날 자취를 찾아가지를 먼저 되짚어보자면, 진-한을 아우르는 한韓과 그 바깥 무리들 사이에서 이어 이루어진 움직임들이 어떻게, 어떤 곳들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지를 모두 그러한 자취를 으며 핀 바를 통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앞서 자료를 통해 살핀 바와 같이 진-한의 서쪽, 낙랑-군에 보다 가까이 있던 마-한은 준이 이르러 한-왕이라고 스스로 일컬은 뒤로는 바깥의 일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3장 1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한 사람들이 북쪽의 상황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움직인 것은 다른 길을 통해 그 상황이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아닌 MC-70 즈음 주활동시기가 시작되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한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 MC-68 진-한의 여러 우두머리들이 모인 것, 그러한 일들이 현토-군의 이동이 이루어진 MC-74부터 북쪽의 상황 변화가 낙랑-군을 그 중심으로 하여 마무리되던 시기에서 오래 지나지 않아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 나아가서 한漢의 조정의 일들까지 알려줄 사람이 어야 하는데, 그 것들 모두 사소 수 있고 그리하여 돌아와 전할 수 있었까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사소의 자취 가운데에 나타납니다. 물론 그가 가져와 정치적 도구로 사용한 신선의 재주라는 것들 또한 그 뒤로 진-한 그리고 변-한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그것은 또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위해, 이제 사소의 남은 자취의 한쪽 끝을 이제 살펴보고서 다른 쪽으로 다시 다른 쪽 끝으로 차례차례 나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살피던 자료로 돌아가 야기를 이어갑시다. 앞서의 글 끝에서는 삼국유사 감통편의 구절들과, 그것을 그대로 옮겨적은[轉載]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구절들의 차이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돌아왔다는 뜻의 글자 歸를 왔다는 뜻의 글자 來로 고쳐적은 이유를 알 수 있으니, 이어지는 구절들이 되돌아가지 않았다[不還]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에 돌아왔다는 것은 그가 본래 있던 곳으로 왔다는 뜻입니다. 되돌아간다는 것 또한 그리하는 것이니 본래 있던 곳으로 와서 또 본래 있던 곳으로 간다는 것은 어색해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되돌아가기에 앞서 그가 돌아왔던 곳 - 본래 있던 곳을 떠난 일이 있었거나, 또는 그가 되돌아가기에 앞서 있던 곳이 그가 본래 있던 곳 - 되돌아온 곳이 아니라 그가 그저 '왔던' 곳이어야 합니다.


이 2가지 경우들 가운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뒤의 경우를 잘못 적은 것이라고 여기고 되돌아왔다는 뜻의 글자를 돌아왔다는 뜻의 글자로 고쳤니, 사소에 대한 중-국[中-國] 황제 가문의 여자[帝室之女]라는 구절 중-국의 황제 가문의 여자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야 진-한에 이르른 일은 돌아온 것[歸]이 아니라 온 것[來]이 되고 중-국으로 가지 않은 것은 되돌아가지 않은 것[還]이 니다.


이어지는 부황父皇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관점이 더욱 적절한 것처럼 보이도록 합니다. 사소의 이야기 하며 아버지 황제[父皇]라고 하였으니 사소는 본래부터 황제의 딸 곧 중-국 황제 가문의 여자였던 것이 아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황제의 딸이 해당하는 시기에 있을 수 있었는지를 통해 이 관점이 적절하지 않음은 바로 확인됩니다.


곧 이 시기 중-국 곧 중-원의 국은 한漢이었는데, 당시 한의 우두머리인 황제는 MC-149 자리에 오른 무-제가 MC-86 죽은 뒤에 자리를 이었던 소-제 또한 MC-73 죽은 뒤에, 그 자리에 잠시 올랐다가 같은 해 쫓겨난 폐-제에 이어 그 자리에 오른 선-제였습니다. 그러나 선-제는 MC-90에 태어난 사람이니, MC-68에 선-제 자신도 아니고 그 딸이 아이를 낳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사소는 중-국 황제의 딸이 아니었, 돌아왔다[歸]를 왔다[來]를 잘못 적은 것이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삼국유사 감통편이 적은 구절은 사소가 진-한에 이른 일을 돌아왔다고 여긴 진-한 사람들의 관점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사소는 본래 진-한 사람이었고 때문에 진-한에 바로 자리잡아서는 양-산-촌에서 그 우두머리의 도움을 받아 신선의 재주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소가 황제의 딸이 아니라면, 앞서의 父皇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또한 사소를 중-국 황제 가문의 여자라고 적은 구절은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먼저, 父皇이라는 단어에 대해 살펴보지요. 父와 皇라는 글자들은 본래 모두 위에서 아래로, 세로로 이어 적혔던 것들입니다. 그리한 점을 떠올려 이런 식으로 실제 적어보면, 皇이라는 글자가 그 가운데 두 글자 白과 王을 이어, 그러나 간격을 좁혀 적은 것라는 것이 보입니다. 이러한 점을 통해 보면 부황을 포함한 구절들은, 사소의 아버지가 왕王에게 알린[白] 일을 음과 같이 적은 것입니다.


L-2 삼국유사 감통편: ① (사소의) 아버지가 ② 왕에게 알리고[皇 = 白 + 王] ③ (왕에게) 글을 맡기니 ● (왕이) ④ (글을) (연鳶의) 다리에 묶고 ⑤ 일러 ● (말하기를) "⑥ 연을 따라가서 ⑦ (연이) 멈추는 곳에 ⑧ 집[家]으로 삼으라."라고 하였다. ⑨ (사)소蘇가 ⑩ 글을 얻고서 ⑪ 연을 놓아주니 ● (연이) ⑫ 날아서 ⑬ 이(= 선도-)산에 이르러 멈추었고 ● (사소가) 이윽고 ⑭ 와서 집으로 삼고[宅] ⑮ (그) 땅[地]의 (신)선仙이 되었다. ● 그리하여 ⑯ (그 땅을)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⑰ 서연-산[西鳶-山]이라고 하였다. ①父②皇③寄書●④繫足⑤云●⑥随鳶⑦所止⑧爲家​⑨蘇⑩得書⑪放鳶●⑫飛⑬到此山而止●遂⑭來宅⑮爲地仙●故⑯名●⑰西鳶山


이야기 가운데 왕은 곧 진-한 지역의 왕이니, 앞서 알평과 소벌가리가 찾아내고서 13년이 지나서 왕의 자리에 올렸던 사소의 아들입니다. 어리지만 이미 왕이 되었던 그에게, 사소의 아버지 - 왕의 외할아버지 - 가 왕의 어머니인 사소에 대해 알렸다[L-2:①-②]고 적은 것이 父皇으로 보이는 父白王이라는 삼국유사 감통편의 구절이고, 그 내용은 그 앞 구절이 적은 바 사소가 되돌아오지 않은 일[不還]에 대한 것이었니다.


앞서의 글에서 왕이 나이들어 그 어머니 사소에게 배운 것으로 보이는 신선의 재주를 쓰던 모습을 보았는데, 이 때 아이는 이미 사소에게 작은 재주를 배웠고 그리하여 사소의 아버지가 왕에게 이 일을 알리고서는 글을 맡겨 왕이 그 재주로 사소에게 보내도록 하였습니다[L-2:③]. 그 뜻에 따라 왕이 연 - 솔개 - 의 다리에 글을 묶어 보내니 사소는 글을 받아 보았고 - 아이가 있는 곳에 돌아가는 - 연을 따라와 머물기는 하였지만[L-2:④-⑭], 물던 곳은 양-산-촌이 아닌 다른 곳이었습니다.


사소가 그리한 것은 서 양-산-촌에서 그 아이를 왕으로 삼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는 하였으나 그 재주가 속임수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 일이 끝난 뒤에 사소는 양-산-촌을 떠나 바다 동쪽에 이르러 멈추고 오래 양-산-촌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不還]. 곧 사소는 신선의 재주가 쓰임이 다한 뒤에지 대접받기움을 알고 있으니, 이것은 뒤에 살필 일들 - 진-한에 이르기에 앞서 사소가 겪은 일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함을 이해하고 보면, 반대로 여자의 그러한 재주를 써서 아이를 왕으로 세우도록 한 알평과 여자의 관계는 참으로 남다른 것입니다. 게다가 소벌도리의 후손들과 달리 알평의 후손들 곧 그 피붙이들이 왕에게 등돌리는 일 없이 그 후손들을 따랐는데, 알평의 후손들이 서로 이어가며 같은 자리를 지킨 것을 통해 보면 그들이 왕의 후손들을 또한 피붙이로 여긴 것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러한 왕과 알평의 후손들의 교차점에 해당하는 사람이 앞의 구절들이 적고 있는 사람들, 사소와 사소의 아버지입니다. 사소의 아버지는 왕에게 사소의 일을 알리고 사사로운 일을 부탁할 만큼 왕에게 가까이 자리하였으며 또한 왕이 몸소 그 뜻에 따라 글을 보내기도 하였던 사람이니, 왕의 바로 아래에 자리하였고 또한 왕을 세웠기에 왕이 그 뜻을 기꺼이 따르던 사람, 양-산-촌의 우두머리 알평이었으며 사소는 알평의 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소는 진-한으로 돌아와 바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에 북쪽의 상황을 전하여 듣고서 양-산-촌의 우두머리 알평이 고-허-촌의 우두머리 소벌도리와 더불어 헤아려 왕으로 세울 아이를 준비할 때에 알평이 사소의 아들을 내세운 것, 사소가 지닌 신성의 재주를 써서 아이가 여러 우두머리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준비하는 것을 도운 것들은 모두 사소와 알평의 그러한 관계 통해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관점에서 아직 살피지 않은 자료는 중-국 황제 가문의 여자라는 구절 뿐입니다. 살핀 바, 사소는 중-국 황제의 딸이 아니었으니 이 구절은 사소가 중-국 황제 가문의 여자였던 - 잠시 그 가문 르던 자임을 은 것입니다. 앞서 살핀 바와 함께 보면, 소는 진-한을 떠나 신선의 재주를 얻어 지니고서 돌아오기에 앞서 중-국 황제의 가문에 머르던 -씨 성의 여자입니다.


과연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었을까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는 앞서 황제의 딸이 있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확인하여야 하니,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다면 이 관점은 버리고 모든 자료들을 살펴 모두를 아우르는 관점을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사서 가운데에는 그러한 사람이 있으니, 이제 이어지는 단서 하나를 찾고 그리로 나아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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