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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편 조선 (1) #12

제왕운기의 '은 무정 08년 을미'

by 잡동산이

MC+1281 일연의 삼국유사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책은 앞서 살펴본 옛 기록과 위서를 처음으로 인용하여 옛 조선과 단-군의 일을 적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이러한 자료들을 그대로 옮겨 적기는 하였지만, 삼국유사 지은 일연터가 이 이해하지 못하고 정말일까 의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연은 자료들을 살피고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고쳐 바로잡거나 주석을 보태어 뜻을 분명하게 하려 시도하였습니다. 그런 시도들이 삼국유사의 여기저기에서 보이는데, 생각하지 않았을 결과 이어졌습니다.




일연은 고려본기 곧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가 주몽 곧 동명-왕을 낳았다[N-1:③-⑥]고 적은 구절을 알고 있었습니다. 단군 기록[壇君記]의 단-군과 하-백의 딸이 부루를 낳았다[N-1:⑦-⑩]고 적은 구절을 의 구절과 께 살피고서 그것을 근거로 삼아 주몽과 부루가 형과 아우였다[N-1:⑪-⑫]고 추측하고, 이 추측을 주석에 적었습니다.


N-1 삼국유사 기이편 주석: <① 지금 ② 이 기록(=고려본기)에 기대어보면 ③ 곧 해모수解慕漱가 ④ 하-백[河-伯]의 딸과 통하였고 ⑤ 뒤에 ● (하-백의 딸이) ⑥ 주몽朱蒙​을 낳았다. ● (그런데) ⑦ 단군 기록[壇君記]이 ● 이르기를 "⑧ (단-군과 하-백의 딸이) 낳은 아들[子]을 ⑨ 이름하여 ● 말하기를 ⑩ 부루夫婁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 (그러니) ⑪ 부루와 주몽은 ⑫ 어머니를 달리하는 형과 아우였다.> (而徃不返)<①今②拠此記則解慕漱私河伯之女而後産朱蒙​●壇君記云②産子名曰夫婁③夫婁與朱蒙⑫異母兄弟也>


그런데 이 추측은 뭔가 어색합니다. 하나씩 되짚어보지요.


일연은 주몽은 해모수와 하-백의 딸의 아들이라는 구절을 알고, 부루가 단-군과 하-백의 딸의 아들이라는 구절을 보고서 주몽과 부루가 형과 아우였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니 이 추측은 두 구절에서 두 사람의 공통점, 그 어머니가 하-백의 딸이라는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구절을 제외하면 두 구절에 같은 부분이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그 추측을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주몽과 부루는 하-백의 딸이라는 같은 어머니를 가진 형과 아우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주석은 주몽과 부루가 어머니를 달리하는 형과 아우였다[N-1:⑫]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모수가 단-군이어야 합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주석 달린 본문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 주몽의 어머니인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났을 때 천-왕-랑 곧 천-왕이라고 하였습다. 웅이 천-왕 대신 아들 왕검의 단-이라는 호로 불렸던 적이 없듯이 해모수 단-군이는 호로 불렸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부루의 아버지였던 단-군이 아었는데, 주몽의 어머니까지 부루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엇이 둘을 형과 아우라고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문자 자료들이 근거가 되어주지 못하는 이러한 추측을, 일연은 마치 전해온 이야기인 것 다시 적었습니다. 주석 뿐만 아니라 나아가 본문까지.


삼국유사 기이편은, 천-제의 아들이 낳은 아들이 부루였다고 하고서 부루를 해-씨로 하였다[O:①-②]고 적었니다. 천-제의 아들이란 곧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이니, 이 구절은 부루와 주몽이 형과 아우라고 추측한 것을 달리 적은 것입니다. 삼국유사 왕력편 주석은 고구려 동명-왕이 단-군의 아들이다[P:①]고 적었습니다. 이것 또한 부루와 주몽이 형과 아우라고 추측한 것을 달리 적은 것입니다.


O 삼국유사 기이편: (천-제의 아들이) ① 아들[子]을 낳아 ● 이름하기를 ② 부루扶婁라고 하였으며, ③ 해解가 ④ (부루의) 씨氏가 되도록 하였다. ①生子●名②扶婁③以解④爲氏焉
P 삼국유사 왕력편 주석: <(동명-왕은) ① 단-군[壇-君]의 아들이었다.> (東明王)<①壇君之子>


앞서 보였듯이 이 추측은 어딘가 어색한 것이지만, 일연은 이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무엇인가 추측하고서, 전해져 온 문자 자료가 그런 추측을 담고 있거나 뒷받침하는지, 혹은 추측을 뒷받침하는 다른 문자 자료가 있는지 여부보다 그런 추측이 자신이 보기에 합리적인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 그것이면 스로 의심하지 않기에 충분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문자 자료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점점 늘어났습니다.




MC+1287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제왕운기는 단-군의 일을 이야기하며 주석에서 삼국유사가 인용한 옛 기록이나 위서와는 다른 본기를 인용하였는데, 이어지는 부분 -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간 일 앞에 은 무정 08년 을미-년[Q:③]이라는 새로운 구절을 보태어 적었습니다.


Q 제왕운기: ① 나란히 제帝 고高(=요堯)와 일어나 무진(-년)[戊辰] ② 우虞를 지나고 하夏를 지나도록 대궐 가운데 머물다가, ③ 은殷의 호정虎丁(=무정武丁) 08(년) 을미(-년)[乙未] ④ 아사달阿斯達에 들어가 산山에서 신神이 되었다. ①竝與帝高興戊辰②經虞歷夏居中宸③於殷虎丁八乙未④入阿斯達山爲神


본문에 대해서 주석은, 본기라는 문자 자료의 이름도 본문에 해당하는 본기의 구절도 적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새로운 구절은 앞서 주석이 인용하였던 본기의 내용 가운데에서 미처 인용되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본기에는 없던 내용이, 본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 무정 08년 을미-년이라는 새로운 구절은 과연 어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것이 나타나게 된 과정을 하나씩 되짚어 봅시다.


자치통감외기 주석은 요 01년이 무진-년이었다[R-1:①-②]고 적었습니다. 이 주장을 받아들인 일연은, 삼국유사 기이편 주석에 요 50년은 경인-년이 아니라 정사-년이다[N-2:③-⑤]라고 적고, 또한 의심스러우니 옛 기록은 참이 아니다[N-2:⑥-⑦]라고 적었습니다.


R-1 자치통감외기 주석: <① (요堯) 01년[元年]이 ② 무진(-년)[戊辰]이었다.> (姓伊祁)<①元年②戊辰>
N-2 삼국유사 기이편 주석: <① 당唐 요堯가 (제帝의) 자리에 오르고서 01년[元年]은 ② 무진(-년)[戊辰]이었다. ③ 곧 (요가 제의 자리에 오르고서) 50년은 ④ 정사(-년)[丁巳]이며 ⑤ 경인(-년)이 아니었다. ● 의심스러우니[疑], ⑥ 그것[其](=요가 제의 자리에 오르고서 50년이 경인-년이었다고 함)은 ⑦ 참[實]이 아니다[未], 라고 여긴다.> (庚寅)<①唐堯即位元年②戊辰②則五十年④丁巳⑤非庚寅也●疑⑥其⑦未實>


의심을 이어받은 누군가 옛 기록을 다시 찬찬히 살폈습니다. 단-군이 처음 일어난 시기는 요 50년, 경인-년이라고 적고, 다음 시기는 기묘-년이라고 적었는데, 마지막 시기는 따로 간지를 적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본래는 처음 시기가 경인-년, 마지막 시기가 바로 요 50년 정사-년이고 적혀있었는데, 잘못 옮겨적은 까닭에 요 50년이라는 구절은 경인-년에 더하여지고 정사-년이라는 구절은 빠졌다고 추측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위서가 같은 때라고 적은 절을 근거로 왕검이 다스리기 시작한 시기를 요 01년이라고 보고서, 다시 치통감외기 주석을 근거로 경인-년이라는 구절을 요 01년에 해당하는 무진-년으로 고쳐적었습니다. 그리고서 앞서의 추측에 근거하여 마지막 시가 정사-년으로 적혔던 것으로 보고, 경인-년과 정사-년의 간격을 무진-년에 보태어 을미-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서는 또다른 자치통감외기 주석이 은 무정 01년이 무자-년이었다[R-2:①-②]고 적은 것을 알았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은 무정이 왕의 저리에 있던 시기의 을미-년을 찾아, 은 무정 08년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은 무정 08년 을미-년[Q:③]이라는 새로운 구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R-2 자치통감외기 주석: <① (무정武丁) 01년[元年]이 ② 무자(-년)[戊子]이었다.> (高宗武丁)<①元年②戊子>


그 누군가 - 이승휴는 이렇게 만든 새로운 구절을 본문에 담은 제왕운기를 세상에 내어놓았습니다. 러나 여기에는 답을 찾아내지 못한 문제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무진-년에서 을미-년까지의 기간은 1,038년이 아니라 1,048년이라는 점이지요.


그 뒤에 이것을 읽은 사람들은, 일연과 이승휴가 그러하였듯이 자료 가운데 이해하지 못한 부분,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 자신들이 보기에 합리적이라고 할 만한 추측을 근거로 새로운 구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들을 담은 또다른 책들을 세상에 내놓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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