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娑蘇와 그 아들 (2/6)
6개 촌들의 우두머리들이 찾은 남자아이를 낳은 여자가 누구였는지, 앞서의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삼국유사 기이편은 적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름인 사소가 나타나는 것도 삼국유사 감통편이라는 다른 자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이름이 신라 시조를 낳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마지막에, 헤아려 말한다[論曰]이라는 구절 뒤에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글을 적고 있습니다. 김부식은 먼저 신라본기에 따르면 신라의 박-씨, 석-씨가 알 같은 것으로부터 태어났고 김-씨가 금으로 된 상자에 들어간 채 하늘로부터 내려왔다[N-(1):①-⑦]고 적었습니다. 그리고서는 - 자신은 - 그러한 일들을 믿는다거나 그러했다고 여기지 못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일들을 전하며 실제 일어난 일로 여겼다[N-(1):⑬-⑰]고 적었습니다.
N-(1) 삼국사기 사론 인용 김부식: (신라본기에 따르면) ① 신라新羅의 박-씨, 석-씨는 ② 모두 ③ 알 같은 것[卵]으로부터 태어났고, ④ 김-씨는 ⑤ 하늘[天]로부터, ⑥ 금金으로 된 상자[櫃]에 들어가서, ⑦ 내려왔다. ⑧ 어떤 기록[或]은 ⑨ 일러 ● 말하기를 "⑩ 금 수레를 탔다."라고 하였는데, ⑪ 이것(= 이 기록)은 ● 더욱 ⑫ (사람을) 속이는 것[詭], 이상한 것[怪]이다. ● (나는) ⑬ (그것들을) 믿는다[信]거나 그러하다[然]고 할 수 없었지만, ⑭ 세상[世] 사람들[俗]은 ⑮ 서로 ⑯ 전하여 ⑰ 그것들[之](= 신라 박-씨, 석-씨, 김-씨의 일들)을 실제[實](= 있었던) 일[事]이라고 하였다. 論曰①新羅朴氏昔氏②皆③自卵生④金氏⑤從天⑥入金樻⑦而降⑧或⑨云●⑩乗金車⑪此●尤⑫詭怪●⑬不可信然⑭世俗⑮相⑯傳⑰爲之實事
그런데 그가 신라본기를 정리하기로 한 것은 물론 왕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리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위의 자료가 이어 적고 있는 구절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어지는 구절들은 송宋의 연호가 정화였던 해 - MC+1111[+7) - 김부식이 일을 맡아 송에 가게 되었다[N-(2):①-⑧]고 적고서는, 이어 우신-관이라는 곳에서 신선의 상像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N-(2):⑨-⑪]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 관에 있던 학사 왕보가 그 상의 여자 신선이 너희 국 - 고려 - 에 있는 신선이라고 하고 그 사람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N-(2):⑫-⑯]고 적었습니다.
N-(2) 삼국사기 사론 인용 김부식: ① 정화 가운데(= 연호가 정화였던 해에) ② 우리 조정이 ③ 상서 이자량을 보내니 ● (이자량이) ④ 송의 조정에 들어가 ⑤ 물건을 주었다[貢]. ⑥ 나[臣] (김)부식富軾은, ⑦ 문한文翰을 맡은 것[任]이(= 글을 짓는 일을 맡은 까닭에) ● (내가) ⑧ (이자량을) 도우며 움직이도록 하였다(= 움직이게 되었다). ⑨ 우신-관[佑神-舘]에 이르러 ⑩ 1(개) 집[堂]을 보았는데 ● (사람들이) ⑪ (그 집에) 여자 (신)선의 상을 만들고 있었다. ⑫ (우신-)관과 함께 하던[伴] 학사 왕보가 ● 말하기를 "⑬ 이것[此](= 이 여자 신선)은 ⑭ 너희[貴] 국의 신(선)[神]인데, ⑮ 너희들[公等]은 ⑯ 그[之]를(= 그 신선에 대해) 아는가?"라고 하였다. (論曰)①政和中②我朝③遣尚書李資諒●④入宋朝⑤貢⑥臣富軾⑦以文翰之任●⑧輔行⑨詣佑神舘⑩見一堂●⑪設女仙像⑫舘伴學士王黼●曰⑬此⑭貴國之神⑮公等⑯知之乎
이어지는 구절들은 그 상의 주인공인 여자 신선이, 진-한의 첫 우두머리가 되는 아이를 낳은 여자라는 것[N-(3):⑦-⑨], 중-국의 황제 가문에 있다가 남편없이 아이를 가지고서 바다를 건넜던 여자라는 것[N-(3):②-⑥], 그리고 그 여자가 신선이 되어 선도-산에 있었다는 것[N-(3):⑩-⑬]을 왕보가 말하였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에 대해 김부식은 별다른 이야기를 적지 않았는데 그 뒤에 또다른 글을 보고 나서야 무엇인가를 떠올려 알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N-(3) 삼국사기 사론 인용 김부식: ● (왕보가) 말하기를 "① 옛날 ② (황)제帝 가문[室]의(= 황제 가문에) 여자가 있었다. ● (여자는) ③ 남편을 두지 않았는데(= 혼인하지 않았는데) ④ 아이를 가져[孕] ⑤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는 바 되었다. ● 이어 (여자는) ⑥ 바다[海]에 떠서[泛] ⑦ 진-한[辰-韓]에 이르러 ⑧ 아들을 낳았다. ● (여자의 아들은) ⑨ 해동海東의 첫 우두머리[主]가 되었으며 ⑩ (황)제帝 (가문에 있었던) 여자[女]는 ⑪ (그) 땅[地]의 (신)선仙이 되어 ⑫ 오래도록 ⑬ 선도-산[仙桃-山]에 있었다. ⑭ 이것[此]은 ⑮ 그[其](= 황제 가문에 있던 여자의) 상像이다."라고 하였다. (論曰)●(王黼)曰①古②有帝室之女●③不夫④而孕●⑤爲人所疑●乃⑥泛海⑦抵辰韓⑧生子●⑨爲海東始主⑩帝女⑪爲地仙⑫長⑬在仙桃山⑭此⑮其像也
이러한 일에 대해, 앞서의 구절들에서 이어지는 구절들은 그가 보고 무엇인가를 떠올렸던 그 글을, 왕양이라는 사람이 동신인 성모를 제사지내던 글[N-(4):②]이라고 적고서는, 그 글에 동신인 성모가 슬기로운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가 방邦을 이루었다[N-(4):③]고 적은 구절들이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선도-산에 이른 여자의 일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김부식은 동신을 이르는 성모의 일을 알게 되자 선도-산과 성모를 더한 선도-산의 성모[N-(4):④]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N-(4) 삼국사기 사론 인용 김부식: (그 뒤) ① 내[臣]가 ● 또한 ② '대-송-국[大-宋-國] 믿는[信](= 믿을 만한) 사신[使] 왕양王襄이 동신東神인 성모聖母를 제사지내는 글'을 보는데 ● (그 글에) ③ '(동신인 성모가) 슬기로운 사람[賢]을 아이로 가졌고[娠] (아이는) 방邦을 이루었다.'라는 구절들이 있었다. ● 이어(= 그리하여) (나는) ④ 동신東神 곧 선도-산[仙桃-山]의 성모聖母라는 이[者]가 그리하였음[然]을 알았다. ⑤ 그(= 선도-산에 있던 여자의) 아들이 어느 때에 왕 노릇을 하였는지[王] 알지 못하였는데 ⑥ 지금(= 왕양의 글을 보고서) ● 겨우[但] ⑦ 빠진 것[厥]을(= 알지 못하던,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 어느 때에 왕 노릇을 하였는지를) 알게 되었다[原]. ①臣●又見大宋國信使王襄祭東神聖母文③有娠賢肇邦之句●乃④知東神則仙桃山神聖者也●然⑤而不知其子王於何時⑥今●但⑦原厥
그 떠올린 것을 통해 김부식은, 앞서까지 알지 못했던 바 그 아들이 방邦을 이루었던, 진-한의 첫 우두머리가 된 것이 언제인지[N-(4):⑤] 겨우 알게 되었다[N-(4):⑦]고 적었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진-한에서 일어난 우두머리 신라 시조를 적은 것을 통해 보면, 선도-산 성모를 통해 그가 떠올려 답을 얻은 것은 신라가 일어난 곳 - 신라의 도읍과 관련된 어떤 것이었습니다.
과연 신라의 도읍인 현재의 경주에 본래 성모와 관련된 어떤 것이 있었는지 자료들을 살펴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경주-부의 사묘들[祀廟](= 제사지내는 곳들) 가운데 적은, 그 주석은 경-주 선도-산에 있었다고 적은 성모-사[O-1: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있는 곳을 떠올리고서야 겨우 김부식은 성모의 아들이 이루었다고 왕양이 적은 방邦이 신라라는 것, 그리고 뒤에 신선이 되는 선도-산의 여자가 낳아 진-한의 첫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왕보가 말한 여자의 아들이 진-한에서 일어난 신라 시조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O-1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사묘 주석: <● (성모-사[聖母-祠]는) ① (신라의) 서-악[西-嶽]인 선도-산[仙桃-山]에 있다. ② 성모聖母(= 뛰어난 어머니)는 ● 본래 ③ 중-국(= 중-원에 있는 국을 다스리는) (황)제帝 가문[室]의(= 황제 가문에) 여자였다. ④ 일찍이 ⑤ (황제 가문에서) 신선神仙의 재주[術]를 얻었고, ⑥ 와서는[來] ⑦ (다시 떠나) 바다 동쪽에 멈추어 ⑧ 오래 있으면서 ⑨ 되돌아가지 않았다. ● 이윽고 ⑩ 신(선)[神]이 되었다. ⑪ 세간에서 ⑫ 전하여, ⑬ 혁거세赫居世는 ● 이어 ⑭ 성모聖母가 낳았던[誕] 바라고 하였다.> (聖母祠)<●①在西嶽仙桃山②聖母●本③中國帝室之女名娑蘇④早⑤得神仙之術⑥來⑦止海東⑧久⑨而不還●遂⑩爲神⑪世⑫傳⑬赫居世●乃⑭聖母之所誕也>
때문에 그는 신라를 비롯하여 고구려, 백제의 옛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서 지난 기록들[歷史]를 살피게 되었고, 그리하여 보다 뒤에는 인종의 명령으로 역사책을 - 삼국사기를 - 짓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하면서도 그 스스로는 비록 여전히 믿거나 그리하다 여길 수 없었지만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를 신라본기에 적어 남기게 되었으니, 그러한 사정이 앞서 자료 첫머리에 적어놓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앞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자료를 통해 살핀 성모-사에 대해서는 함께 살펴야 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MC+1111[+7) 김부식이 송에 갔다가 돌아온 뒤인 MC+1123 고려에 왔던 송의 사신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이, 서-경 - 현재의 평양에 해당하는 곳 - 에 동신-사가 있고[P:①-②] 그 건물에 붙여진 것에 동신인 성모의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P:⑫-⑬]고 적은 구절들이 그것입니다.
P 고려도경: ① 동신-사[東神-祠]는 ② 선인-문[宣仁-門] 안에 있었다. ③ 땅은 ● 이미 ④ 고르고 넓었지만 ⑤ 건물[殿宇]은 ⑥ 낮고 낡았다. ⑦ 딸린 방들[廊廡]이 ⑧ 30개[間]인데 ⑨ 거칠고 쓸쓸한 것이 ⑩ 고쳐지지 않았다. ⑪ 곧바로 이르는 건물[正殿]은 ⑫ 붙여진 것[榜]이 ● 말하기를 ⑬ 동신東神인 성모聖母의 집[堂]이라고 하였는데 ⑭ 장막[幕]을 쳐서 ⑮ 그것을 가리도록 하였다. ⑯ 다른 사람들[人]이 신상(= 신 같은 사람의 모습)을 보도록 하지 않았지만 ● 아마 ⑰ 나무를 깍아 ⑱ 여자의 모습을 만든 듯하다. ⑲ 어떤 사람[或]이 ⑳ 일러 ● (말하기를) "● 이어 (그 여자는) ㉑ 부여(-왕)[夫餘]의 아내[妻]다. ● (부여-왕의 아내는) ㉒ 하-신[河-神]의 딸이었는데 ㉓ 그가(= 부여-왕이) ㉔ 주몽을 낳도록 하였다. ● (주몽은) ㉕ 고려高麗의 시조가 되었으며 ● 그리하여 (고려가) ㉖ 그[之](= 부여-왕의 아내)에게 제사지냈다."라고 하였다. ①東神祠②在宣仁門內③地●稍④平廣⑤殿宇⑥卑陋⑦廊廡⑧三十間⑨荒涼⑩不葺⑪正殿⑫榜●曰⑬東神聖母之堂⑭以帟幕⑮蔽之⑯不令人見神像●蓋⑰刻木⑱作女人狀⑲或⑳云●乃㉑夫餘妻㉒河神女也㉓以其㉔生朱蒙●㉕爲高麗始祖●故㉖祀之
삼국사기가 세상에 나온 MC+1146보다 앞선 이 시기에는, 중-국에서 전하여지고 있었고 김부식이 뒤늦게 알아차렸던 바 동신인 성모가 곧 선도-산의 여자신선이라는 것은 정작 고려에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고려도경은, 어떤 사람이 성모는 부여-왕의 아내며 고려 시조인 주몽의 어머니라고 하였다[P:⑲-㉕]고 적었는데, 이 사람은 왕양이 성모가 낳은 아이가 방을 일으켰다[N-(4):③]고 적은, 동신-사에 전하던 이야기를 들고서 성모의 아들이 일으킨 방이란 서-경에 해당하는 평양에 옛날 도읍하였던 고구려라고 여기고 성모를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라고 여겨 그리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옛 삼국사를 인용하였다고 여겨지는 동명왕편 주석 가운데 주몽이 그 어머니를 성모가 아니라 신모[Q:③]라고 적은 구절들과도 맞지 않으며, 주서 고구려전이 고려에 있던 사당들이 섬기는 주몽의 어머니를 부여-왕의 아내가 아니라 부여-신[R:⑨]이라고 적은 구절들과도 맞지 않습니다. 사실 서-경은 고구려의 시조가 도읍인 평양조차 아니었으니, 성모를 주몽의 어머니라고 잘못 여긴 고려 사람은 사실 주몽과 그 어머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Q 동명왕편 주석: <① 주몽朱蒙이 ● 말하기를 "아마도[應] ② 이것들[是](= 이 비둘기들)은 ③ 신모神母(= 유화)가 시켜 보리씨[麥子]를 보내주는 것들이리라."라고 하였다.> <①朱蒙●曰應②是③神母使送麥子>
R 주서 이역열전 고려편: (고려에는) 또한 ① (2명) 신 같은 사람[神]을 모시는 사당들[廟] 2곳[所]이 있었다. ● (2명 신과 같은 사람들 가운데) ② 1(명)[一]을 ● 말하기를 ③ 부여-신[夫餘-神]이라고 하였는데 ● (그의 사당에는) ④ 나무를 깎아 남편있는 여자[婦人]의 상像이 있었다. ⑤ 다른 1(명)을 ● 말하기를 ⑥ 등고-신[登高-神]이라고 하였는데 ● (그의 사당에서) ⑦ 일러 ● (말하기를) ⑧ 이 사람[是](= 등고-신)은 ⑨ 그(= 고려) 시조였으며 부여-신의 아들[子]이라고 하였다. 又①有神廟二所●②一●曰③夫餘神●④刻木作婦人之象⑤一●曰⑥登高神●⑦云●⑧是⑨其始祖⑩夫餘神之子
이러한 모습이, 이미 동신인 성모가 누구인지 알던 왕양, 우신-관에 만들어지던 여자 신선이 진-한의 첫 우두머리가 되었던 사람의 어머니고 선도-산에 있음을 알던 왕보와 같은 송의 사신이던 서긍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김부식이 지은 진삼국사기표는 그것을, 왕의 말을 인용하여 신하들이 중-국의 지난 일들은 알아도 우리 방邦의 지난 일들은 알지 못한다[S:①-⑧]고 적은 바, 왕이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짓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런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S 동문선 전재 진삼국사기표: (페하가, 일러 말하기를 ")① 지금의 배우는 선비들[士], 대부들[大夫], ② 그들[其]은(=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③ 5(개) 경들[五經]과 여러 사람들[諸子]의 글들[書], 진秦, 한漢, 지난 세대[歷代]의 사들[史]에 ④ 때로[或] ⑤ 두루 오고가고 (그리하여) 자세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⑥ 우리 방邦의 일들에 이르면 ⑦ 물러나 아득해하고 그리하여 그(= 우리 방의 일들의) 처음[始], 끝[末]을 잘 알지 못함(= 못하는 사람들)이 ⑧ 많다[甚]. ⑭ 한숨을 내쉴[歎] 만 하다.("라고, 하도록 하였다.) (以謂)①今之學士大夫②其③於五經諸子之書秦漢歷代之史④或⑤有⑤淹通而詳說之者●⑥至於吾邦之事⑦却茫然不知其始末⑨甚⑭可歎也
돌아가서, 앞서의 구절들은 동신이었던 성모에게 제사지내는 성모-사가 또한 동신-사라는 이름으로 보다 북쪽에 있던 고려의 서-경 곧 한참 앞서 한漢의 낙랑-군 조선-현이 있던 곳에 그 뒤 세워졌고 고려 때까지도 남아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훨씬 남쪽에 머물던 선도-산 성모 곧 사소의 자취가 여기에 남아있게 되었을까요?
그 까닭을 찾아 앞서 살폈던 삼국유사 감통편의 구절들을 다시 살펴보면, 그 가운데에서 앞서 살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옮겨 적으면서 미묘하게 고쳐진 한 글자를 보게 됩니다. '돌아왔다'는 뜻의 歸[L-1:⑦]라는 글자를 대신하여 쓰인 '왔다'는 뜻의 來[O:⑥]라는 글자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글자를 고쳐 적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이곳에 사소의 자취가 남은 이유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 답을 통해서 앞서 구절들을 읽어가는 사이 무심코 받아들였을 사소에 대한 이야기들을 돌이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한 뒤에야 비로소 다음 단서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는 바, 이 이야기를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