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간단히 먹기 시작했다. 토마토, 바나나, 구운 달걀 2알씩. 매일 이렇게 먹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렇게 먹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된 것 같다.
남편이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해마다 듣는 말이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니 무시할 수 없었는지 이번에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남편은 매일 만 보를 걷기 시작했다. 왕복 10킬로미터 거리의 회사를 걸어 다녔다. 하지만 걷기만으로는 살이 안 빠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다이어트는 식단이 70, 운동이 30이라고들 하니까. 운동을 아무리 해도 먹는 걸 조절하지 않으면 체중감량은 어림 반 푼어치는 없었다.
남편은 식단 조절도 병행했다. 아침은 과일을. 점심, 저녁은 렌틸콩 4, 잡곡 2, 흰쌀 2를 섞어 지은 밥을 먹었다. 그럼에도 체중 감량은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다 마녀 스프를 알게 되었다. 유튜브 쇼츠 영상에서 어느 여배우가 다이어트식으로 강력 추천 한다고 했다. 조리법도 간단했다.
마녀 스프라는 이름은 마치 마녀가 비밀스럽게 약을 짓는 것처럼,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마녀 스프 조리법은 정말 간단했다. 커다란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깍둑썰기한 양파를 넣고 볶다가 마늘, 토마토, 감자, 당근, 버섯 등 집에 있는 온갖 채소를 때려 넣어 끓이면 끝이었다. 아, 간은 카레 가루로 했다. 맛도 포만감도 상당히 괜찮았다. 이렇게 마녀 스프를 매일 저녁으로, 때로는 하루의 두 끼도 마녀 스프로 때웠다. 마녀 스프를 먹기 시작한 지 한 달 무렵 됐을 때 남편은 5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남편은 턱선이 날카로워지고 콧대가 더 오똑해졌다. 그렇지않아도 깊은 쌍꺼풀 눈이 더욱 진해졌다.
남편은 뿌듯해하며 이 흐름을 끊을 수 없다고 어지간히 애를 썼다. 그런 남편의 굳은 의지에 초를 칠 수 없어서 나도 덩달아 마녀 스프를 먹었다. 처음에는 히마리가 없어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갈 길을 헤맸다. 하지만 이상해 게도 정신은 맑아졌다. 잠자리에 누우면 눈이 초롱초롱해졌고, 배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는 한밤중에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와 화음을 이뤄 머릿속을 지배했다. 뱃가죽은 등가죽에 붙어 뼈만 남은 것 같았다. 그냥 느낌상 그랬다는 거다.
몸이 마녀 스프가 주는 포만감에 만족하기 시작했을 때 내게도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무려 3킬로 그램이나 빠진 것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저녁만 며칠 굶어도 2, 3킬로그램은 쉽게 빠졌었는데, 언젠가부터 단 500그램도 쉽게 빠지지 않았다. 어쩌다 몸이 안 좋아 끼니를 거르면 잠깐 빠지는 것 같다가 회복되면 2, 3배로 몸무게가 늘어났었다. 그러니 3킬로그램이 빠져나간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10년 동안 옷장에 넣었다 뺐다 했던 옷이 몸을 여유롭게 감쌌다. 그다지 좋은 옷은 아니었지만 몇 번 안 입어 변색도 없고, 늘어나지도 않아 버리기가 아까웠다. 가슴통에서 꽉 끼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서 처박아 뒀었는데 이제 몸통과 옷감 사이에 낙낙하게 바람이 들어갈 자리도 생겼다. 내가 이렇게 가냘프게 느껴진 게 얼마 만인가. 혹시 나를 아는 이가 이 글을 읽으면 비웃을지도 모른다. 사십평생 가냘프다는 얘기를 들은 건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가 끝이었다. 그러니 그 이후에 나를 본 이들은 ‘가냘프다’라는 형용사를 나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을 것을 테니까.
남편도 나도 지금 각자의 모습에 흡족해하고 있다. 이 몸이 다시 한 달 전 몸으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평생 마녀 스프만 먹고 살 수는 없을 텐데.
근력 운동을 해서 지방이 빠져나간 늘어진 피부를 단단히 잡아줘야 할 테데.
살이 찌면 찌는 대로, 살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걱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마녀 스프 끓인다.
온갖 채소를 넣고 푹 익을 때까지.
내 몸이 조금 더 가벼워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