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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Feb 20. 2023

손톱

베이스를 하고 나서는 손톱을 기르지 않는다. 아니, 손톱을 바짝 자른다. 베이스의 굵은 현은 손톱 밑의 살로 뜯어내야 묵직하고 단단한 소리가 난다. 손틉이 0.1mm만 자라나도 아주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특히 현을 뜯는 오른 손 검지손가락의 손톱은 더 바짝 잘라주어야 한다. 중지에는 손톱 밑 살이 두툼하지만 검지 손톱 밑 살은 얇고 말라 있어서 그렇다. 처음엔 조금 아프다 싶었지만 이제는 바싹 잘라도 아프지 않게 됐다. 손톱을 바싹 자르고 소리는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손톱이 없으면 컴퓨터의 타자감도 더 쫀득해진다. 글을 쓰는 것과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이 두가지를 위해선 기다란 손톱은 다소 거추장스럽거나 불필요한 것이다.


연인은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고 했다. 처음 만난 날 그는 내 손이 예쁘다고 했다. 그는 집까지 날 바래다 준다고 하고서는 같은 길을 세 번이나 헤맸다. 우린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운전 할 때는 항상 손을 놓지 않았다. 한 손으로 운전을 잘 하는 그가 불안하진 않았지만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서운해질 것 같았다. 연인에게 잘보이고 싶었던지 그를 만나는 내내 항상 네일 케어를 받았다. 손이 더 길어보이고 싶어서 부지런히 손톱을 길렀다. 연인은 나의 많은 걸 지지해주고 사랑해주었다. 그는 내 손이 예쁘다고 했다. 그래도 사랑은 끝이 났다.


이후에도 특별한 날들이 있을 땐 손톱을 꾸미곤 했다. 여름이면 하얀색이 되기도 파란색이 되기도 했다. 베이스를 시작하고 나서 내 손톱은 늘 단정하다. 이젠 단단하고 좋은 소리를 내고 싶은 손이다. 오래 기억될 글을 쓰고 싶은 손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화려한 손은 아름다워보인다. 그것들은 여전히 아름다움에 속한다. 한때는 분명, 나도 갈망했던 것들이다.


손톱이 짧은 사람이 좋다. 보여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쉽사리 부서지지 않을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손톱이 짧은 사람이 좋다. 나를 닮은 사람이 좋다. 단단한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



202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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