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모出雲에 머무르는 사이 (4/4)
* 앞 글에서 자료 번호를 여럿 조정하였습니다. 내용에는 바뀐 것이 없고, 설명과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일 뿐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스사노-오는 바로 네-쿠니로 떠나는 대신에 스가에서 이나-타-히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아이를 낳자 스가에 이나-타-미야를 두고 아이를 키우도록 하였으니 이 아이가 바로 뒤에 오오-쿠니의 누시主 곧 우두머리가 되는 오오-아나-무치입니다. 스사노-오는 그리하면서 뒤에 나아가며 만날 후나타들이 따르지 않을 경우 그들에게 맞설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스사노-오를 따르는 무리들의 힘을 키우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힘을 가진 다른 무리들과 손잡아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뒤에 해당하는 일이 앞서 이야기한 바, 일찍이 이자나-기를 덮치고서 뒤쫓았던 네-쿠니의 무리들 가운데 큰 산줄기를 끼고 있던 오오-야마츠미와 손잡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충돌하여 서로 믿지 못하던 두 무리들이 서로 손잡고 믿기 위해서 했던 간단한 방법은 혼인하여 피붙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스사노-오는 상대 우두머리 오오-야마츠미의 딸 오오-츠-히메와 혼인하였고 그리하여 낳은 아이가 시노였습니다. 그리고 시노가 자신의 사촌에 해당하는 다음 세대 오오-야마츠미의 딸 키-하나-치루-히메와 이어 혼인함으로써 그러한 관계는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 오오-야마츠미의 또다른 딸은 처음 그들이 있는 곳 가까이 있던 이와-오오카미와 혼인하였습니다. 이 일이 전하던 시사와-코오리는 하리마-쿠니 가운데에서도 서북쪽에 자리하니, 하리마-쿠니는 서북쪽으로는 미마사카-쿠니와 이나바-쿠니를 통해서 이즈모-쿠니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었고 반대로 동남쪽으로는 세츠-쿠니를 통해서 네-쿠니 - 뒤에 오오-야마토-쿠니가 되는 곳 - 에 나아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리마-쿠니의 무리와 손잡아 네-쿠니로 나아갈 힘과 길을 얻어내며 스사노-오는 자신을 따르는 이즈모-쿠니 무리들의 힘을 또한 키워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앞서 일본서기 구절들이, 스사노-오가 스사靑山 - 스가-야마 - 의 사람들을 맡아서는 지나치게 씩씩하게, 사납게 하여 산山은 마르고 사람들은 죽었다[3장 1편 C-15]고 적었던 실패, 그가 스사靑山 사람들을 다스리며 겪었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3장 1편 C-15 일본서기: 다음으로 (이자나-기, 이자나-미가) ① 스사노-오[素戔-鳴-尊]를 낳았다. ② 이 카미神(= 스사노-오)에게는 ③ 씩씩함, 사나움이 있었는데 ● (그의 씩씩함, 사나움은) ④ (사람들이) 즐겨 참으면서 또한 언제나 울고 눈물 흘리면서도 ⑤ 움직이도록[行] 하였다. ● 그리하여 (스사노-오가) ⑥ 쿠니들[國] 안의 사람들에게 (그런 움직임을) 하도록 하니[令] ● (사람들이) 많이 ⑦ 일찍 죽게 되었고, ● 다시 ⑧ 스사靑山에게(= 푸른 산의 사람들에게) (그런 움직임을) 하도록 하니[使] ● (푸른 산이) ⑨ 변하여 말라버렸다. 次①生素戔嗚尊②此神③有勇悍●④以安忍且常以哭泣⑤爲行●故⑥令國內人民●多⑦以夭折●復⑧使靑山●⑨變枯
그리하여 스사노-오가 보인 움직임, 한 일들에 대해 일본서기가 인용한 어떤 기록은 그가, 앞서 있었던 카라 - 아마/한[天]라고 일컬은 마-한이 아닌 한韓, 곧 변-한 - 에 금, 은이 있다고 하고서 배가 없다면 그런 이로움이 있는 것이 좋은 일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A-17-(1):①-⑧]고 적었습니다. 변-한에 오고가며 이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후네舟 곧 배가 필요하다고 한 것입니다.
A-17-(1)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스사노-오가 ● 말하기를 "② 카라韓 땅[鄕]의 시마들[嶋], ③ 여기에는 ④ 카네金, 시로카네銀가(=금, 은이) 있었지만, ● 만약 ⑤ 내 아이[兒]에게 시켜 ● (아이가) ⑥ (아이가) 다스리는 곳의 쿠니國에 ⑦ 보물[寶]을 띄울[浮](= 바다 건너로 보낼) 것[者]이 있도록 하지 않는면, ● (가라 땅의 카네, 시로카네가 있는 것은) ⑧ 좋은 일[佳]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一書曰)①素戔嗚尊●曰①韓鄕之嶋③是有金銀●若⑤使吾兒●⑥所御之國⑦不有浮寶者●⑧未是佳也
그것을 내세우며, 스사노-오는 반대로 나무를 심고자 - 곧 산을 푸르도록 하여 앞서 실패하였던 일 곧 산 - 산의 나무들 - 을 말라죽도록 하였던 일을 바로잡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어떤 기록은 이어 스사노-오가 머리, 털과 같은 사람들 - 몸처럼 가까운 사람들- 을 뽑아서 흩어놓으니 그 사람들이 삼나무, 편백나무, 비자나무, 녹나무를 이루었다[A-17-(2):①-⑫] - 씨를 뿌려 키웠다 - 고 적었습니다.
A-17-(2)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스사노-오가) 이어 ① 머리(= 머리 같은 사람들)을 뽑아 ② 그것들[之]을 뿌리니(= 흩어놓으니) ● 곧 (그들이) ③ 스기杉(= 삼나무)를 이루었으며(= 키웠으며), ● 또한 ④ 가슴의 털(= 사람들)을 뽑으니 ⑤ 이것들이(= 그들이) ⑥ 히桧(= 편백나무)를 이루었으며(= 키웠으며), ⑦ 엉덩이의 털(= 사람들), ⑧ 이것들이 ⑨ 마키柀(= 비자나무)를 이루었으며(= 키웠으며), ⑩ 눈썹의 털(= 사람들), ⑪ 이것들이 ⑫ 쿠스橡樟(= 녹나무)를 이루었다(= 키웠으며). (一書曰)④乃①拔鬚髯散之即成杉●又④拔散胸毛⑤是⑥成桧⑦尻毛⑧是⑨成柀⑩眉毛⑪是⑩成橡樟
그리고 이어 어떤 기록은, 스사노-오가 삼나무, 녹나무는 앞서 말한 보물들을 얻어 가져오도록 바다 건너로 보낼 배를 만들 수 있다고 하고, 편백나무는 궁을 만드는 자재로, 비자나무는 다른 사람들이 머무를 곳에 놓아둘 도구들로 쓸 수 있다고 하였다[A-17-(3):①-⑩]고 적었습니다. 앞서 이로움을 얻는데에 필요한 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어떤 나무인지를 먼저 이야기하고, 이어 다른 나무들이 가진 쓸모들 또한 이야기한 것입니다.
A-17-(3)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끝내고, ② (스사노-오가) 그(= 나무들의) 마땅한 쓰임을 바로잡아 ● 이어 ③ 일컬어 ● 말하기를 "④ 스기(= 삼나무) 그리고 쿠스(= 녹나무), ⑤ 이것들 2(가지) 키들[樹]은 ⑥ 보물을 띄우도록(= 바다 건너로 보내도록) 할 수 있다. ⑦ 히(= 편백나무)는 ⑧ 미즈瑞(= 상서로운) 미야宮(= 궁)의 재료로 삼을 수 있다. ⑨ 마키(= 비자나무)는 ⑩ 나타나 보일[顯見] 우거질 목숨들[蒼生](= 많아질 사람들)의 깊은 나루, 버린 집들에 장차 눕힐[臥](= 쓸) 도구들[具]이 되도록 할 수 있다. ● 무릇 ⑪ 약간이라도[須] 씹을 만한[噉] 80(가지) 키들[木]의 씨들[種]은 ⑫ 모두 ⑬ 뿌려 나도록(= 자라도록)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一書曰)①已②而定其當用●乃③稱之●曰④杉及橡樟⑤此兩樹者⑥可以爲浮寶⑦桧⑧可以爲瑞宮之材⑨柀⑩可以爲顯見蒼生奥津棄戶將臥之具●夫⑪須噉八十木種⑫皆⑬能播生
그런 이야기 가운데 스사노-오는 나무들 가운데 씹을 만한 씨를 가진 것들은 씨들을 뿌려 자라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A-17-(3):①-⑬]고 적었습니다. 이것은 곧 먹을 수 있는 씨들은 다시 뿌리고 길러 얻어서는 사람들을 먹이도록 하려한 것이니, 스사노-오는 그리하여 사람들을 먹일 것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바다 건너 가져올 있는 것들을 모두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앞서 사람들을 다스리는 데에 실패하였을 때와 달리, 푸른 산을 만드는 것을 통해 그것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이루어낸 그러한 일들은 스사노-오 곧 스사-노[靑山-野]의 오王, 푸른 산[靑山]의 왕王라는 호號를 통해 남아 전해졌습니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였던 이자나-기, 이자나-미 그리고 그의 형, 누이였던 히루코, 히루메, 츠키처럼 이름은 전하지 않습니다.
스사노-오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앞서 거느리던 사람들을 모두 아마의 카미 같은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대신 적은 수나마 데려올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그들에게 뿌리도록 할 수 있는 나무들의 씨들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씨들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스사노-오가 이즈모에서 이나-타-히메를 새로 아내로 맞기에 앞서 아마에서 낳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열도로 데려왔던 또다른 아들 이스-타케루였습니다.
그를 이르는 이스-타케루라는 단어는, 일본서기가 인용한 어떤 기록이 스사노-오가 신라에 이르렀던 일을 적은 구절들[A-1-(2)] 바로 앞의 구절들에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여러 카미 같은 사람들이 스사노-오를 쫓아내자 스사노-오가 그의 - 그가 아마에 머무는 동안 낳았던 - 아이 이스-타케루를 데리고 아마에샤 내려갔다[A-1-(1):①-④]고 적은 어떤 기록의 구절들이 그것입니다.
A-1-(1)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이(= 여러 카미 같은 사람들이 스사노-오를 쫓아냈을) 때 ② 스사노-오가 ③ 그(= 스사노-오의) 아이 이스-타케루[五十-猛-神]를 데리고 ④ (아마에서) 내려갔다. (一書曰)①是時②素戔嗚尊③帥其子五十猛神④降
그리고서 어떤 기록의 앞서 구절들[A-1-(2)]과 스사노-오가 배를 만들어 동쪽으로 가서 바다를 건넜던 일을 적은 구절들[A-1-(3)], 스사노-오가 이즈모에서 한 일들을 적은 구절들[A-1-(4)]에 이어지는 구절들이 다시 이스-타케루의 일을 적었습니다. 이스-타케루가 아마에서 내려올 때에 나무의 씨들을 많이 지녔는데[A-1-(5):①-④], 아마에서 내려가서도 그리하여 씨들이 카라韓의 땅 - 아마 곧 마-한 바깥의 한 곧 변-한의 땅 - 에 심기지 않았고 이소-타케루가 그 씨들을 지니게 되었다[A-1-(5):⑤-⑧]고 적었습니다.
A-1-(5)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처음 ② 이스-타케루[五十-猛-神]는 ③ (스사노-오와 더불어) 아마天에서 내려올 때 ● 많이 ④ 나무의 씨들[種]을 지녔는데[將]. ⑤ (아마에서) 내려가서도 ● 그리하니(= 지녀) (나무의 씨들은) ⑥ 카라韓의 땅에 심기지 않고 ⑦ 모두 ⑧ (이스-타케루가) 지니고 따르게 되었다. (一書曰)①初②五十猛神③天降之時●多④將樹種⑤而下●然⑥不殖韓地⑦盡⑧以持歸
앞서 스사노-오에 대해 말한 바 있듯이, 그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신라를 따른 변-한을 좋아하지 않아 변-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빨리 열도로 떠나려 하였으며, 이스-타케루 또한 이것을 보고 같이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씨들이 고스란히 열도로 올 수 있었고 스사노-오는 이러한 씨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뿌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 뒤의 일은 2개의 어떤 기록들 - 앞서의 어떤 기록 그리고 보다 앞서 살핀 어떤 기록 - 의 구절들이 서로 엇갈려 적고 있습니다. 먼저 어떤 기록은 이스-타케루가 누이 오오야-츠-히메, 오하야-츠-히메가 모두 씨를 퍼트릴 수 있었고 그리하여 받들어 - 스사노-오가 시켜 - 키-쿠니로 건너갔다[A-17-(4):①-⑫]고 적었습니다.
A-17-(4)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이) 때에 ② 스사노-오의 아이가 ③ 호號를 ● 말하기를 ④ 이스-타케루[五十-猛-命]라고 하였고 ⑤ (이스-타케루의) 누이가 ● (호를 말하기를) ⑥ 오오야-츠-히메[大屋-津-姬-命]라고 하였고 ⑦ 다음을(= 이스-타케루의 다음 누이가) ● (호를 말하기를) ⑧ 오하야-츠-히메[採-津-姬-命]라고 하였다. ● 무릇 ⑨ 이러한 3명 카미 같은 사람들이 ● 또한 ⑩ 키들[木]의 씨앗들[種]을 퍼트릴 수 있었고 ● 곧 ⑪ 받들고서 ⑫ 키-쿠니[紀伊-國]로 건너갔다. (一書曰)①于時②素戔鳴尊之子③號●曰④五十猛命⑤妹●⑥大屋津姬命⑦次●⑧採津姬命●凡⑨此三神●亦⑩能分布木種●即⑪奉⑫渡於紀伊國也
그리하고서 이어 스사노-오가 쿠마-나리-타케에 이르렀다[A-17-(5):①-③]고 적었으니, 여기의 키-쿠니는 쿠마노熊野가 있던 곳으로 네-쿠니의 서쪽과 서남쪽 물가에 자리잡은 쿠니입니다. 이어 다른 어떤 기록은 이스-타케루가 퍼트린 씨들이 츠쿠시에서부터 열도 모든 곳에 퍼져 스가靑山를 - 푸른 산들을 - 이루었다[A-1-(6):①-④]고 적고, 이 일을 이루어낸 이스-타케루를 키-쿠니에서는 오오카미로 받들었다[A-1-(6):⑤-⑧]고 보다 뒤의 일을 적었습니다.
A-17-(5)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그리하고서 ① 뒤에 ② 스사노-오가 ③ 쿠마-나-타케[熊-成-峯]에 머물렀으며 ● 이윽고 ④ 네-쿠니[根-國]에 들어갔다. (一書曰)然①後②素戔嗚尊③居熊成峯●而遂④入於根國者矣
A-1-(6) 일본서기 인용 어떤 기록: ● 이윽고 (나무의 씨들이) ① 처음으로, ② 츠쿠시筑紫로부터 무릇 오오大(= 큰) 8(개)[八] 물가[洲]의 쿠니들[國] 안에, ③ 뿌려져 심기지 않음을 못하게 되었고(= 뿌려져 심기지 않은 곳이 없어졌고) ● (그런 쿠니들이) ④ 스사靑山(= 스가-야마)를 이루었다. ● (그리하여) ⑤ 이스-타케루[五十-猛-命]를 일컬어 (말하기를) 공功이 있는 카미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던 바, ● 곧 ⑥ 키-쿠니[紀伊-國]가 ⑦ 오오카미大神로 두었던 바가(= 사람이) ⑧ 이 사람[是]이었다. (一書曰)●遂①始②自筑紫凡大八洲國之內③莫不播殖●④而成靑山焉●⑤所以稱五十猛命爲有功之神●卽⑥紀伊國⑦所坐大神⑧是也
그러한 마지막 일에 앞서 어떤 기록이 적은 스사靑山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이스-타케루가 나무의 씨들을 퍼트리던 즈음 그 일로 말미암아 비로소 스사노-오의 아버지는 호號로, 곧 스사노-오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기록은 이어 스사노-오가 이윽고 네-쿠니로 들어갔다[A-17-(5):④]고 적었고, 앞서 살핀 일본서기 또한 그가 네-쿠니로 떠났다[B-7-(11):①-③]고 적어 스사노-오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였습니다.
B-7-(11) 일본서기: ① 끝내고, ② 스사노-오[素戔-嗚-尊]가 ● 이윽고 ③ 네-쿠니[根-國]로 떠났다. 已而素戔嗚尊遂就於根國
일본서기는 스사노-오의 이즈모에서의 일들을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이어 그 아들 오오-아나-무치의 일들을 적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고사기는 네-쿠니로 건너간 스사노-오가 머물던 곳에 대해, 오오-아나-무치의 일들을 적는 가운데 잠시 적고 있는데, 관련된 장소들은 보다 뒤의 일을 적은 일본서기의 구절들 가운데에 다시 모습을 보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네-쿠니에 있었던 이런 장소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스사노-오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까지 살핀 일들에 따른 주변의 반응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으로 3장 3편을 끝내기로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