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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Feb 19. 2023

접촉성 피부염

접촉피부염은 외부 물질과의 접촉에 의하여 생기는 모든 피부염을 말한다. 접촉물질 자체의 자극에 의하여 생기는 원발성 접촉피부염과 접촉물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으로 구분된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눈을 떠야 하는 데 뻐근하다. 얼굴이 온통 물로 가득 찬 느낌. 화장실에 가서 불을 켜고 거울을 보니 오, 마이, 갓. 얼굴부터 목까지 온통 붉은 색이다. 눈두덩이부터 애교살이 있던 부분이 퉁퉁부어 화산처럼 솟아올랐다.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못생겨 질 수 있다니! 아니 이건 완전 반역을 꿈꾸다 사로잡혀 칠일 밤낮으로 고문을 당한 대역죄인의 몰골 그 잡채. 손가락 사이사이 피부가 얇은 곳도 붉게 부풀어올라 가렵기까지 한다. 어젯밤 무심코 썻던 엄마 화장품 때문이다. 바르고 한 시간 정도 지나 반응이 와서 바로 씻어냈는데도 그새 스며든 것들이 밤새 피부를 이렇게나 괴롭힌 거다.


나는 피부가 유난히 예민하다. 예민한 걸 몰랐는데 살다가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니 예민한 걸 알게됐다. 오래전 네팔 단체여행 때 회계를 맡았는데 일주일 내내 현지 돈을 만지고 보관했던 덕분에 마지막 날 양 팔목에 심각한 두드러기가 났었다. 어떤 해의 크리스마스에는 교통사고로 무척 건조한 병실에 누워있었다. 마침 동생이 태국여행 선물로 준 페이스 오일이 있었고 야무지게 얼굴에 바르고 잤더니만, 세상에. 다음날 얼굴이 붉은 풍선처럼 마구 부풀어 올라버린 게 아니겠는가. 사고 때문에 크게 다친 곳은 정말 없었지만, 회사에 복귀한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어휴 사고가 정말 크게 났었나 봐!  한 번은 올리브 영에서 양 팔목에 향수 테스트를 하고는 쇼크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작년 내 생일, 유명한 브랜드의 핸드크림을 선물받고는 신나게 발랐더니 양 손이 도라에몽 손처럼 되어 버렸다. 도대체 어떤 크림을 발랐길래 손이 그렇게 됐냐고 묻는 회사 상사의 따뜻한 마음엔 선물해주신 그 핸드크림 때문이라고 차마 솔직할 수가 없었다.


하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다보니 이젠 대처방법도 능숙하다. 병원에 가면 항상 듣는 답은 '접촉성 피부염'. 의사선생님이 스테로이드가 가득 든 연고를 처방해주시면 약국에 가서 연고를 사서 환부에 꼼꼼하게 바르는 거다. 약이 독한 만큼 효과도 빠르게 온다. 그래도 최소 며칠은 기다려야 한다. 화장대엔 화장품 개수만큼 다양한 연고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제형과 촉감의 연고를 기분에 따라 골라 바를 수도 있는 경지이다. 아 그런데 오늘은 바를 곳이 너무 넓은데. 양 볼과 이마, 두 눈, 코 턱. 귀 밑으로부터 쇄골 전까지 목 앞 부분이 온통 붉은 색.제일 양이 넉넉한 연고를 하나 골라 참새 눈물만큼씩 짜내어 얇고 꼼꼼하게 펴바른다.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제형 덕분에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가 촉촉해진다. 아주 뭐 일석이조구만. 마스크를 쓰고 후드티를 뒤집어 써보니 다행이 보통 사람처럼 보이긴 한다. 내일 회사는 이렇게 가야겠군. 내 자리가 아주 구석에 있어 참 다행이다.


내 피부는 어쩜 이렇게 예민할까. 이렇게 예민해서 도대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정말 여태 하나도 찾아낼 수가 없다. 아무거나 고민없이 발라대도 멀쩡한 다른 이들의 튼튼한 피부가 부럽다. 혹시 마음의 피부도 사람의 피부를 닮은 걸까? 세상 모든 단어가 내 전용 화장품처럼 순하고 부드러울리 없는데. 이 말에 삐쭉. 저 말에 빼쭉. 이 눈빛에 흔들. 저 눈빛에 왈칵. 도무지 무디어지지 않는 이 예민한 피부처럼 내 예민성 마음도 태어난 이후부터 모든 순간에 접촉성 피부염을 앓고 있는 것만 같다. 피부에는 스테로이드 연고가 있는데, 마음엔 무슨 약을 처방해주어야 할까? 튼튼한 피부만큼이나 누군가의 튼튼하고 무딘 마음이 참 부럽기만 하다.


202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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