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씨앗
11년 전, 대학생 때의 배낭여행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려 합니다. 여행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갔는지, 다녀온 지 11년이 지난 지금 생각했을 때 내 배낭여행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기억나는 에피소드와 느낀점을 중심으로 여행 이야기를 풀어내려 합니다.
나의 여행은, ‘가고 싶다’라는 단순한 열망과 함께 ‘왜?’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품고 있다. 하지만 왜 이 시기에 가야 하고, 왜 가고 싶은지,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그 당시의 나는 어떤 경험이든 유의미해야 하고,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강박관념의 결과는 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단순히 ‘세상은 넓고 아름답구나,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느낀 점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겪고, 배우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이든 그 행동의 목적에 따라 경험의 깊이가 달라진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떠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여유로운 여행으로 휴식 시간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소에는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거나 체험해보기 위해, 또는 업무나 사업에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혼자 떠나더라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친구나 가족과 함께 풍경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나누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또는 같은 여행지이더라도 무엇을 경험했는지 들여다보면, 그 경험의 색깔은 다양하고, 경험의 깊이에서 오는 틈이 천차만별이 되기도 한다. 여행의 색깔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나의 여행의 색깔이 어떠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여행 기획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만의 여행을 기획서로 정리해 보며 여행의 목적을 스스로 세워두면, 여행을 가서 어떤 크고 작은 예상치 못한 일을 겪든 그 경험을 배움의 계기와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물론, 철저하게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휴식을 하고 싶어 떠나는 여행이라면, 아무 계획도 기획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 여행의 목적에 맞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가기 전에 스스로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가려는 거야?
한 번쯤 기억에 남는 일을 해보고 싶어.
근데 왜 하필 배낭여행이야?
젊은 시절에 다른 나라에 가보면 많은 걸 느낄 수 있다고 하니까. 다른 나라도 한번 가보고 싶고.
그래? 다른 나라에 가보면 어떤 많은 걸 느낄 수 있을까?
접해보지 못했던 문화를 경험해 보면서 나와 다른 걸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걸 경험하는 건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니?
그거야, 새로운 곳에 가서 낯선 일에 직면했을 때 대처능력도 생기겠지.
그러면 뭐가 좋은데?
그러면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더 생기겠지.
내가 일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는 환경이다 보니,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갖추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에게 해외 배낭여행이란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 품었던 꿈이다. 누구나 품었을 수 있는 꿈인 유럽 배낭여행을, 나 또한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모아 좋은 카메라를 사서 들고 배낭을 메고 꼭 한번 떠나보고 싶었다.
‘나도 가고 싶다’라는 마음은, 가장 막연한 생각이면서도 가장 적극적인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는 마음이 씨앗이라면, 씨앗처럼 가지고 있지만 말고 땅에 심어 물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내가 바라는 것을 현실로 만들려면 단순한 바람으로만은 부족했다. 하지만 가고 싶다는 그 마음과 생각을 현실로 이루어내기 위한 과정이 나에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나의 그 막연한 바람이 행동이 되려면 더 간절해야 했고 목적이 분명해야 했다.
소극적이던 당시의 내 성격상 겪는 어려움도 있었고, 주변에 가본 사람이 없어서 경험담을 듣거나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다. 대학생인 딸이 타국에 홀로 간다는 것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 그리고 학생이었기에 돈이 없었고, 부모님께 섣불리 여행 경비를 지원해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취업준비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 했고, 대외활동도 해야 했기에 시간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기도 했다. 요즘도 그렇지만, 내가 대학생이던 때에도 취업을 잘 하려면 대학생 때 하는 모든 경험이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는 ‘스펙’이 되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런 시기에 마냥 책 속의 낭만을 꿈꾸며 배낭여행을 떠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는 방학 때 ‘나는 과연 여행을 가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배낭여행을 갔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원하는 바를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질문이었다.