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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진 Dec 22. 2024

문을 여는 방법은 단 하나, 그저 나아갈 것

20대 취준생이 문을 열고 나와 세상과 만나는 법

나의 대학 생활은 인큐베이터 속에서의 생활과 다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과목의 공부를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실패를 하면서 배우는거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학교 안에서 만큼은 하고 싶은대로 해보라고 말해주던 이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포근한 알을 깨고 나와 취업 준비를 할 때, 또 인턴만 연이어 두 번 겪었던 때. 그 당시에 썼던 일기를 재구성해 본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냉철한 세상과 마주하며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던 20대의 내 모습. 그때를 추억하며-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숨기 바빴다.


혼자 있다는 걸 눈치 채기라도 할까봐 숨죽이고 없는 척 하기도 했다. 잘 갖춰 입지 못한 내 모습 혹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오롯한 내 존재를 내보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스스로 답답해지기에 이르렀고 문을 한번 빠끔히 열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걸어 나왔다.


꽉 닫힌 문을 서서히 열고 나오니 그 앞엔 들판도 있었고 산도 있었고 놀이터도 있었고 예쁜 집, 낡은 집, 큰 집, 작은 집도 있었다. 놀이터를 처음 본 나는 마냥 뛰어놀다가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아 들판을 무작정 거닐었다. 하염없이. 그러다 다른 것도 보고 싶고 만져 보고 싶고 해 보고 싶고 다른 사람도 만나 보고 싶어졌다. 집집마다 들어가보기 시작했다. 빨간 지붕 집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뒤엔 노란 지붕 집과 파란 지붕 집 중에서 어딜 들어가볼까 재보기도 했다.


출처: pinterest

들어가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가 어느샌가 그 어떤 문도 쉽게 열어주진 않는단걸 알게되었다. 내가 문을 두드렸을 땐, 좀처럼 문을 열지 않았던 과거의 나보다 더 심한 의심의 눈초리로 집주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집이 예쁘고 클수록 담벼락과 문턱이 높았다.


까치발을 하고 엿보려 안간힘을 쓰다 결국 풀이 죽은 나는 문이 아직 채만들어지지 않은 새 집에 한번 들어가보기도 했는데, 그 집은 겉만 그럴듯했지 사실 심각한 부실공사의 현장이었다. 주춧돌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는 그들의 말에 대들보라도 똑바로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벽돌을 갖다 나르느라 바쁘다고 했고 내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내가 무어라 말하면 되려 나에게 주춧돌을 구해다 오라고 했다. 그 집이 완성된 모습을 상상 할 수 없게 된 나는 뛰쳐나와 눈물을 훔쳤다.



눈물을 걷어내고 고개를 살짝 드니 이전엔 지붕만 보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이 나무로 된 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두드려보았다. 똑똑.


별 기대 없이 두드려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을 흔쾌히 열어주는 것이었다. 단, 잠시 동안만 머물 수 있으며 밥도 넉넉히 주진 못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으로도 진정할 수 있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우선 먹을 만큼만 먹고 그 곳에서 음식 준비를 거들며 새로운 요리 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히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갈 준비를 좀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것도 기회인 것 같았다.


지금 내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밥이 적어 배는 고프다. 그리고 사실 이 레시피가 다른 집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기도 하다. 그러나 따뜻한 집에서 새로운 요리를 맛보았고 그 덕에 맛에 대한 상상력이 한층 자랐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출처: pinterest


나름대로 많은 것을 보았기에 알고 싶은 게 더 많아진 나는, 내가 빠끔히 열고 나온 그 문에 만큼은 더 이상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닫고 있을수록 외로웠고 무서웠던 기억이 뚜렷했으므로. 바깥으로 나와서 뜻밖의 문제를 보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건 잠깐이었으니까. 차라리 밖에서의 고통은 또 다른 문을 찾아갈 수 있게끔 하니까.


그래서 추위도 길건 짧건 어쨌든 지나간다는 걸 믿고 싶어졌다. 견고한 집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내공을 키우다보면 내게 맞는 집을 발견할 수 있겠지.


이 집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다른 집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어주든 열어주지 않든 각 집 안에는 저마다의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는 한 여러 개의 문을 두드리다 보면 분명히 활짝 열고 환대해 주는 곳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꼭 닫고 있다가도 오히려 먼저 열고나올 수도 있다. 내가 가진 레시피를 필요로 하는 집이라면,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그 집의 음식이 내 입맛에도 맞는 것이라면.. 들어가서 머무는 게 가능하긴 할 것이다.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는 단서란게.. 적어도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할지는 알게 되었단 것 정도밖엔 되지 않지만 말이다.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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