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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편 왜倭 (0-1) #12

이즈모出雲에 머무르는 사이 (4/4)

by 잡동산이

* 앞 글에서 자료 번호를 여럿 조정하였습니다. 내용에는 바뀐 것이 없고, 설명과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일 뿐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스사노-오는 바로 네-쿠니로 떠나는 대신에 스가에서 이나-타-히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아이를 낳자 스가에 이나-타-미야를 두고 아이를 키우도록 하였으니 아이가 바로 뒤에 오오-쿠니의 누시主 곧 우두머리가 되는 오오-아나-무치입니다. 스사노-오는 그리하면서 에 나아가며 만날 후나타들이 따르지 않을 경우 그들에게 맞설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스사노-오를 따르는 무리들의 힘을 키우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힘을 가진 다른 무리들과 손잡아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뒤에 해당하는 일이 앞서 이야기한 바, 일찍이 이자나-기를 덮치고서 뒤쫓았던 네-쿠니의 무리들 가운데 큰 산줄기를 끼고 있던 오오-야마츠미와 손잡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충돌하여 서로 믿지 못하던 두 무리들이 서로 손잡고 믿기 위해서 했던 간단한 방법은 혼인하여 피붙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스사노-오는 상대 우두머리 오오-야마츠미의 딸 오오-츠-히메와 혼인하였고 그리하여 낳은 아이가 시노였습니다. 그리고 시노가 자신의 사촌에 해당하는 다음 세대 오오-야마츠미의 딸 키-하나-치루-히메와 이어 혼인함으로써 그러한 관계는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 오오-야마츠미의 또다른 딸은 음 그이 있는 곳 가까이 있던 이와-오오카미 혼인하였습니다. 이 일이 전던 시사와-코오리는 하리마-쿠니 가운데에서도 서북쪽에 자리하, 하리마-쿠니는 서북쪽으로는 미마사카-쿠니와 이나바-쿠니를 통해서 이즈모-쿠니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었고 반대로 동남쪽으로는 세츠-쿠니를 통해서 네-쿠니 - 뒤에 오오-야마토-쿠니가 되는 곳 - 에 나아갈 수 있는 곳이었니다.




하리마-쿠니의 무리와 손잡아 네-쿠니로 나아갈 힘과 길을 얻내며 스사노-오는 신을 따르는 이즈모-쿠니 무리들의 힘을 또한 키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앞서 일본서기 구절들이, 스사노-오가 스사靑山 - 스가-야마 - 의 사람들을 맡아서는 지나치게 씩씩하게, 사납게 하여 산山은 마르고 사람들은 죽었[3장 1편 C-15]던 실패, 그가 스사靑山 사람들을 다스리며 겪었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3장 1편 C-15 일본서기: 다음으로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① 스사노-오[素戔-鳴-尊]를 낳았다. ② 이 카미神(= 스사노-오)에게는 ③ 씩씩함, 사나움이 있었는데 ● (그의 씩씩함, 사나움은) ④ (사람들이) 즐겨 참으면서 또한 언제나 울고 눈물 흘리면서도 ⑤ 움직이도록[行] 하였다. ● 그리하여 (스사노-오가) ⑥ 쿠니들[國] 안의 사람들에게 (그런 움직임을) 하도록 하니[令] ● (사람들이) 많이 ⑦ 일찍 죽게 되었고, ● 다시 ⑧ 스사靑山에게(= 푸른 산의 사람들에게) (그런 움직임을) 하도록 하니[使] ● (푸른 산이) ⑨ 변하여 말라버렸다. 次①生素戔嗚尊②此神③有勇悍●④以安忍且常以哭泣⑤爲行●故⑥令國內人民●多⑦以夭折●復⑧使靑山●⑨變枯


그리하여 스사노-오가 보인 움직임, 한 일들에 대해 일본서기가 인용한 어떤 기록은 그가, 앞서 있었던 카라 - 아마/한[天]라고 일컬은 마-한이 아닌 한韓, 곧 변-한 - 에 금, 은이 있다고 하고서 배가 없다면 그런 이로움이 있는 것이 좋은 일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A-17-(1):①-⑧]고 적었습니다. 변-한에 오고가며 이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후네舟 곧 배가 필요하다고 한 것입니다.


A-17-(1)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스사노-오가 ● 말하기를 "② 카라韓 땅[鄕]의 시마들[嶋], ③ 여기에는 ④ 카네金, 시로카네銀가(=금, 은이) 있었지만, ● 만약 ⑤ 내 아이[兒]에게 시켜 ● (아이가) ⑥ (아이가) 다스리는 곳의 쿠니國에 ⑦ 보물[寶]을 띄울[浮](= 바다 건너로 보낼) 것[者]이 있도록 하지 않는면, ● (가라 땅의 카네, 시로카네가 있는 것은) ⑧ 좋은 일[佳]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一書曰)①素戔嗚尊●曰①韓鄕之嶋③是有金銀●若⑤使吾兒●⑥所御之國⑦不有浮寶者●⑧未是佳也


그것을 내세우며, 스사노-오는 반대로 나무를 심고자 - 곧 산을 푸르도록 하여 앞서 실패하였던 일 곧 산 - 산의 나무들 - 을 말라죽도록 하였던 일을 바로잡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어떤 기록은 이어 스사노-오가 머리, 털과 같은 사람들 - 몸처럼 가까운 사람들- 을 뽑아서 흩어놓으니 그 사람들이 삼나무, 편백나무, 비자나무, 녹나무를 이루었다[A-17-(2):①-⑫] - 씨를 뿌려 키웠다 - 고 적었습니다.


A-17-(2)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스사노-오가) 이어 ① 머리(= 머리 같은 사람들)을 뽑아 ② 그것들[之]을 뿌리니(= 흩어놓으니) ● 곧 (그들이) ③ 스기杉(= 삼나무)를 이루었으며(= 키웠으며), ● 또한 ④ 가슴의 털(= 사람들)을 뽑으니 ⑤ 이것들이(= 그들이) ⑥ 히桧(= 편백나무)를 이루었으며(= 키웠으며), ⑦ 엉덩이의 털(= 사람들), ⑧ 이것들이 ⑨ 마키柀(= 비자나무)를 이루었으며(= 키웠으며), ⑩ 눈썹의 털(= 사람들), ⑪ 이것들이 ⑫ 쿠스橡樟(= 녹나무)를 이루었다(= 키웠으며). (一書曰)④乃①拔鬚髯散之即成杉●又④拔散胸毛⑤是⑥成桧⑦尻毛⑧是⑨成柀⑩眉毛⑪是⑩成橡樟


그리고 이어 어떤 기록은, 스사노-오가 삼나무, 녹나무는 앞서 말한 보물들을 얻어 가져오도록 바다 건너로 보낼 배를 만들 수 있다고 하고, 편백나무는 궁을 만드는 자재로, 비자나무는 다른 사람들이 머무를 곳에 놓아둘 도구들로 쓸 수 있다고 하였다[A-17-(3):①-⑩]고 적었습니다. 앞서 이로움을 얻는데에 필요한 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어떤 나무인지를 먼저 이야기하고, 이어 다른 나무들이 가진 쓸모들 또한 이야기한 것입니다.


A-17-(3)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끝내고, ② (스사노-오가) 그(= 나무들의) 마땅한 쓰임을 바로잡아 ● 이어 ③ 일컬어 ● 말하기를 "④ 스기(= 삼나무) 그리고 쿠스(= 녹나무), ⑤ 이것들 2(가지) 키들[樹]은 ⑥ 보물을 띄우도록(= 바다 건너로 보내도록) 할 수 있다. ⑦ 히(= 편백나무)는 ⑧ 미즈瑞(= 상서로운) 미야宮(= 궁)의 재료로 삼을 수 있다. ⑨ 마키(= 비자나무)는 ⑩ 나타나 보일[顯見] 우거질 목숨들[蒼生](= 많아질 사람들)의 깊은 나루, 버린 집들에 장차 눕힐[臥](= 쓸) 도구들[具]이 되도록 할 수 있다. ● 무릇 ⑪ 약간이라도[須] 씹을 만한[噉] 80(가지) 키들[木]의 씨들[種]은 ⑫ 모두 ⑬ 뿌려 나도록(= 자라도록)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一書曰)①已②而定其當用●乃③稱之●曰④杉及橡樟⑤此兩樹者⑥可以爲浮寶⑦桧⑧可以爲瑞宮之材⑨柀⑩可以爲顯見蒼生奥津棄戶將臥之具●夫⑪須噉八十木種⑫皆⑬能播生


이야기 가운데 스사노-오는 나무들 가운데 씹을 만한 씨를 가진 것들은 씨들을 뿌려 자라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A-17-(3):①-⑬]고 적었습니다. 이은 곧 먹을 수 있는 씨들은 다시 뿌리고 길러 얻어서는 사람들을 먹이도록 려한 것이니, 스사노-오는 그리하여 사람들을 먹일 것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바다 건너 가져올 있는 것들을 모두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앞서 사람들을 다스리는 데에 실패하였을 때와 달리, 푸른 산을 만드는 것을 통해 그것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루어낸 그러한 일들은 스사노-오 곧 스사-노[靑山-野]의 오王, 푸른 산[靑山]의 왕王라는 호號 통해 남아 전해습니다. 의 아버지, 어머니였던 이자나-기, 이자나-미 그리고 의 형, 누이였던 히루코, 히루메, 츠키럼 이름은 전하지 않습니다.




스사노-오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앞서 거느리던 사람들을 모두 아마의 카미 같은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대신 적은 수나마 데려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그들에게 뿌리도록 할 수 있는 나무들의 씨들을 가기 때문입니다. 실 이러한 씨들을 가지고 있었던 , 스사노-오가 이즈모에서 이나-타-히메를 새로 아내로 맞기에 앞서 마에서 낳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열도로 데려왔던 또다른 아들 이스-타케루였습니다.


그를 이르는 이스-타케루라는 어는, 일본서기가 인용한 어떤 기록이 스사노-오가 라에 이르렀던 일을 적은 구절들[A-1-(2)] 바로 앞의 구절들에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여러 카미 같은 사람들이 스사노-오를 쫓아내자 스사노-오가 그의 - 그가 아마에 머무는 동안 낳았던 - 아이 이스-타케루를 데리고 아마에샤 내려갔다[A-1-(1):①-④]고 적은 어떤 기록의 구절들이 그것입니다.


A-1-(1)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이(= 여러 카미 같은 사람들이 스사노-오를 쫓아냈을) 때 ② 스사노-오가 ③ 그(= 스사노-오의) 아이 이스-타케루[五十-猛-神]를 데리고 ④ (아마에서) 내려갔다. (一書曰)①是時②素戔嗚尊③帥其子五十猛神④降


그리고서 어떤 기록의 앞서 구절들[A-1-(2)]과 스사노-오가 배를 만들어 동쪽으로 가서 바다를 건넜던 일을 적은 구절들[A-1-(3)], 스사노-오가 이즈모에서 한 일들을 적은 구절들[A-1-(4)]에 이어지는 구절들이 다시 이스-타케루의 일을 적었습니다. 이스-타케루가 아마에서 내려올 때에 나무의 씨들을 많이 지녔는데[A-1-(5):①-④], 아마에서 내려가서도 그리하여 씨들이 카라韓의 땅 - 아마 곧 마-한 바깥의 한 곧 변-한의 땅 - 에 심기지 않았고 이소-타케루가 그 씨들을 지니게 되었다[A-1-(5):⑤-⑧]고 적었습니다.


A-1-(5)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처음 ② 이스-타케루[五十-猛-神]는 ③ (스사노-오와 더불어) 아마天에서 내려올 때 ● 많이 ④ 나무의 씨들[種]을 지녔는데[將]. ⑤ (아마에서) 내려가서도 ● 그리하니(= 지녀) (나무의 씨들은) ⑥ 카라韓의 땅에 심기지 않고 ⑦ 모두 ⑧ (이스-타케루가) 지니고 따르게 되었다. (一書曰)①初②五十猛神③天降之時●多④將樹種⑤而下●然⑥不殖韓地⑦盡⑧以持歸


앞서 스사노-오에 대해 말한 바 있듯이, 그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신라를 따른 변-한을 좋아하지 않아 변-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빨리 열도로 떠나려 하였으며, 이스-타케루 또한 이것을 보고 같이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씨들이 고스란히 열도로 올 수 있었고 스사노-오는 이러한 씨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뿌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 뒤의 일은 2개의 어떤 기록들 - 앞서의 어떤 기록 그리고 보다 앞서 살핀 어떤 기록 - 구절들이 서로 엇갈려 적고 있습니다. 먼저 어떤 기록은 이스-타케루가 누이 오오야-츠-히메, 오하야-츠-히메가 모두 씨를 퍼트릴 수 있고 그리하여 받들어 - 스사노-오가 시켜 - 키-쿠니로 건너갔다[A-17-(4):①-⑫]고 적었습니다.


A-17-(4)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이) 때에 ② 스사노-오의 아이가 ③ 호號를 ● 말하기를 ④ 이스-타케루[五十-猛-命]라고 하였고 ⑤ (이스-타케루의) 누이가 ● (호를 말하기를) ⑥ 오오야-츠-히메[大屋-津-姬-命]라고 하였고 ⑦ 다음을(= 이스-타케루의 다음 누이가) ● (호를 말하기를) ⑧ 오하야-츠-히메[採-津-姬-命]라고 하였다. ● 무릇 ⑨ 이러한 3명 카미 같은 사람들이 ● 또한 ⑩ 키들[木]의 씨앗들[種]을 퍼트릴 수 있었고 ● 곧 ⑪ 받들고서 ⑫ 키-쿠니[紀伊-國]로 건너갔다. (一書曰)①于時②素戔鳴尊之子③號●曰④五十猛命⑤妹●⑥大屋津姬命⑦次●⑧採津姬命●凡⑨此三神●亦⑩能分布木種●即⑪奉⑫渡於紀伊國也


그리하고서 이어 스사노-오가 쿠마-나리-타케에 이르렀다[A-17-(5):①-③]고 적었으니, 여기의 키-쿠니는 쿠마노熊野가 있던 곳로 네-쿠니의 서쪽과 서남쪽 물가에 자리잡은 쿠니입니다. 이 다른 어떤 기록은 이스-타케루가 퍼트린 씨들이 츠쿠시에서부터 열도 모든 곳에 퍼져 스가靑山를 - 푸른 산들을 - 이루었다[A-1-(6):①-④]고 적고, 이 일을 이루어낸 이스-타케루를 키-쿠니에서는 오오카미로 받들었다[A-1-(6):⑤-⑧]고 보다 뒤의 일을 적었습니다.


A-17-(5)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그리하고서 ① 뒤에 ② 스사노-오가 ③ 쿠마-나-타케[熊-成-峯]에 머물렀으며 ● 이윽고 ④ 네-쿠니[根-國]에 들어갔다. (一書曰)然①後②素戔嗚尊③居熊成峯●而遂④入於根國者矣
A-1-(6)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 이윽고 (나무의 씨들이) ① 처음으로, ② 츠쿠시筑紫로부터 무릇 오오大(= 큰) 8(개)[八] 물가[洲]의 쿠니들[國] 안에, ③ 뿌려져 심기지 않음을 못하게 되었고(= 뿌려져 심기지 않은 곳이 없어졌고) ● (그런 쿠니들이) ④ 스사靑山(= 스가-야마)를 이루었다. ● (그리하여) ⑤ 이스-타케루[五十-猛-命]를 일컬어 (말하기를) 공功이 있는 카미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던 바, ● 곧 ⑥ 키-쿠니[紀伊-國]가 ⑦ 오오카미大神로 두었던 바가(= 사람이) ⑧ 이 사람[是]이었다. (一書曰)●遂①始②自筑紫凡大八洲國之內③莫不播殖●④而成靑山焉●⑤所以稱五十猛命爲有功之神●卽⑥紀伊國⑦所坐大神⑧是也


그러한 마지막 일에 앞서 어떤 기록이 적은 스사靑山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이스-타케루가 나무의 씨들을 퍼트리던 즈음 그 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노-오의 아버지는 호號로, 곧 스사노-오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기록은 이어사노-오가 이윽고 네-쿠니로 들어갔다[A-17-(5):④]고 적었, 앞서 살핀 일본서기 또한 그가 네-쿠니로 떠났다[B-7-(11):①-③]고 적어 스사노-오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였습니다.


B-7-(11) 일본서기: ① 끝내고, ② 스사노-오[素戔-嗚-尊]가 ● 이윽고 ③ 네-쿠니[根-國]로 떠났다. 已而素戔嗚尊遂就於根國




일본서기는 스사노-오의 이즈모에서의 일들을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이어 그 아들 오오-아나-무치의 일들을 적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고사기는 네-쿠니로 건너간 스사노-오가 머물던 곳에 대해, 오오-아나-무치의 일들을 적는 가운데 잠시 적고 있는데, 관련된 장소들은 보다 뒤의 일을 적은 일본서기의 구절들 가운데에 다시 모습을 보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쿠니에 있었던 이런 장소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스사노-오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무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까지 살핀 일들에 따른 주변의 반응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으로 3장 3편을 끝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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