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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편 조선 (1) #13

동국통감의 '새로운' 옛 기[古紀]

by 잡동산이

고려를 이은 조선이 일어난 뒤, MC+1396 권근이 조선의 사신으로 명明에 갔습니다. 명의 태조 주원장을 만나 주원장이 만들어 내려준 주제에 대한 시詩를 지어 조선이 있는 동쪽 국國의 옛 일이라고 하며 단-군의 일을 적었습니다[S:②-⑧]. 응제시의 제목에 대해 권근 스스로 적은 주석[自注]은 요 01년 무진-년에 단-군이 단의 나무 아래 내려와 우두머리가 되었다[T:②-⑩]고 적었습니다.


S 응제시: ① 멀고 먼 옛날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② 단-군[檀-君]이 나무 가에 내려왔는데, ③ 동쪽 국國 땅을 마주하고 자리하니 ④ (이) 때 제帝 요堯의 천(하)[天]에 있었더라. ⑤ 여러 세대[世]에 전한 일이 몇 번인지 알지 못하지만 ⑥ 지난 해(의 수)는 이미 1,000을 넘었으며, ⑦ 뒤에 와서 기-자[箕-子]가 이어가며 ⑧ 이 때[是]와 같이 호를 일러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①聞說鴻荒日②檀君降樹邊③位臨東國土④時在帝堯天⑤傳世不知幾⑥歷年曾過千⑦後來箕子代⑧同是號朝鮮
T 응제시 주석: <① 옛날 ② 신神과 같은 사람이 ③ 단檀의 나무 아래에 내려오니 ④ 국國의 사람들이 ⑤ 세워 ⑥ 우두머리[主]로 삼았다. ⑦ 이어 호號를 ● (말하기를) ⑧ 단-군[檀-君]이라고 하였다. ⑨ (이) 때는 ⑩ 당 요 01년[元年] 무진(-년)[戊辰]이었다.> (始古開闢東夷主)<①昔②神人③降檀木下④國人⑤立⑥以爲主⑦因號●⑧檀君⑨時⑩唐堯元年戊辰也>


조선으로 돌아온 권근은 MC+1402 동국사략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 가운데 단-군의 일[U]을 적었습니다. 앞서 응제시의 주석에 적었던 것과 달리 동국사략의 주석에는 단-군이 우두머리가 된 해인 무진-년을 요 01년이 아니라 25년이었다[V-1:①]고 적었습니다, 어떤 근거로 그리하였는지 밝히지 않았니다


U 동국사략: ① 동쪽 땅[東方]에는 처음 군君, 장長이 없었는데 ② 신神과 같은 사람이 있어 ③ 태백-산[太白-山] 단檀의 나무 아래에 내려오니 ④ 국國의 사람들이 ⑤ 세워 ⑥ 군君으로 삼았다. ⑦ 국의 호號를 ● (말하기를) ⑧ 조선朝鮮이라고 하고 ⑨ 평양平壤에 도읍하였고, ⑩ 백악白岳으로 옮겼다가, ⑪ 뒤에 ⑫ 아사달[阿斯達-山]에 들어가 ⑬ 산에서 신神이 되었다. ⑭ 이 사람을 단-군[檀-君]이라고 하였다. ①東方初無君長②有神人③降于太白山檀木下④國人⑤立⑥爲君⑦國號●⑧朝鮮⑨都平壤⑩徙白岳⑪後⑫入阿斯達⑬山爲神⑭是爲檀君
V-1 동국사략 주석: <① 당唐 요堯 25년 무진(-년)[戊辰]이었다.> (立爲君)<①唐堯二十五年戊辰>


그 밖의 다른 주석에서는 옛 기[古紀]를 인용하여 단-군이 요와 나란히 섰다[V-2:③-④]고 적고, 이어 무정 08년에 신이 되었다[V-2:⑤-⑥]고 적었습니다. 이어 다른 주석에서는 무진-년에서 을미-년까지의 기간을 세어 1,038년을 1,048년으로 고쳤는데 글자들의 순서를 바꾸어 4,018년이었다[V-2:⑧]라고 잘못 적었습니다.


V-2 동국사략 주석: <이름하기를 ① 왕검王儉이라고 하였다. ② 옛 기[古紀]가 ● 이르기를 "③ 단-군[檀-君]은 ④ 요堯와 나란히 서서 ⑤ 상商 무정武丁 08년에 이르러 ⑥ 신神이 되었다."라고 하였으니, ⑦ (단-군이) 있던 해[夀]는 ⑧ 4018이었다. ● 그리하여 ⑨ 권근의 응제시應制詩가 ● 말하기를 "⑩ 여러 세대[世]에 전한 일이 몇 번인지 알지 못하지만, ⑪ 지난 해(의 수)는 이미 1,000을 넘었구나."라고 하였다. ● (1000을 넘은 지난 해는) ⑫ 아마도[葢] 여러 세대에 전하며 지났던 해인 듯 하니 ⑬ 단-군이 있던 때가 아니다[非].> (檀君)<名①王儉②古紀●云③檀君④與堯並立⑤至商武丁八年⑥爲神⑦夀⑧四千十八●然⑨權近應制詩●曰⑩傳世不知幾⑪歷年曾過千●⑫葢傳世歷年⑬非檀君夀也>


그런데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무정 08년 을미-년은 새로 만들어져 제왕운기에 보태진 것이니, 동국사략이 이야기하는 옛 기[古紀]가 바로 제왕운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보기에 합리적이라 여겨 시작과 끝 간지에 맞는 기간으로 고치고서 제왕운기라는 이름을 적지 않아, 약간 다르지만 자신의 이해와 아들어가는 새로운 문자 자료가 있었고 그것을 거로 하여 본문을 적은 것처럼 꾸몄습니다.




앞서 제왕운기는 로운 구절이 어떤 자료에서 나왔다고 따로 적지 않아, 새로운 구절을 살펴보고 책을 쓴 사람이 그것을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국사략은 왕운기의 구절을 가지고 내용을 바꾼 뒤에 다른 료에서 인용한 것처럼 꾸몄습니다. 렇게 일단 선을 넘고 나니, 만들어낸 자료를 옛날부터 전오던 자료처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어떤 거림낌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MC+1462 권근의 응제시에, 권근의 주석은 물론 손자 권람의 주석이 보태어진 응제시주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더한 것들까지 보태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MC+1485 동국통감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동국통감 외기 주석은 이제, 권근이 문장을 바꾸어 옛 기라고 하였던 제왕운기 본문 내용을 또다른 방식으로 리해 적고는, 동국사략 주석이 새로 적은 바인 1,048년까지 보태어 더욱 '새로운' 옛 기[古紀][W:①-⑧]를 완성내어 인용하였니다.


W 동국통감 외기 주석 인용 옛 기: <① 단-군[檀-君]은 ② 요堯와 나란히 무진(-년)[戊辰]에 서서[立] ③ 우虞, 하夏를 지내고 ④ 상商 무정武丁 08년 을미(-년)[乙未] ⑤ 아사달阿斯達에 들어가 ⑥ 산山에서 신神이 되었으니 ⑦ (국을) 누리며[享] 있던 때[壽]가 ⑧ 1,048년이었다.> <古紀云①檀君②與堯並立於戊辰③歷虞夏④至商武丁八年乙未⑤入阿斯達⑥山爲神⑦享壽⑧千四十八年>


동국통감 외기 주석은 동국사략 주석과 마찬가지로 요 25년을 무진-년이라고 하며 그 이유를 상원上元 갑자가 갑진-년이기 때문이다[X:⑤-⑨]라고 적었습니다. 앞서 동국사략 주석이 요 25년을 적을 때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만, 동국사략 주석이 명확히 적지 않았던 내용입니다.


그리고서 본래의 문자 자료, 삼국유사가 인용한 옛 기록, 위서 그리고 제왕운기 주석이 인용한 본기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새로 만든 옛 기의 1,048년에 관해 앞선 사람들의 의견들을 옮겨 적고는 권근이 응제시를 지었던 일을 적었습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를 고쳐 만든 것임을 내비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자료, 단-군의 일에 대해 전한 앞서의 것과는 상관이 없는 책이 본래부터 따로 있었고 그것을 인용한 것으로 꾸몄습니다.


X 동국통감 외기 주석: <① 이(=옛 기[古紀]의) 이야기는 ② 의심할 만 하다. ③ 지금 ④ 생각하니[按], ⑤ 요堯가 선 일은, ⑥ 상원上元 간지[甲子]인 갑진-년[甲辰之-歲]에, 있었으니, ⑦ 단-군[檀-君]이 선 일은, ⑧ 뒤에 ⑨ (요) 25년 무진(-년)[戊辰]에, 있었다. ⑩ 곧 (옛 기가) ● 말하기를 "⑪ (단-군이) 요와 나란히 섰다."라고 한 것은 ⑫ 그르다[非].> <①此說②可疑③今④按⑤堯之立在⑥上元甲子甲辰之歲⑦而檀君之立在⑧後⑨二十五年戊辰⑩則●曰⑪與堯並立者⑫非也>


그러나 앞서 추적한 대로, 1,048년은 제왕운기가 삼국유사 주석의 의심에 따라 은 무정 08년 을미-년이라는 새 구절을 만들어낸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러니 이것을 포함하는 자료들은, 제왕운기 본문에 은 무정 08년 을미-년이라는 구절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던 삼국유사보다, 그러한 구절의 재료로 사용된 옛 기록과 위서보다 앞서 있었다가 전해진 것일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리하여 옛 기록, 위서 그리고 본기와는 따로 전하던 것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데, 세간에서는 서로 다르게 전하는 것들 가운데 어느 것이 정확한지 알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본래의 자료 또한 보다 뒤의 다른 시기에 중-국의 해 세는 법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라고 여기고,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를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내용을 살펴가며 차분히 이해하려는 대신에.


그리고 이러한 자료를 만들어내는 것이 거리낌 없이 이루어진 뒤로는 이것들을 가지고 만들어낸 여러 자료들이 다시 나왔습니다. 무속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변종 이야기들을 만들어냈고, 또한 힘있는 가문의 사람들이 전해오던 것이라 족보를 만들면서 여기에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4편에서 일의 시기를 확인하며 짧게 언급하겠지만, 3세기의 자료에는 어떤 구절의 누락에 따른 잘못이 담겨있는데 새로 만들어낸 자료들에는 이 잘못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동국사략과 동국통감을 쓰며 꾸민 내용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리하면서 본래의 자료들에 대한 무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옛 기록, 위서, 본기 - 본래의 3가지 자료들 자체의 내용들은 더이상 살피지도 않았고, 어째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살펴 알아낼 수 있는 옛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관점 또한 찾으려 하지 았습니다. 리고, 이러한 상황은 옛날 뿐만 아니라 현재도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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