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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14. 2021

당신은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나요?

QuestioN Diary 8


2005년 7월 어느 주말.
in 중국 청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청도에 있는 쥬얼리 회사에 취업했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무조건 중국에서 일은 해봐야겠다는 마음에 필사적으로 움직였었다.


회사는 완전 시골 마을 공장 가에 있었다. 그곳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에 첫 독립이라 설렘도 있었지만, 낯선 곳에서의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고됨을 함께 나눌 친구도 없었고, 그렇다고 한국에 전화 통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3개월을 버티고 적응이 될 무렵. 친구들을 만났다. 그것도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들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타국에서 만난 우리는 오랜 절친이었던 것처럼 반가워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밤마다 찜질방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함께 자고, 주말엔 쇼핑가고, 다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일요일 밤이 돼서야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주변에 한국 기업이 많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편의 시설이 많았다. 그중 찜질방은 한국보다 훨씬 고급지고 좋았다. 그런데도 한국의 시설 이용료보다 저렴했다.


그 시절 나에겐 돈이 많았다. 회사에서 월급은 한국으로 보내주었고, 생활비와 용돈은 따로 챙겨주었다. 물론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 회사만 그랬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심을 펑펑 써가며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더랬다. 이런 생활의 가장 절정이었던 때가 바로 2005년 7월이었다. 그때만큼 아무 걱정 없이 사치를 부리며 여유롭게 지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길지 않았다.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하고 한국 직원들이 하나둘 돌아갔다. 그로 인해 나의 업무는 나날이 늘어갔고, 입사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업무에 대한 책임도 너무 커졌다. 덜컥 겁이 났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나가고 싶었다. 마음이 한 번 뜨기 시작하니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첫 직장 입사 1년 만에 퇴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글쎄, 그때를 잘 버텼으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다고 그때의 그 결정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셋 중에서 내가 한국으로 제일 먼저 들어왔고,  두 친구도 내 뒤를 따라 곧 들어왔다. 우리는 한국에서 다시 뭉쳤다.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앞으로 닥칠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이 만남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결혼하고, 애 엄마가 되고, 중국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지내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즐거워한다. 다행히 힘들었던 일들은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그냥 ‘힘들었다.’로 끝이다. 하지만 함께 즐거웠던 일은 삼탕 사탕을 우려내며 더 진국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여행계를 만들어 월 2만 원씩 모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우리끼리만 여행을 가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렇게 모은 돈이 300만 원이 됐을 때쯤 대만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하지만 못 갔다. 하필 코로나 19가 확산할 조짐이 보일 때였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내 몸만 생각하고 떠날 수가 없었다. 덕분에 돈은 굳어 통장 잔고가 4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우린 2년 만에 회동했다. 용인에 있는 브런치 카페에 갔다. 넓은 통창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가장 비싼 거로 4인분을 시켰다. 가격 따윈 상관없었다. 단지 맛깔나게 찍힌 사진만 중요했다. 우리에게는 빵빵한 회비가 있으니까. 음식을 씹으며, 그동안의 회포를 푸느라 입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긴 대화 끝에 우린 워치 폰을 하나씩 사자고 했다. 어차피 한동안은 여행이 힘들 것 같으니 기분 전환을 위한 선물을 나누어 갖기로 한 것이다. 오예~! 각자 로켓배송으로 지름을 했다. 한 번도 갖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난, 그 물건이 꽤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돈 주고는 차마 사지 못해서 덮어두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 신날 수가. 마치 중국에서 아무 걱정 없이 여유와 사치를 부리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우리는 온종일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가 로켓배송을 기다리는 설렘까지 고 헤어졌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날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그날을 함께한 친구들과 보낸 오늘이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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