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성격은 좋아 보이더라고, 어, 그런데 나랑은 잘 안 맞는 거 같아, 어, 미안해,
어, 혹시 다음에 또 기회 있으면 꼭 나 먼저 부탁해~. 헤헤.
어, 고마워~ 다음에 봐~”
1차 소개팅 주선을 해준 친구에게 상황보고를 해주었다. 서른 살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누군가를 소개해주고, 소개받는 게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결혼이라는 흑심을 품고 있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어쨌든 처음 보는 사람과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에너지가 고갈이 되어버렸다.
‘꼬르륵’
스파게티가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온 데 간데 없어졌다. 컵라면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을 붓고 뚜껑을 덮었다.
노트북에 다운로드하여놓은 ‘내 이름은 김삼순’을 또 본다. 지겹게 많이 봤는데, 지겹지가 않다. 삼순이가 내게도 저런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날 거라고 주문을 외워주는 것 같다.
후루룩~ 역시 면은 라면이 최고다.
빠밤! 2차 소개팅. 금요일 저녁 7시. 오늘은 일식집 안에서 만나기로 했다. 딱 5분 정도만 빨리 도착하려고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런데 웬걸 식당의 제일 안쪽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환희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사진을 미리 교환해서 인가. 이미 알고 있는 사이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알아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일찍 오셨어요? 아직 5분 전인데.”
“제가 원래,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오는 버릇이 있어서요.”
그분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아주 좋았다. 쌍꺼풀은 없지만 눈매가 시원시원하고 그 눈에 웃음을 담으니 초승달이 되었다.
똑같이 초밥 정식을 시키고, 초밥이 나올 때까지 약간의 어색한 기류를 즐기며 눈을 맞추었다. 그분은 동글한 얼굴에 깔끔한 헤어스타일이 제법 잘 어울렸다. 귓불도 깔끔했다. 귀걸이는 없었다. 이 정도면 통과!
직원이 초밥정식을 각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런 날은 천천히 꼭꼭 씹어야 한다. 자칫 덩어리 밥을 먹다 체하기 쉬우니까.
초밥이 한 덩어리씩 사라질 때마다 어색함은 점점 사라졌다.
주로 그분이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현재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니, 대학시절, 초등학생 시절, 유딩 시절의 이야기까지 꺼내놓았다. 나는 초밥을 씹으며 다양한 리액션을 해주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척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일식집을 나와 간단히 생맥 한 잔씩만 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잘 몰랐던 키가 이제야 보였다. 180은 안돼 보였지만 그래도 170은 넘어 보여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키도 통과! 완벽하지는 않지만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이상형을 드디어 만났다. 이얏호!
호프집에 들어가 마주 앉아 500cc 한 잔씩을 마셨다. 역시 알코올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만난 지 2시간 반밖에 안됐는데, 이미 몇 번은 만났던 사이처럼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이미 그분의 어린 시절부터 바로 어제 일까지 다 알게 되었으니 지금 당장 말을 놓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까지 갔다.
우리는 호프집을 나왔다.
“저 써니 씨 혹시 다음 주 주말에 뭐하세요? 같이 영화 보실래요?”
“주말에요? 아, 가능해요.”
3차 소개팅은 금요일이니 당연히 주말에는 아직 약속이 없고, 나 역시 몇 번 더 만나 봐도 좋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물론 그분이 완벽한 이상형은 아니기에, 다음을 약속해줬다고 뛸 듯이 기쁘고 설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한 번 만나고 아닌 것 같다고 하기엔 조금 아까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손을 잡는다. 그분이.
왜지?
하물며 그분의 손은 금방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것처럼 물기가 흥건했다.
이건 또 뭐지?
어이없어 그분을 올려다봤다. 입은 헤벌죽 벌리고, 얼굴은 설날 차례상에 올려놓았던 사과처럼 빨개졌다.
다음 주에 영화 보자고 해서, 그러자고 하면, 지금부터 사귀게 되는 건가?
나는 손을 쓱 뺐다. 불쾌했다. 그분은 당황하지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헤벌죽 웃는다. 마치 너도 좋으면서 부끄러워 그러는 거냐는 듯이.
이거야 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그분의 시답잖은 농담에도 웃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나를 기다리는 듯한 택시에 올라탔다. 그래도 짧게 고개를 숙이고 반가웠다는 인사는 했다.
그분은 여전히 손을 흔들며 헤벌죽이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씩씩거리며 손을 물티슈로 닦았다.
아.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그분의 행동을 당췌 이해 못하겠다.
이상형의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하지만 중요도는 바뀌고 있다.
이렇게 2차 소개팅도 실패.
이제 마지막 1번의 소개팅이 남았다. 윽. 정말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데.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수가.
띠로링~ 띠로링~
“여보세요? 어, 언니~ 소개팅? 좋지~”
선배 언니의 전화다. 형부의 친구하고 소개팅을 하란다. 아싸! 다시 2번 남는 건가? 하하하
“어, 그래? 그래도 난 키 작은 건 싫은데. 응, 그래요.”
아! 키...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보통은 괜찮지만 작은 건 싫다. 아직은.
(다음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