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장 3편 왜倭 (0-2) #11

이즈모出雲에 머무르는 사이 (3/4)

by 잡동산이

스사노-오가 이나-타-히메와 혼인한 이야기, 아이 시노를 낳은 이야기를 일본서기와 적고 있는 다른 자료란 바로 고사기입니다. 앞서 간단히 살피며 보았던 것처럼, 일본서기가 그리고 일본서기가 인용한 어떤 기록들의 많은 내용들이 본래 말로 전해지던 것처럼 겨지록 만들어졌지만 결국 기紀가 되지 못하고 기記로 남은 것들입니다.




고사기는, 일본서기가 적은 스사노-오의 일을 달리 적은 데 이어, 이나-타-히메가 쿠-미토-니가 일어나도록 하였다[H-1-(1):①-③]고 적었습니다. 쿠-미토-니는 일본서기가 적은 쿠사-미토에서 '사'라는 이어지는 소리가 빠지고 '니'라는 소리가 보태진 것입니다. 이어 이나-타-히메가 아이를 낳았다고 적고 그 아이의 이름을 8개 시마들(= 섬들)의 시노-미라고 하였다[H-1-(1):④-⑦]고 적었습니다. 시노-미는 일본서기가 적은 이름 시노에 높여 꾸미는 말인 미美를 보탠 것입니다.


H-1-(1) 고사기: 그리하여 ① 그 이나-타-히메[櫛名-田-比賣]는 ② 쿠(사-)미토-니[久美度-邇]가 ③ 일어나도록 하고 ④ 카미 같은 사람을 낳았던 바, ⑤ (카미같은 사람의) 이름은 ⑥ 일러 ● (말하기를) ⑦ 8(개)[八] 시마들[嶋]의 시노-미[士奴-美-神](= 사노)라고 하였다. 故①其櫛名田比賣②以久美度邇③起④而所生神⑤名⑥謂●⑦八嶋士奴美神


이어 고사기는 스사노-오가 또한 오오-야마츠미의 딸인 오오치-히메를 아내로 맞으니 오오치-히메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의 이름을 오오토, 다음을 우카-타마라고 하였다[H-1-(2):①-⑦]고 적었습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오오-야마츠미는 이자나-기가 카구츠-치를 죽이고 알게 되었던 스사노-오보다 같은 세대의 우두머리인데, 여기 보이는 오오-야마츠미는 스사노-오보다 앞선 세대이니, 둘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H-1-(2) 고사기: 또한 (스사노-오가) ① 오오-야마츠미[大-山津見-神]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② (오오-야마츠미의 딸의) 이름은 ● (말하기를) ③ 카미神 오오치-히메[大市-比賣]라고 하였고 ● (오오치-히메가) ④ 아이를 낳아 ● (말하기를) ⑤ 오오토[大年-神]라고 하였고 ⑥ 다음을(= 다음 아이를) ● (말하기를) ⑦ 우카-미타마[宇迦之-御魂-神](= 우카-타마)라고 하였다. ●又①娶大山津見神之女●②名●③神大市比賣●④生子●⑤大年神⑥次●⑦宇迦之御魂神


이런 혼란은 오오-야마츠미라는 단어가 한 사람이 쓰는 이름이 아니라 대를 이어 여러 사람들이 쓰는 호였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자나-기가 네-쿠니에 이르렀을 때에 그를 마주하지 않으려던 우두머리를 대신하여 아직 아이였던 다음 우두머리가 그 호를 쓰며 이자나-기를 마주하였 것이기에, 뒤에 스사노-오가 아내로 맞은 여자 오오치-히메의 아버지는, 이나자-기가 만났던 오오-야마츠미가 아니라 그보다 1세대 앞선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렇기에 이자나-기가 만났던 오오-야마츠미는 시노보다 1세대 앞선 세대에 해당합니다. 때문에 고사기는 이어, 시노가 이 오오-야마츠미의 딸 키-하나-치루-히메를 아내로 맞았고 후와-무치 곧 후와라는 곳의 무치(= 우두머리)인 쿠스를 낳았다[H-1-(3):①-⑥]고 적었으니, 스사노-오 서 이자나-기와 맞섰던 오오-야마츠미의 딸과 혼인하여 손잡았으며 그 관계 다음 세대서도 이어 것입니다.


H-1-(3) 고사기: ① (우카-타마의) 형인 8(개) 시마들의 사노-미(= 사노)가 ② 오오-야마츠미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③ (오오-야마츠미의 딸의) 이름은 ● (말하기를) ④ 키-하나-치루-히메[木-花-知流-比賣]라고 하였고 ● (키-하나-치루-히메가) ⑤ 아이를 낳아 ● (말하기를) ⑥ 후와-무치[布波能-母遲]인 쿠-스[久奴-須奴-神]라고 하였다. ①兄八嶋士奴美神②娶大山津見神之女③名●木花知流比賣●⑤生子●⑥布波能母遲久奴須奴神




시노 뒤에 그 형제 곧 스사노-오의 다른 아들인 오오-아나-무치 따랐으며 그리하여 한 일이 어린 호-니니키를 앞세우고 바다를 건너 온 아마의 카미 같은 사람들을 사루-타-히코라는 이름으로 만나 다른 곳으로 보내었던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앞서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일본서기는, 렇게 이르렀던 곳에서, 호-니니키 만났던 여자가 자신을, 아마의 카미 같은 사람이 오오-야마츠미를 짝으로 맞이하여 낳은 아이라고 하였다[B-10:⑪-⑫]고 적었니다. 곧 시노와 같은 세대의 오오-야마츠미는 아마 사람들 간 시기보다 서 또는 뒤에는, 보다 앞서 낳았던 아이와 함께 그곳에 옮겨와 머물고 있었습니다.


B-10 일본서기: ① (이) 때 ② 그 쿠니國에 ③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④ (여자를)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⑤ 카-아시-츠-히메[鹿-葦-津-姬]라고 하였다. ⑥ 황손이 ⑦ 이 아름다운 여자에게 물어 ● 말하기를 "⑧ 너는 ⑨ 누구의 딸인가?"라고 하였다. ● (여자가) ⑩ 마주하여 ● 말하기를 "⑪ 나[妾]는 ⑫ 아마-카미[天-神]가 오오-야마츠미[大-山祇神]를 짝으로 삼아[娶] 낳은 바인 아이다."라고 하였다. ①時②彼國③有美人④名●曰⑤鹿葦津姬⑥皇孫⑦問此美人●曰⑧汝⑨誰之女子耶●⑩對●曰⑪妾⑫是天神娶大山祇神所生兒也


이러한 구절들은 시노가 손잡았던 무리가 자리잡고 있던 자리에는, MC+20[+30)를 주활동시기로 하는 호-니니키가 자라나던 MC-5[+15)에, 다른 무리가 들어와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상황을 알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오-아나-무치의 주활동시기의들을 살피는데 있어 중요한 단서이기에 그 중요성을 미리 이야기해둡니다.


위의 일본서기 구절들에 대한 주석은 이 때 만난 카-아시-츠-히메를 아타-츠-히메라고 하고 또한 키-하나-사쿠야-히메라고 한다[E-2:①-④]고 적었습니다. 이 가운데 키-하나-사쿠야-히메라는 이름은 1세대 앞선 오오-야마츠미의 딸을 이르는 키-하나-치루-히메와 같은 구조를 가지는데, 그 아버지 오오-야마츠미들이 시간이 지나며 서로 다른 장소에 자리잡은 같은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E-2 일본서기 주석: <● 또한 ①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② 카미 같은[神] 아타-츠-히메[吾田-津-姬]라고 하였으며 ● 또한 ③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④ 키-하나-사쿠야-히메[木-花之-開耶-姬]라고 하였다.> (鹿葦津姬)<●亦①名●②神吾田津姬●亦③名●④木花之開耶姬>


그런데, 오오-야마츠미의 딸 키-사쿠야-히메에 대해 하리마-쿠니 풍토기 시사와-코오리편은, 키-사쿠야-히메, 위에서 이야기한 호-니니키가 아니라, 와-오오카미의 아내[I:②]라고 또한 적 있습니다. 은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어째서 여기에 전하 되었던 것일까요?


I 하리마-쿠니 풍토기 시사와-코오리편: (시사와-코오리[宍禾-郡]에는) ① 우루카-사토[雲箇-里]가 있다. ② (이와-)오오카미의 아내 키-하나-사쿠야-히메[木-花-咲耶-姬-命]는 ③ 그 생김새가 아름다웠다. ● 그리하여 말하기를 ④ 우루카宇留加라고 하였다. ①雲箇里②大神之妻木花咲耶姬命③其形美麗●故曰④宇留加


호-니니키가 아내 키-사쿠야-히메가 낳아 데리고 온 아이들을 보고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였던 일에 바로 이어지는 이 흥미로운 사건은, 하지만 호-니니키의 일과 함께 자세히 살피기로 하고, 오오-야마츠미의 딸이 이와-오오카미의 아내라는 이야기가 하리마-쿠니에서 전하 있다는 것만 주목하지요. 곧 오오-야마츠미는 하리마-쿠니에 해당하는 장소, 네-쿠니에서 이즈모-쿠니로 오고가는 목에 래 있었던 것입니다.


에서 옮겨와 츠쿠시-쿠니에 자리잡아서는 호-니니키와 혼인하여 손잡은 오오-야마츠미의 이야기는 말했듯이 잠시 미뤄놓고서, 이제 다시 고사기가 적고 있는 사노와 그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하여 5세손 - 시간 간격의 오류 - 에 대해 이해해보지요.




앞서 살핀 구절들에 이어 고사기는 사노의 아이 쿠-스가 오-카미의 딸 히-카와-히메를 아내로 맞았고 야레-하나 낳았다[H-1-(4):①-⑥]고 적고. 야레-하나가 아마-츠-토에치-네 아내로 맞았고 오미-츠를 낳았다[H-1-(5):①-④]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어 오미-츠가 후-츠의 딸 후-테-미미를 아내로 맞았고 아마-후유키를 낳았다[H-1-(6):①-⑥]고 적었습니다.


H-1-(4) 고사기: ① 이 카미 같은 사람이(= 쿠-스가) ② 오카-미[淤迦-美神]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③ (오카-미의 딸의) 이름은 ● (말하기를) ④ 히-카와-히메[日-河-比賣]라고 하였고 ● (히-카와-히메가) ⑤ 아들을 낳아 ● (말하기를) ⑥ 후카부치-미즈[深淵之-水]인 야레-하나[夜禮-花-神]라고 하였다. ①此神②娶淤迦美神之女③名●日河比賣●⑤生子●⑥深淵之水夜禮花神
H-1-(5) 고사기: ① 이 카미 같은 사람이(= 야레-하나가) ② 아마-츠-토에치-네[天之-都-度閇知-泥-神]를 아내로 맞았는데 ● (아마-츠-토레치-네가) ③ 아이를 낳아 ● (말하기를) ④ 오미-츠[淤美-豆奴-神]라고 하였다. ①此神②娶天之都度閇知泥神●③生子●④淤美豆奴神
H-1-(6) 고사기: ① 이 카미 같은 사람이(= 오미-츠)가 ② 후-츠[布怒-豆怒-神]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③ (후-츠의 딸의) 이름은 ● (말하기를) ④ 후-테-미미[布-帝-耳-神]라고 하였고 ● (후-테-미미가) ⑤ 아들을 낳아 ● (말하기를) ⑥ 아마-후유키[天之-冬衣-神](= 아마-후키)라고 하였다. ①此神②娶布怒豆怒神之女③名●④布帝耳神●⑤生子●⑥天之冬衣神


앞서 나온 사람들의 세대 관계를 그 주활동시기와 함께 알기 쉽게 정리하면 아래과 같습니다. 이런 관계들에 따르면 아마-후유키가 스사노-오의 5세손이니 그 소리를 짧게 적고 높이는 말인 네를 보탠 것이 바로 앞서 일본서기가 스사노-오의 5세손이라고 적은 아마-후키-네입니다. 그렇기에 아마-후키-네가 스사노-오의 5세손이라는 관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문제는 스사노-오가 그가 아마로 가도록 하였다는 구절에 있습니다.


MC-40[+30) 스사노-오

MC-10[+30) 시노

MC+20[+30) 쿠-스

MC+50[+30) 야레-하나

MC+80[+30) 오미-츠

MC+110[+30) 아마-후유키


그리고 그 문제의 답은 곧바로, 이어지는 고사기의 구절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살핀 구절들에 이어 고사기는 아마-후키가 사시-쿠니의 딸인 와카-히메를 아내로 맞았고 오오-쿠니누시를 낳았다[H-1-(7):①-⑥]고 적는데, 여기 쓰인 오오-쿠니누시라는 단어는 오오大라는 이름의 쿠니國(= 국)의 누시主(=우두머리)를 뜻합니다.


H-1-(7) 고사기: ① 이 카미 같은 사람이(= 아마-후키)가 ② 사시-쿠니[刺-國-大神]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③ (사시-쿠니의 딸의) 이름은 ● (말하기를) ④ 사시-쿠니 와카-히메[若-比賣]라고 하였고 ● (와카-히메가) ⑤ 아들을 낳아 ● (말하기를) ⑥ 오오-쿠니누시[大-國主-神]라고 하였다. ①此神②娶刺國大神之女③名●刺國若比賣●⑤生子●⑥大國主神


오오-쿠니누시에 대해 일본서기 인용한 어떤 기록은 오오-모노누시라고 한다[A-16:③]고 하고, 호를 쿠니-츠쿠리[國-作] - 오오-쿠니를 만들었다 - 오오-아나-무치[A-16:④-⑥]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스사노-오의 다른 아들 곧 시노의 형제였는데, 그 뒤로 후손이 오오-쿠니를 다스리다가 5세대가 지나서야 새로 시노의 후손이 오오-쿠니를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A-16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오오-쿠니누시[大-國主-神]는 ● 또한 ②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③ 오오-모노누시[大-物主-神]라고 하고 ● 또한 ④ 호號를 ● (말하기를) ⑤ 쿠니-츠쿠리[國-作]라고 하는(= 쿠니를 만든) ⑥ 오오-아나-무치[大-己-貴-命]였다. 一書曰①大國主神●亦②名●③大物主神●亦④號●⑤國作⑥大己貴命


그런데 그러한 시노의 후손을 오오-아나-무치를 이르던 오오-쿠니누시라는 단어로 적 데에서 오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곧 이 사람을 오오-아나-무치와 혼동하였고, 때문에 일들을 전하면서 1세대 앞선 사람의 일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말을 보태어 적을 때에 1세대 앞선 사람을 스사노-오가 아니라 아마-후키-네라고 적은 것입니다. 여기에 시노의 계보에 따라 더 자세히 스사노-오의 5세손이라는 것 또한 적었습니다.


MC-40[+30) 스사노-오

MC-10[+30) 시노, 오오-아나-무치(= 쿠니-츠쿠리 오오-쿠니누시)

...

MC+110[+30) 아마-후유키

MC+150[+30) 오오-쿠니누시


그리하여 오오-쿠니누시인 오오-아나-무치보다 1세대 앞선 스사노-오가 칼을 아마에 보냈던 일이, 오오-아나-무치와 같은 세대 시노의 6세대 후손인 또다른 오오-쿠니누시를 기준으로 하여 1세대 앞선 아마-후키-네가 아마에 올라가 칼을 주었던 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오오-야마츠미에 대해 리하였듯이 같은 단어를 같은 자리에 있던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것을 보고서, 깊이 살피지 않고 같은 사람이라 여긴 까닭에 이런 자연스럽지 않은 내용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로잡으면 아마-후키-네는, 시노의 후손인 오오-쿠니누시가 아니라 시노의 형제인 오오-쿠니누시, 바로 오오-아나-무치보다 1세대 앞선 스사노-오를 잘못 말을 보태 적은 것며, 사실 아마에 올라가 칼을 주었던 것은 스사노-오가 시킨, 같은 세대의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살핀 자료, 고사기 다른 부분에 오히려 짙게 남아 있니다.


이러한 데에는,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던 과정과 이어지기에 아직 살피지 않은,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살피기 위해서는 소가蘇我라는 단어가 나타나게 되었던 시기의 일들까지 먼저 루어야 하기에, 이 이야기는 아주 한참 뒤에야 하게 될 것입니다.




약간의 의심을 남겼던 세대의 간격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였으니, 이제 스사노-오가 네-쿠니로 떠나기에 앞서 한 일들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그런 일들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위에서 이미 간단히 이야기하였으니, 다음 글에서 나머지를 이야기하고 이번 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장 3편 왜倭 (0-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