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소유를 넘어선 정서적 정착의 의미
정착과 공간
어딘가에 정착을 한다는 것은 그곳에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간을 갖는다’고 할 때, ‘갖는다’는 꼭 소유의 의미만을 담는 건 아니다.
소유라는 단어는 물리적으로 갖는 것 외에도 감정적으로서의 함의도 가진다. 어떤 대상을 내가 소유했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은 내가 갖고 싶을 때 비로소 가졌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공간에서 느껴질 때는 아마도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인 것 같다.
'아, 이 일을 해야 할 땐 [ ]에 가야 집중이 잘돼.'
'[ ]에 가면, 언제든지 ㅇㅇㅇ을 만날 수 있어.'
'카페 [ ]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티라미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다쳤을 땐, ㅇㅇ재활의학과 여기 가면 진짜 잘 봐줘.'
그러니까, 내가 낯선 곳에서 비로소 내가 정착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소유했을 때가 아니었다. ‘내가 마음을 둘 공간을 찾았을 때, 내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을 찾았을 때, 필요에 따라 또는 찾아가고 싶을 때마다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생겼을 때’라는 걸 깨닫고 있다. 즉, 적어도 나에게 정착이란,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장소이자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느끼는 장소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장소감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와 장소 상실(Place and Placelessness)』에서 진정한 장소감을 '개인으로서 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속해 있다는 느낌'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현대 사회에서는 공간 이동이 더더욱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감각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하며, 이러한 장소감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장소감이란, 한 장소에 대한 감정 이입과 그 장소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결국,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그곳에서 나 자신을 표현하고 그 공간을 함께 향유하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그 공간이 주는 편안함은 자신의 취향과 맞닿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내가 어떤 것을 필요로할 때 그 필요에 따라 찾아갈 공간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취향이란 나만의 특별한 것을 찾게끔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동질감과 안정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장소를 이동하거나 지리적 위치를 이동해야 하는 일이 잦다면, 내가 방문하는 그 지역에 나만의 공간을 '찜'해 놓는 것도 좋다. 그렇게 되면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든 쉽게 정착하고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공간을 함께 향유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추억을 쌓으면서.
내 취향이 담긴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을 소유한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지리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