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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17. 2023

착시와 왜곡

 "아들 점심 뭐 먹을까?"

 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들에게 전화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 훌쩍 넘어 출출할 시간이었다.


 "삼겹살, 삼겹살, 삼겹살. 비빔면에 삼겹살 먹을래."

 아들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삼겹살’을 외쳤다. 냉장고가 고장 나기 전까지는 냉동실에 항상 삼겹살이 있었다. 그런데 냉장고가 고장 난 지 4일째다. 새로 구입한 냉장고는 이 주일 뒤에나 배달이 된다고 한다. 아쉬운 대로 김치냉장고를 사용하고 있어서 냉장고 없이도 크게 불편한 걸 못 느끼고 있지만 냉동식품을 쟁여놓을 수 없는 게 제일 아쉬웠다.   

 "알았어. 그럼, 마트에 잠깐 들렀다가 갈게. 배고파도 조금만 참고 있어."

 마트에 들러 한 끼 먹을 만큼의 삼겹살을 사서 가기로 했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마트 주차장엔 차가 많았다. 자리를 찾아 돌다가 차와 차 사이에 빈자리를 찾았다. 차를 돌려 각도를 맞춰가며 후진을 했다. 주차선 중앙에 딱 맞췄다. 옆 차들과의 간격도 적당했다.

 페달을 살살 밟으면 뒤로 갔다. 그런데 차가 너무 뒤로 가는 것 같았다. 얼른 발을 브레이크 페달로 옮겼다. 이런, 차가 멈추지 않았다.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차는 계속 뒤로 갔다.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작은 눈은 팽창할 대로 팽창해 아플 지경이었다. 핸들을 꽉 쥔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아 버렸다.

 빵빵!

 경적에 놀라 눈을 떴다. 내 차가 길을 막고 있어서 지나가지 못하는 차가 경적을 울리고 있었던 거다. 주위를 살폈다. 나는 주차선의 3분의 2 정도만 들어간 채 멈춰있었다.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아도 멈추지 않았었다. 우선 차를 주차선에 맞춰 집어넣었다. 정지 턱도 있었다. 아깐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두방망이질 치던 가슴을 진정시키고 시동을 껐다. 핸들을 어찌나 세게 잡았든지 손아귀가 다 아팠다. 몸의 긴장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아 ―

 나는 아무도 못 들을 정도의 작은 외마디 탄성을 터트렸다. 얼굴이 빨개졌다. 주차할 때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차가 없어진 것이다. 내가 후진해서 주차선에 들어갈 때 옆에 있던 차는 앞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브레이크를 밟아도 계속 뒤로 가고, 옆 차의 끝이 자꾸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착시 현상을 느낀 거였다. 차 안에 나 혼자 있었기에 다행이지 누군가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 생각을 하니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긴장했었던 탓에 차가워진 손으로 얼굴의 열을 식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트 입구를 향해 걸었다.     

 

 마트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얼굴의 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두려움에 눈을 꼭 감았다가, 아무 일도 일어난 게 아니었음을 알고 머쓱해하며 얼굴이 붉어진 건 불과 3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주위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화하면서 왜곡하고 있는 건 없는지. 나는 그대로 있으면서 주위의 변화를 내가 변하고 있은 것 인냥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굴이 달아오르김에 모조리 끄집에 내서 감수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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