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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편 조선 (1) #11

순舜을 이은 우禹 (2/2)

by 잡동산이

사기 오제본기는 우가 9개 산들을 헤치며 9개 호수들을 오고갔고 9개 강들을 매듭지어 9개 주들을 바로잡았다[E-13-(1):③-⑥]고 적었습니다. 그리하니 9개 주들에서 일을 맡은 사람들이 와서 물건들을 주며 물건들을 잃어버리거나 빠트리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E-13-(1):⑦-⑪]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9개 주들의 땅은 둘레가 5,000리였으며 황복이라는 변방에 이르렀다[E-13-(1):⑫-⑭]고 적었습니다.


E-13-(1) 사기 오제본기: 다만 ① 우禹의(=우가 세운) 공功이 ② 큰 것들(=큰 결과들)을 만들었다. ● (우가) ③ 9(개) 산들[山]을 헤치고[披] ④ 9(개) 호수들[澤]에 오고가며[通] ⑤ 9(개) 강들[河]을 매듭짓고[決] ⑥ 9(개) 주들[州]를 바로잡았다[定]. ● (9개 주들은) 각각 ⑦ 그 곳[其]의 일을 맡은 사람들[職]이 ⑧ 와서 ⑨ (물건들을) 주며[貢] ⑩ (물건들을) 잃거나[失] (주는 일을) 빠트리지[厥] 않음이 ⑪ 마땅하다고 여겼다. ● (9개 주들은) ⑫ 둘레[方]가 ⑬ 5,000리였고 ⑭ 황복荒服에 이르렀다. 唯①禹之功②爲大③披九山④通九澤⑤決九河⑥定九州●各⑦以其職⑧來⑨貢⑩不失厥⑪宜●⑫方⑬五千里⑭至于荒服


본래 우가 요를 떠나 간 곳에는, 물줄기가 다스려지지 않았기에 땅에 못이 가득하였고 그리하여 본래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높은 땅, 산에 올라 지냈습니다. 우는 그런 땅들을 다니며, 산에 올라 그런 사람들을 만나 못의 상태를 살피고는 이어지는 물줄기를 돌려 함께 흘러 물이 빠지도록 하고는 물이 빠진 땅에 사람들이 살도록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마워하며 당연한 듯 물건을 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지요.



그렇게 하여 우를 따르게 된 땅들 9곳을 9개 주들[州]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땅들을 모두 아우르면 둘레가 5,000리였기에 황복이라고 부르는 변방, 다시 말해 여러 변방 가운데 제일 바깥의 것에까지 이르러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으면, 다음은 그러한 변방에 대한 설명이 이어는 것이 자연스럽겠지요?




사기 오제본기는 북쪽에는 산융, 발, 식신, 동쪽에는 장이, 조이가 있다[E-13-(2):④-⑦]고 적었는데, 그렇다면 그 앞에 있는 이야기는 당연히 남쪽과 서쪽에 대한 것이겠지요. 사기 오제본기는 남쪽으로 가서 교지를 다독였다[E-13-(2):①-②]고 적었는데, 그 뒤에 북발, 그 뒤에 서西, 그 뒤에 융, 석지, 거수, 저강[E-13-(2):③]을 차례로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북발은 교지와 같이 남쪽의 무리라고 보고, 서쪽[西] 뒤에 나오는 것은 서쪽의 무리라고 보면 될까요?


E-13-(2) 사기 오제본기: ① 남쪽으로 가서 ② 교지交阯를 다독였다[撫]. ③ 북발北發, 서융西戎, 석지析枝, 거수渠廋, 저강氐羌이, ④ 북쪽에 ⑤ 산융山戎, 발發, 식신息愼이, ⑥ 동쪽에 ⑦ 장(이)[長], 조이鳥夷(=도이島夷)가 있었다. ⑧ 네 큰 물들[海] 안에서 ● 모두 ⑨ 제 순의 공을 만났다. ①南②撫交阯③北發西戎析枝渠廋氐羌④北⑤山戎發息愼⑥東⑦長鳥夷⑧四海之內●咸⑨戴帝舜之功


뭔가 어색한 이 구절들 마지막에, 사기 오제본기는 네 큰 물들 안의 사람들이 모두 순의 공을 만났다[E-13-(2):⑧-⑨]고 적었습니다. 어라, 구절은 우의 공을 이야기하던 것이 아니었나요? 이 구절들을 이해하려면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자료가 대대례기 소한편입니다.


대대례기 소한편은 순이 덕을 퍼트리고 예를 다스리자 북쪽 땅의 사람들이 와서 따랐다[M:⑥-⑨]고 적었으며, 남쪽에 가서 교지를 다독여 따르도록 하자 서쪽 땅의 사람들이 와서 물건을 주었다[M:⑩-⑬]고 적었습니다. 어 4개 큰 물들에 오고가자 그 바깥의 숙신, 북발, 거수, 저강이 와서 따랐다[M:㉑-㉓]고 적었습니다. 숙신肅愼을 앞서 사기 오제본기는 식신息愼[E-13-(2):⑤]이라고 적었습니다.


M 대대례기 소한편: ① 옛날 ② 우虞의 순[虞-舜]이 ③ 하늘의 덕德으로 ④ 요堯를 이었다. ⑤ 공功을 펼치고 ⑥ 덕을 퍼트리고 ⑦ 예禮를 다스리자 ⑧ 북쪽 땅[朔方] 먼 곳[幽]의 도읍[都](=우두머리들)이 ⑨ 와서 따랐다. ⑩ 남쪽으로 가서 ⑪ 교지交趾를 다독이니 ⑫ 해와 달이 나고 들어 ⑬ 따르지 않음이 없어졌다. ⑭ 서왕모西王母가 ⑮ 와서 ⑯ 그(=서왕모의) 옥피리[白琯]를 바치자 ⑰ 사람들[粒食之民]이 ⑱ 그러함을 비추어 잘 보고 ⑲ 사람마다 ⑳ 밝게 가르쳤다. ㉑ 4개 큰 물들에 오고가니 ㉒ 큰 물들 바깥의 숙신肅愼, 북발北發, 거수渠搜, 저강氐羌이 ㉓ 와서 따랐다. ①昔②虞舜③以天德④嗣堯⑤布功⑥散德⑦制禮⑧朔方幽都⑨來服⑩南⑪撫交趾⑫出入日月⑬莫不率俾⑭西王母⑮來⑯獻其白琯⑰粒食之民⑱昭然明視⑲民民⑳明敎㉑通于四海㉒海外肅愼北發渠搜氐羌㉓來服


먼저 대대례기는 서쪽과 북쪽에서 사람들이 와서 따랐다고 하고, 숙신, 북발, 거수, 저장이라는 무리 이름들을 적었는데, 앞서 사기 오제본기는 북쪽에 산융, 발, 식신이 있다고 하였으니 북발은 곧 서쪽의 무리입니다. 이것을 통해 보면 사기 오제본기는 대대례기의 남쪽으로 가서 교지를 다독였다는 구절을 적으면서 서쪽[西]을 빠트린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기 오제본기의 마지막 문장은 대대례기의 마지막 문장을 달리 적은 것입니다. 왔던 곳을 적은 네 큰 물들 바깥[Y:㉒]이라는 구절을, 이르렀던 곳을 적은 큰 물들 안[E-13-(2):⑧]이라는 구절로 달리 적은 것이고, 순을 따랐다[Y:㉓]고 한 구절을, 순의 공을 만났다[E-13-(2):⑨]고 달리 적은 것입니다.


요컨대 사기 오제본기의 어색함은, 대대례기의 구절과 같이 순의 공을 적은 구절들을 무리하게 순의 일을 적은 구절과 무리하게 결합하려 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로, 더하여진 것들을 빼고 빠진 것을 더해야 합니다. 우의 공이 아닌 E-13-(2):①, E-13-(2):②, E-13-(2):⑧은 모두 빼야 합니다. 또한 다음으로 서쪽에 있었던 북발의 앞에는 서쪽[西]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앞서와 같이 하여 바로잡은 사기 오제본기의 구절들은 아래 E-13-(2)'와 같습니다. 우가 바로잡은 9개 주들의 변방 바깥의 무리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니, 딱히 어색한 부분이 없습니다. 남쪽 변방은 순이 맡았기에 적지 않은 것입니다. 어색함은 사라지고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E-13-(2)' 사기 오제본기: (서쪽에는) ③ 북발北發, 서융西戎, 석지析枝, 거수渠廋, 저강氐羌이, ④ 북쪽에 ⑤ 산융山戎, 발發, 식신息愼(=숙신)이, ⑥ 동쪽에 ⑦ 장(이)[長], 조이鳥夷(=도이島夷)가 있었다. (西)③北發西戎析枝渠廋氐羌④北⑤山戎發息愼⑥東⑦長鳥夷


살펴보면 우가 다스리던 하, 9개 주들은 우가 물을 다스려 바로잡아 사람들이 살도록 한 땅이 있던 곳입니다. 9개 주들의 동쪽에는 장이 - 키가 큰 동쪽 변방 사람들과 더불어 도이[島夷] - 바다 건너 이르게 되는, 섬과 같은 땅[島]의 동쪽 변방 사람들이 있다고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9개 주들의 북쪽에는 산융, 발發, 식신息愼이 있다고 적은 것인데, 이 가운데 발과 신이라는 무리 반드시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우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우 때부터 하가 천하를 다스렸으니, 하의 해 세는 법에 대한 문자 자료들이 이미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이것들을 살펴 하의 해 세는 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일찍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사기 하본기가 그 답을 적고 있습니다. 사기 하본기는 태사공 스스로의 말을 인용하여 공-자가 하의 자료들의 시점을 바로잡았고[F:①-②], 배운 사람들이 그것들을 많이 전하여 예기 하소정편이 그것들을 일렀다[F:③-⑥]고 적었습니다.


F-3 사기 하본기: (태사공이 말하기를 ")① 공-자[孔-子]가 ② 하夏의 때[時]를 바로잡으니[正], ③ 배우는[學] 사람들이 ④ (공-자가 바로잡은 것들을) 많이 전하였고[傳], ⑤ 하소정(편)[夏小正]이 ⑥ (사람들이 전한 것들을) 일렀다[云]. (太史公曰)①孔子②正夏時③學者④多傳⑤夏小正⑥云


이런 까닭으로 사기 하본기가 애써 찾아 적은 문자 자료들처럼, 주의 해 세는 법에 맞추어 바로잡히지 않았던 문자 자료들은 비록 남아있다고 해도 많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삼국유사가 인용한 옛 기록과 위서 제왕운기가 인용한 본기와 같은 자료를 읽지 않았다면 하의 해 세는 법을 의아하게 여기지도, 살피지도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하였기에 그러한 일을 겪지 않고서 남아 전하여진 옛 기록, 본기는 뭐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한 자료입니다. 세간에서도 이 자료들을 이러한 정도로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을까요? 아니요, 그랬다면 필자는 애써 이 글을 쓰는 대신 즐겁게 남의 글을 읽고 있었겠지요.




이제 몇 가지 숙제 - 다루어야 하는 주제, 답해야 하는 질문들이 남았습니다. 평양은 어디인가, 아사달은 어디인가, 장당-경으로 옮겨 머물던 조선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을 이었다는 무리의 이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가, 기억해두라던 발은 어떤 무리였으며 조선과 어떤 관계인가 등등 남겨둔 주제들 대부분은 3편과 4편에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보다 관련이 높은 시기를 다루는 글에서 함께 다루어질 것이고요.


다음은 그런 주제들에서 조금은 떨어진 주제 - 옛 기록, 본기를 가지고 만들어진 자료들에해 짤막한 이야기를 해두려 합니다. 그것이 2편에서 다루는 마지막 주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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